3D 사운드, 가상(Virtual)이 아닌 현실(Reality)로!!

[참관기] 3D 사운드, 가상(Virtual)이 아닌 현실(Reality)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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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장덕언 KBS 라디오기술국 음향 감독]

2016 AES Paris Convention

AES Convention은 AES(Audio Engineering Society, 국제오디오공학회)가 주관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오디오 행사로 컨벤션과 콘퍼런스가 매년 유럽과 미주 대륙을 오가며 두 번씩 개최된다. 참가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오디오 전문가와 미디어그룹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최신 기술 정보와 트렌드를 공유할 수 있으며 그들과 교류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AES Convention은 장비 전시보다 실제적인 강의에 집중하고 오디오 초보자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레벨의 프로그램과 세션이 총망라돼 있어 한 번에 심도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AES Convention의 차별성이고 참석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140회를 맞은 AES Convention이 4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2017년 베를린 개최를 기약하며 지난 6월 7일 폐막했다. 6월 4일부터 7일까지 프랑스 파리 ‘the Palais des Congrès’에서 열린 AES Paris는 컨벤션 참가자 사전 등록률이 61% 신장하고 전시 브랜드 수가 2배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과 열기 속에 명실공히 2016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뜨거웠던 오디오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AES Paris Convention의 화두는 단연 3D 입체 음향이었다. 구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컨벤션 기간 거의 모든 세션과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한 방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 산업 전반에 걸쳐 차세대 트렌드로 급부상하면서 음향 산업에서도 더 실감 나는 3D 입체 음향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연구와 시도가 활발하다. 이제는 단순히 오디오를 듣는다는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서 실제 녹음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해 주는 실감 오디오 기술이 대세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 시간의 법칙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만 시간 이상의 꾸준한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만 시간의 법칙. 이 법칙을 실제 시간으로 환산해보면, 어떤 일에 하루 3시간씩 꼬박 10년을 쉬지 않고 투자해야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법칙이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인고의 세월 끝에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맺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환상적인 이론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방송국에 입사해 운 좋게도 가장 선호하는 음향 분야에서 꾸준히 10년을 일해 왔지만, 아직도 현장에선 낯선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시비를 가릴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누가 봐도 잘해야만 소위 말해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AES Paris에는 4일간 140여 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컨벤션의 가장 큰 이슈인 3D 입체 음향과 관련 있는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음향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폰에 대한 다양한 주제 발표와 스테레오 녹음, 믹싱에 관한 튜토리얼과 워크숍도 간간이 진행됐다. 3D 입체 음향을 논하는 자리에 다소 이색적인 이벤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아야 한다’는 공자님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가르침이 새삼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컨벤션은 오디오의 기본에서부터 최신 기술과 이슈까지 모두 접할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았다. 더군다나 지난 10여 년간 방송 음향 분야에서 맡은 주요 업무가 라디오 프로그램 생방송 제작, 클래식 음반 제작(녹음, 믹싱, 마스터링), 녹음 제작 스튜디오에서 대중음악 녹음, 믹싱 업무였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의 오디오 전문가의 다양한 제작 테크닉과 노하우를 다룬 프로그램은 우선으로 참여하려 했다. 특히, 현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테레오 제작 환경에서의 최적화된 마이크 세트업, 실제 보컬 레코딩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마이크 선별법 및 수음 방법, 음악 레코딩 프로세스와 믹싱 노하우에 관한 튜토리얼은 큰 흥미를 끌었다.

컨벤션이 열리는 4일간 참여한 프로그램은 총 18개이고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마이크로폰 세트업과 사용 테크닉에 관한 튜토리얼 및 워크숍
● 음악 믹싱과 마스터링 관련 튜토리얼 및 워크숍
● 3D 입체 음향(Surround/Binaural Sound)의 미디어그룹 시연 – Audio Projections
● 파리 인근 유명 제작 현장 견학 – Technical Tours

Just Listen!! “Audio Projections”

AES Paris Convention에 새롭게 시도된 프로그램이 바로 “Audio Projections”이다. 3일간 이어진 이 시리즈는 각종 튜토리얼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 소개된 다양한 미디어그룹의 3D 오디오를 직접 들어볼 좋은 기회였고 각각 준비한 시스템을 통해 들어본 3D 오디오는 체험을 넘어서 생생한 현장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3D 오디오는 재현하는 방식에 따라 멀티채널을 이용한 서라운드 방식과 스테레오 재생 환경에서 가상으로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구현하는 바이노럴(Binaural)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멀티채널 스피커와 헤드폰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음원을 재생하지만, 마치 리스너(Listener)가 녹음한 현장에서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현장의 사실감과 공간감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전달하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Audio Projections은 Auro3D(Belgium)의 헤드폰으로 구현한 ‘Binaural Audio’와 Sono Luminus(USA)의 9.1채널 “Immersive Audio”를 시작으로 총 12개의 세션이 진행됐다. Dolby Atmos와 더불어 영화 음향에서 각광받고 있는 Auro3D에서는 9.1채널, 11.1채널, 13.1채널 라우드 스피커를 활용한 3D 오디오와 헤드폰을 통해 자체 툴인 Auro-Matic으로 업믹싱(Up-mixing)한 바이노럴 오디오를 선보였고, BBC와 Radio France는 3D 입체 음향 포맷에 맞는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특히,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소리(Natural Acoustic)를 심미적인 감각으로 제작한 N&Neu Records(Spain)의 9.1채널 ‘Contemporary Music in 3D Audio’는 파노라마처럼 느껴지는 사운드의 자연스러움과 몰입감으로 마치 소리를 보는(See)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세션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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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ro 3D 13.1CH Format
Contemporary Music Recording
Contemporary Music Recording
※ Auro3D Surround Format
● Auro3D 9.1CH Format = 5.1CH + 4CH(상단)
● Auro3D 11.1CH Format = 5.1CH + 5CH(상단) + 1CH(상단 중앙)
● Auro3D 13.1CH Format = 7.1CH + 5CH(상단) + 1CH(상단 중앙)

