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정책을 짚어주는 심층 프로가 보고 싶다
조 준 상/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마저 덩달아 지면에서 깨끗이 사라지게 하는 신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다. 기억력을 되살려 보자.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경제는 급등하는 국제유가에 허우적댔다. 2007년 배럴당 평균 89~96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는 2008년 7월 중순 145달러를 웃돌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뒤부터 큰폭으로 하락해 7월 평균 배럴당 123~4달러,8월 평균 110달러 안팎을 기록하더니 9월에는 100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 폭등에 따라 국내 원유수입액은 올해 9월까지 전년 같은 기간과 견줘 약 5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원유 수입액이 603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적어도 900억달러에 이를 게 분명해 보인다. 원유수입에만 약 300억달러(33조원)를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올해 국제유가 폭등의 핵심 원인은 투기(speculation)였다. 올해 5월31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석유 트레이더들이 시장을 조종하고 있다는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발표한 게 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국제원유시장이 경제기초여건(economic fundamentals)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리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높은 원유가격은 저금리에 따른 약한 달러 가치를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원유 가격은 달러로 매겨지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약세이면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원유 가격이 그만큼 싸지게 되고, 그래서 원유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수요가 증가하니 원유 가격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국내 삼성경제연구소도 공유하고 있다. 이 연구소가 9월22일 발행한 ‘최근 원자재 가격 급변동의 원인과 전망’은 “2007년 9월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준금리를 총 3.25%포인트인하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 원자재 가격 급등의 발단을 제공”했다며“2008년 6월 이후 미국이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동결한 이후 주요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원유 가격이 중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생산자들이 원유를 시장에 내놓지 않고 저장하거나 생산을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제유가 급등의 원인이 투기에 있다면, 투기세력으로 인해 원유 재고물량이 늘어나야 하는데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폭등의 핵심에 경제기초여건이 있다는 이런 주장들은 모두 취약하다. 저금리에 따른 달러가치 약세가 기본 원인이라는 지적은, 달러 가치 하락 폭보다 국제유가 상승폭이 훨씬 더 컸음을 설명하지 못한다. 유로화 대비 달러 가치는 지난해 말과 견줘 올해 7월까지 6~7% 하락한 반면, 국제유가는 30%가 넘게 폭등했기 때문이다.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에서 원유 수요가 늘어날리 만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량을 축소했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오펙은 유가 급등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석유에 대한 대체 에너지 개발 욕구를 자극하는 건
자신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아서다. 원유 재고의 증가가 없었다는 것도 단견이다. 원유투기세력은 저장시설을 빌려 쓰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방출한 원유를 투기세력이 사들여 가격만 올려놓고 같은 저장시설에 두면, 원유 가격만 급등하고 원유 재고는 그대로일 수 있다.
한 마디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국제유가 폭등은 경제기초여건과 거의 관련이 없다. 유가 폭등을 설명할 수 있는 원유 수요와 공급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금융기관과 헤지펀드의 원유거래 비중이 7년 전 37%에서 지금은 70%에 이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손실을 원유투기로 메우려는 강력한 유인이 투기를 한층 더 부추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 투자은행이 주도하는 월스트리트 붕괴 직후 △파생상품 규제완화△헤지펀드 규제완화 △금융과 산업 분리 원칙 완화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한 투자은행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을 한층 더 다그쳤다. 파생상품와 헤지펀드는 미국 부동산 시장과 국제원유 시장의 혼란에 몰아넣은 주범인데도 말이다. 관영화하는 ‘공영’방송에서는 이 문제에 심층적으로 다가가는 프로그램들을 아마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현 정권에 유리하지 않을 테니까. 눈덩이처럼 부실이 커져가고 있는 금융시스템 이외에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잠복되어 있고, 더구나 금융위기 여파로 시작된 실물경기 침체가 향후에 더 큰 짐으로 살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