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밝고 희망차야 할 새해부터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이 중 하나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고 얼마 전에 극적으로 타결된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유선 방송사(SO) 간의 VOD 분쟁이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 간의 VOD 분쟁은 가격 산정과 서비스 범위가 쟁점이었다. 즉 지상파방송이 지난해 SO를 대상으로 VOD 제공료를 15%를 올려 줄 것을 요구하며 양측의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두 사업자 간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다가 결국 지난 1일부터 지상파방송은 다시보기 VOD 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에 맞서 SO는 VOD 제공 중단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MBC의 광고 송출을 15일 오후부터 막겠다고 맞서면서 양측의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는 얼핏 보기에는 아주 간단한 사업자들 간의 이익 다툼으로 보인다. 서로 가격 협상을 벌여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 미디어의 근본적인 문제가 이곳에 집약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미디어 정책의 문제 또한 내포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와 규제기관이 시청자를 그저 돈만 내는 ‘봉’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하지만 정작 배제된 시청자 눈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 문제는 다음과 같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체 선택을 할 수 없는 시청자
시청자는 무료 보편적 방송 서비스와 유료방송을 선택하지 못한다.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유료방송 플랫폼이다. 즉 케이블 방송, IPTV 그리고 위성 방송 정도이다. 그리고 얼마를 내고 볼 것인가 하는 요금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겨났다.
사실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다. 그러나 90% 이상의 시청자는 이를 요금을 지불하고 본다. 무료 보편적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이미 무료 보편적 서비스가 아니며 이는 지상파 방송사가 플랫폼 사업자로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아날로그 방송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상파 방송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다.
아날로그 방송 시절, 지상파 방송은 디지털 전환만 되면 난시청이 다 해결될 것처럼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이 매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지상파 디지털 전환 3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상파 방송은 시청자가 직접 수신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잘 보고 있는 VOD 서비스도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끊어버렸다. 심지어 이 VOD 서비스는 시청자가 유료방송 비용과는 별도로 과외의 비용을 지불하는데도 말이다.
결국 시청자는 마땅히 누려야 할 무료 보편적 방송 서비스를 누리지도 못하고 협박의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자의 90% 이상을 유료방송을 보게 하는 기형적인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놓았으면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시청자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방패막이로 전락시켰다. 꼼짝없이 당하는 쪽은 SO가 아니라 서글프게도 ‘시청자’다.
계약 해지도 할 수 없는 시청자
시청자는 유료방송과 계약 관계에 있다. 즉 가입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사업자는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시청자는 VOD 서비스를 무려 15일간 받을 수 없었다. 분명히 이는 계약 위반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할 수 없다. 3년이든 2년이든 약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계약 해지를 요구한다면 이를 계약 해지 사유로 보지 않는 SO는 엄청난 위약금을 거꾸로 시청자에게 요구할 것이다.
이는 이미 2011년 SO가 보여줬다. 당시 SO는 지상파 방송사와 재전송료 문제로 다투다가 협상이 결렬되자 지상파 HD 방송 송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SO는 가입자들에게 별다른 사과도 없이 모든 책임을 지상파방송에 떠넘겼으며 계약 해지를 요구한 시청자들에게는 거꾸로 위약금을 요구하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SO는 지상파 방송의 VOD 중단에 맞서 MBC 광고 송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가입자와의 계약 이행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막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전송 분쟁 때와 똑같이 지상파 방송사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가입자를 자신들의 실력 행사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번에도 당하는 쪽은 SO를 통해 방송을 보는 힘없는 ‘시청자’다.
남의 일 보듯 보는 관리 감독 기관
이번 사태가 벌어진 후 관리 감독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를 사업자 간의 이해 다툼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시청자들은 양 사업자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서비스를 끊겠다는 협박을 받고 급기야 VOD 서비스가 중단됐음에도 뒷짐만 지고 있었다. 그리고 양측이 전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보이자 부랴부랴 중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청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그저 급한 불 끄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이는 관리 감독 기관 또한 시청자는 안중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번 사태로 근본적으로 시청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고 바라봐야 할 관리 감독 기관이 사업자의 입장만을 고려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며 이는 시청자가 왜 늘 피해만 입는지 답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90% 이상의 시청자를 유료방송 가입자로 만들어 버린 것에 제대로 규제도 못하고 시청자를 보호하지도 못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방관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관리 감독 기관의 무능함도 함께 확인했다.
방송사업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을’이라고 한다. 지상파방송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자신들이 ‘을’이 된 지 오래라고 하고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지상파방송 콘텐츠를 가지고 사업하는 자신들이 ‘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 진정한 을은 바로 우리 ‘시청자’다.
시청자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을 보려면 비용을 내야 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유료방송을 보면서도 그 안에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또 따로 비용을 더 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업자의 이해관계와 분쟁이 발생할 때면 시도 때도 없이 방송을 끊겠다는 협박을 받고, 이것이 실제로 실행되더라도 보상 또한 받지 못한다. 이쯤 되면 시청자는 을이 아니라 ‘병(丙)’인 것 같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유·무료 방송을 명확히 획정하고 시청자가 이를 손쉽게 선택할 수 있게 돼야 한다. 또한 계약자가 계약을 어겼을 때 이를 마땅히 보상받아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러한 일이 ‘병(丙)’인 시청자를 ‘정(丁)’으로 더 떨어지게 하지 않는 것이며 지금까지 누적돼 온 우리 방송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올해야말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