세션이 같은 시간대에 중복돼 모든 세션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경험한 모든 3D 콘텐츠는 스테레오나 5.1채널 서라운드의 수평적인 음장감을 넘어서 3차원 공간의 입체감과 콘텐츠의 현장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Technical Tours

컨벤션의 백미 중의 하나인 테크니컬 투어(Technical Tours)는 파리 인근에 있는 유명 스튜디오, 오페라 극장, 박물관 등의 현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으로 컨벤션 참가자들에게 인기가 폭발했다. 테크니컬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컨벤션 모든 세션을 이용할 수 있는 ‘All Access Badge’를 구매해야 하고 개별 투어마다 추가 요금(25~30유로)을 내야 했다. 더군다나 한정된 인원에 선착순 등록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니컬 투어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스튜디오와 오페라 극장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등록 첫날부터 참가자들의 줄이 길게 늘어졌고 티켓 오픈 하루 만에 무료 투어를 제외한 모든 테크니컬 투어 신청이 마감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다행히 필자는 일찍 서두른 덕분에 원하는 투어에 참여하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나중에 AES 테크니컬 투어에 참여하려는 계획이 있는 분은 미리 알고 꼭 서두를 것을 추천한다.

Sonic Emotion/Ink Production (4, June, 13:30~16:30)

Ink Production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Dolby Atmos 믹싱 스테이지와 EXP Meyer Sound 라우드 스피커 시스템을 갖춘 최고의 시설로 영화나 TV 콘텐츠의 더빙과 사운드 후반 작업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번 투어는 시설 견학과 사운드 믹싱 기술 개발 파트너인 Sonic Emotion Labs가 개발한 ‘Wave I’ 프로세서를 포함한 Atmos 믹싱 스테이지 3D Wave Field Synthesis 데모를 선보였다. 실제 제작된 음악과 함께 제작 프로세스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고 Euphonix사의 System5 MC 믹싱 콘솔과 I-pad 애플리케이션으로 Wave I Performer(3D 사운드 제작 툴)의 개별 소스를 리모트로 조작하면서 3D 공간의 생생한 방향감과 입체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한, 바이노럴 렌더링 툴을 이용해 헤드폰용 3D 사운드 시연도 이어졌는데 Meyer 스피커를 통해 들은 국내 극장에서 느껴본 Atmos 3D 입체 사운드와는 다른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Ink Production 내부 시설
Ink Production 내부 시설
Wave I Performer : Binaural Sound 제작 툴
Wave I Performer : Binaural Sound 제작 툴

 

 

Ferber Studio (5, June, 09:00~11:00)

Ferber Studio는 그래미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엔지니어 René Ameline에 의해 1973년에 설립됐다. 당시 수석 엔지니어의 명성과 탁월한 스튜디오 음향 때문에 Frank Zappa, Nina Simone, Black Sabbath, Jean-Michel Jarre, Neil Young과 같은 전 세계 톱클래스 아티스트들이 녹음을 마쳤고 수많은 명곡이 이 스튜디오에서 탄생했다. 70, 80년대에는 영국의 Abbey Road Studios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9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오디오 기술과 홈레코딩 시스템의 발전으로 스튜디오 산업 전반이 하향세를 걸으면서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현재는 오케스트라 녹음이 가능한 A스튜디오(200㎡)와 대중음악 녹음을 위한 B스튜디오(80㎡)를 기반으로 5.1채널 후반 작업과 미디 작업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추가함으로써 옛 영광을 다시 찾을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영화 음악과 TV 음향, 사진, 광고에 이르기까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는 노력도 함께하고 있다.

Studio A
Studio A
Studio A Control Room
Studio A Control Room
Studio B
Studio B
Studio D 5.1CH Room
Studio D 5.1CH Room

Opéra Bastille (6, June, 08:30~11:00)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테크니컬 투어에 참여했다. 원래는 세계적으로 건축 음향이 탁월하고 건축물 자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 투어를 가고 싶었지만 꼭 듣고 싶은 세션과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차선책으로 선택한 투어였다. 하지만 낮은 기대와는 다르게 공연장의 탁월한 어쿠스틱과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지나 마주한 대극장의 웅장함은 기대를 넘어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은 1989년 개관한 파리에서 가장 큰 오페라 극장이다. 당시 파리를 대표하던 가르니에 오페라 극장(1875년 개관)이 낡고 수용 공간이 부족해 새로운 현대식 대중 오페라 극장이 필요해서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고 한다. 총 2,700여 석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오페라와 발레를 위한 대극장, 연극과 현대 무용을 위한 원형 극장, 기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스튜디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총 24명의 엔지니어 중 8명이 사운드를 담당하고 6명이 비디오를 담당한다고 했다. 무대와 객석 사이 아래쪽에는 80인조 오케스트라를 위한 공간이 있었고 스테레오 마이크와 20~30개의 스폿 마이크를 조합해서 녹음을 위한 수음을 하고 있었다. 극장의 홀 잔향 시간은 1.6초이고 객석에 도달하는 반사음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회절하도록 유려한 곡선으로 마감돼 있었다. 마침 베르디의 오페라 ‘Aida’가 상연 중이어서 리허설을 참관하는 행운이 있었는데 대극장을 울리는 배우들의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풍성하고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