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를 너무 많이 믿지는 마세요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최근 전세계적인 금융공황에 직면하여 각국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가운데 케인즈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 30여년 간 전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미국식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 그 초라한 말로를 드러내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케인즈 처방의 유효성이 매우 크다고 하더라도 그의 생각 모두가 다 100% 옳은 것은 아니므로 그를 무분별하게 답습하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워낙에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이라는 사건이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한 그의 업적은 결코 경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처방 모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정윤형 박사는 그의 저서 “서양경제사상사연구”에서 케인즈에 대한 모리스 돕(M. Dobb)의 비판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정박사에 의하면 모리스 돕이 케인즈를 비판한 것은 케인즈 사상의 근저에 ‘생산력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케인즈는 정부의 투자지출이 유효수요 창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히 인식했지만, 그 투자가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거기에서 오는 추가공급(또는 거기에서 오는 소득증가)이 다시 대공황과 같은 불황을 불러 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정부의 생산적인 투자를 기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인즈는 낭비적인 공채(公債)지출, 피라밋 건축, 지진, 전쟁 등이 불황 타개에 아주 유효하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가령 재무부가 낡은 항아리에 은행권을 가득 채워 그것을 버려진 탄갱 속 적당히 깊은 곳에 놓은 다음에 갱도를 지면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쓰레기로 묻어버린 후…사기업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그 은행권을 파가게 한다면 더 이상 실업이 존재할 이유가 없고..”–케인즈(1936),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29p.
케인즈는 왜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것일까. 모리스 돕에 의하면 그가 당시의 상황을 해결할 불가피한 대안으로 ‘생산물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 낭비적 투자, 즉 비생산적인 투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리스 돕 등의 케인즈 비판이 어느 정도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케인즈 지지자들 사이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맹신만큼이나 케인즈에 대한 맹신 또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를 차용하는데 있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레이거노믹스 등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과도하게 경도된 우리나라 경제관료들도 건설투자에 대해서만큼은 얼굴을 180도 바꾸고 건설업의 생산유발 효과가 크다느니, 고용유발효과가 크다느니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근거없는 것들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하면 건설업의 생산유발계수는 1.980(2003년 기준), 제조업의 생산유발계수는 1.972, 서비스업의 생산유발계수는 1.587라고 한다. 여기에서 생산유발계수란 어떤 산업이 해당 산업과 다른 산업의 생산을 어느 정도 유발하는지 그 정도를 나타내는 계수를 말한다.
그러나 건설업의 경우에는 한국은행이 전체 건설투자액 중에서 토지매입액을 제외한 나머지만을 건설투자로 인정하고 생산유발계수를 산출하고 있기 때문에 계수가 현실과 불일치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해석해야 한다.
1조원의 제조업 매출과 서비스업 매출은 해당 산업과 다른 산업의 생산을 각각 1.972조원과 1.587조원씩 증가시킨다. 그러나 매출액 총액 중에서 30%가 토지가격인 1조원의 건설업 매출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1조원 중에서 토지매입가격을 뺀 7000억원 만이 건설투자로 인정되기 때문에 1조원 건설업 매출의 생산유발액은 1.98조원이 아니라 7000억원의 198%인 1.386조원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건설업의 고용효과가 크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2007년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3년도 산업연관표에 의하면 그 해 전산업 평균 취업계수는 10.4명, 건축업 취업계수는 13.3명, 토목업 취업계수는 8.7명이라고 한다. 건설업의 고용창출효과가 결코 크지않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취업계수란 10억원의 추가 매출이 몇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계수를 말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MB정부는 근거없이 건설업의 경제적 효과를 침소봉대하며 건설업 중심의 경기부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건설업 편향적인 태도는 자칫 90년대 일본과 같이 낭비적인 건설투자로 심각한 재정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할 수 있다.
토목건설 중심으로 90년대 거품붕괴·금융위기를 극복하려다 실패한 일본과 달리 실사구시형 대학교육개혁과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재정지출 확대로 유사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90년대 북유럽의 교훈을 주의 깊게 공부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