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정책의 비합리성 소통부재를 개탄하며
소통이 공감을, 공감이 희망을 낳는다. 소통 없인 꿈도 이룰 수 없다.
조직 또는 개인이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 소통이다. 소통(疏通)은 막힘없이 서로 잘 통하는 상태로, 서로 뜻이 통해서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소통은 “서로의 욕구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나를 둘러싼 외부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도 필요하다.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소통도 가능하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고여 있는 물이나 막힌 혈관과 같다. 썩거나 터지거나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수많은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나오고 있는 정부의 언론정책은 언론계 특히 방송계 현업인들의 불신과 거부감만 키워오고 있다. 두 번이나 무산되었던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위한 공청회와 10월 말에 무산된 주파수 회수/재배치를 위한 공청회도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현업 방송인들의 강한 불신감을 받고 있다. 물론 현업 방송인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책안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추진하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방송인들이 좌편향 또는 우편향 되었다고 일방적인 판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상당수의 현업 방송인들은 정부의 방송정책이 방송을 장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동안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던 프로그램들이 최고 경영자가 바뀌면서 자취를 감추었고, 신임 사장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인사 조치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고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아직까지 보복인사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노동자들의 대응으로 정상적인 방송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논란이 한창 일고 있는 방송주파수 회수/재배치 정책도 현업 방송인들의 강한 불신을 받고 있다. 실무자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제기된 의견들은 모두 무시되고 일방적으로 방송사 측 실무자를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일을 빌미로 압박하는가하면, 업무 지휘를 받는 실무자들을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한번 정해지고, 상부에 보고되었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로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방송사와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주파수와 관련된 다른 기관과의 대화에서도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압박하고 있어 강한 불만을 사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실무 책임자가 바뀌었다고 정책기관의 분위기가 너무도 비합리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목표를 향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듯 한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깝다. 개인의 욕심에 조직의 역할을 몰입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로 들어 설 수 있다는 우려를 씻을 수 없다.
또 한쪽에서는 2012년까지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파수를 회수하거나 방송 재허가와 연계, 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한나라당 ‘미디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에서 이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디지털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방송사의 현실 여건을 이해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여 해소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진데, 주파수와 방송국허가를 연계시키겠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고 있다. DTV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가 부족해서 DTV중계소 설치가 어려운 것도 한 원인일 수 있고, 경제가 어려워 디지털 TV를 사지 못하는 서민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과 지역방송사들의 열악한 재정수입도 원인일 수 있다. 원인분석 없이 으름장만 놔서는 안될 일이다.
결국, 소통하지 않겠다는 자세와 소통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이다. 대화의 상대도 충분한 이유와 그에 맞는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 의사를 무시해 가면서까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는 또 무엇을 할 것인가? 많은 관심과 우려가 시간이 갈수록 집중되고 있다. 소통하지 않겠다고 남의 얘기는 무시해버리는 사람, 늙어가면서 철이 나는 것이 아니라 고집불통으로 이해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은 잘못되어 가는 것이다. 피상적 문제만을 훑어볼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진정한 소통을 통해 협박을 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나이 60이면 이순(耳順), 귀가 순해져서 다툼을 피하고 선악의 판단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있다. 아직은 60이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