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대통령직속기구로 출범했다.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한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재협상은 자동차 부문에 대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불러와 더 손해라고 국민을 은근히 협박한다. 어쩌자는 것인가? 군말 말고 미국산 쇠고기 먹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건 엉터리다. 이참에 아예 한미FTA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왜? 한미FTA는 이미 파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타결된 한미FTA 내용에 비춰 봐도, 제조업 부문의 대미 수출 증가는 극히 미미하다. 이마저도 미국 경제가 2%이상 성장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경제가 아예 고꾸라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몇 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가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을 완화하려는 시도도 엉망진창이다. 현행 방송법은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으로 공정거래 및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을 준용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상호출자제한제도가 그것이다. 출총제는 특정 시장에서 독과점 방지가 아닌 경제 전반 차원에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사전규제 장치이다. 한국의 재벌체제의 특성을 감안해 순환출자 등을 통한 문어발 확장을 막는데 목적이 있다. 반면 상출제는 동일한 기업집단에 소속된 계열사끼리 출자를 주고받아 가공자본을 창조하는 이른바 ‘상호출자’를 제한하기 위한 사전규제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IPTV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 상한선을 현행 3조원(상호출자제한제도기준)에서 10조원으로 높이는 계획을 세웠다. 옛 방송위는 해체되기 직전인 지난 2월 갑자기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상출제 기준 10조원으로 급등시키는 쪽으로 방송법 시행령을 바꾸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이는‘졸속의 졸속’이다. 현행 기준이 마련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검토도 없고, 정부 부처끼리 전혀 조율도 되지 않은 채 그냥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1차 졸속’은 2002년 12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옛 방송위가 저질렀다. 그때 출총제 기준은 자산규모 5조원이상, 상출제 기준은 2조원 이상이었다. 애초 방송위는 출총제 기준에 따라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소속 기업은 미디어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려 했으나, 공정위는 출총제가 미디어 소유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방송위는 상출제 기준 5조원으로 변경했다. 그러자 한 홈쇼핑업체가 반발했고 결국 다른 홈쇼핑업체들과 형평성을 꾀하기 위해 이 기준을 3조원으로 낮췄다. 결국, 홈쇼핑업체들로 인해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이 자의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게다가, 3조원은 당시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 기준인 2조원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었다. 국내방송의 여론과 직결돼 있는 대기업 기준을 정하면서 훨씬 느슨한 기준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 기준을 뜬금없이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급등시키는 것은 방통위의 ‘2차 졸속’이다. 그것도 공정위가 출총제를 아예 폐지하고 상출제 기준을 2조원에서 5조원으로 높이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는데도 그러고 있다. 왜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은 상출제 기준보다 5조원이나 더 높아야 하는지 방통위는 묵묵부답이다. 대신 온갖 학자들이 종합편성채널 허용과 연계해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 상한선 완화에 찬성 논리를 편다. 지난 6월16일 한국방송학회와 정보통신정책 연구원이 공동 주최한‘IPTV 콘텐츠사업 규제제도: 현실과 대안’토론회에서 등장한 논리들은 이렇다. “복수의 주체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차원에서”(문재완 단국대 교수), “경제전반의 규제완화 추세 속에서 방송시장도 바라봐야”(지성우 단국대 교수), “여론 다양성 차원에서 지금의 보도전문채
널이나 지상파와는 다른 여론을 들을 수 있도록”(정윤경 순천향대 교수) 등이다.
이들 논리의 전제는 미디어 소유 대기업 기준을 완화하면, 지금과는 다른 여론 다양성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한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종합편성채널을 새로 허용하고 대기업 기준을 완화하면, 신규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다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고위험-저수익’시장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해봤자, 발생하는 수익은 적은 반면 투자 위험은 매우 높다는 얘기다. 자산규모 3조원 미만 기업집단 소속 기업과 달리, 3조~10조원 미만 소속 기업은 낮은 투자수익률을 감수하고 신규 콘텐츠에 막대한 투자를 할 것이라고 보는 건 지나치게 순진하다. 종편채널이 새로 허용되더라도 신규 콘텐츠 제작보다는 여러채널에 흩어져 있는 기존 콘텐츠를 모아 한 채널에서 내보낼 것으로 보는 분석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통위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기업의 미디어 소유에 대한 자체 기준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여론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자산규모만이 아니라 ▲모범적인 지배구조 요건을 갖춘 기업집단 ▲계열사 수가 일정한 수 이하인 기업집단 ▲소유-지배 괴리도가 일정수준 이하인 기업집단 등의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