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콘텐츠 해외 유통 환경 변화와 대응 전략

[기고] 방송 콘텐츠 해외 유통 환경 변화와 대응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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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용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난 호(221호)에 이어>

우선 동남아 지역에서 정보 통신망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의 전송망 수준을 고려하면 이용자를 상대로 직접 콘텐츠 스트리밍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선불 요금제 중심의 통신 요금 구조, 3G 중심의 데이터 통신 네트워크 등의 문제로 인해 현재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이동 중 시청은 아주 미미하며, 주로 젊은이들이 커피숍 등 와이파이(WiFi) 설비가 제공되는 장소에서 이용하는 수준이다. 모바일 통신 ARPU가 3달러 남짓인 상황에서 유료 콘텐츠 소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게다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이동하면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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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 방송 콘텐츠에 대한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음에도, 이들 대부분은 와이파이망을 이용한 무료 다운로드를 통해 한국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 대다수의 한류 팬들은 한국 방송 콘텐츠를 지상파방송에서 무료로 접할 기회가 줄어들자 최신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유·무선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와 불법 복제한 DVD를 통해 접하고 있다. 한국의 인기 있는 콘텐츠의 경우는 한국에서 방영한 즉시 인터넷에서 현지어 자막까지 입힌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불법 시청의 확산은 온라인을 통한 한국 방송 프로그램 수출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이다. 현지 정부의 불법 시청 규제 의지나 동남아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불법 시청 문화를 고려해 볼 때 상당한 기간 불법 시청 형태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첫째, 모바일 유료 시청보다는 광고 수입에 기반을 둔 방송 콘텐츠 OTT 시장이 확대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온라인 유통은 단기적 수익보다는 유통 확대를 통한 이용자 저변 확대를 목표로 중장기적 수익 확보 수단으로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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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온라인 콘텐츠의 현지 적응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과 달리 동남아 지역에서는 통신망과 단말기 수준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바일 콘텐츠 이용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모바일망의 속도나 비용으로 인해 긴 분량의 방송 콘텐츠 소비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지 통신망 사정에 적합한 콘텐츠 현지화 작업이 필요하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유무선 네트워크, PC나 모바일 폰 등 OTT 서비스에 필요한 인프라와 단말기 그리고 유료서비스 이용에 따른 결제 시스템, 온라인 광고 시장에 이르기까지 국가별, 지역별 차이가 매우 크다. 따라서 한국 OTT 환경에 적합하게 제작된 방송 콘텐츠를 동남아 지역에서 그대로 유통시킬 경우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 아직 4G가 보편화되지 않아 모바일데이터 전송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을 고려할 때 60분 길이의 일반 방송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바일 전용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모바일 유통에 적합한 쇼트 프로그램 제작이나 기존 콘텐츠의 파생 콘텐츠나 시퀀스 분할 등 파생 콘텐츠 제작을 본격화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즉, 기존 콘텐츠의 모바일 버전용 리메이킹이나 클립 형태로 재편집해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래의 방송 콘텐츠뿐만 아니라 파생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셋째, 모바일이나 온라인을 통한 콘텐츠 유통에 있어서도 현지 사업자나 글로벌 콘텐츠 유통 사업자와의 협력을 고려해야 한다. 넷플릭스(Netflix)는 해외 시장 진출 시 통신사 이외에 현지 지상파방송과도 제휴를 시도한다. 이는 OTT 사업을 위해 통신사와의 제휴 못지않게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와의 제휴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다양한 미디어·콘텐츠 사업자와의 제휴도 고려해봐야 한다. 특히 현지에서 OTT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사업자는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많을 것이므로 이들과의 전략적 제휴가 비교적 용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인도네시아에서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UseeTV는 아직 콘텐츠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한국 콘텐츠 항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한국 콘텐츠 수급에 적극적이다. 태국의 거대 미디어 사업자인 True Corporation과 합작 법인을 만든 SM엔터테인먼트의 사례처럼 현지 방송 사업자와 제휴해 OTT 서비스 제휴로 이어지게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베트남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국 기업의 인터넷 서비스가 발달돼 있다. 한류 프로그램의 확산을 위해서는 현지의 유명 온라인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과의 협력 전략도 필요하다.

ⓒ유튜브 tegopoy
SM 엔터테인먼트는 태국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True Corporation과 합작 법인인 SMTrue를 세워 K-POP 시스템을 태국에 접목시키고 있다.

넷째, 글로벌 유통이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상 방송 콘텐츠 유통의 경쟁 양상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글로벌 콘텐츠 유통 사업자와의 경쟁과 협력의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즉,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을 통해 동남아 시청자에게 직접 한국 프로그램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한류의 확장성에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국제적인 콘텐츠 애그리게이터와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미 전 세계를 장악한 유튜브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알리바바가 최근 인수한 중국 최대 동영상 서비스인 유쿠-투도우(Youku/Tudou)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 제공 사업자가 한국의 온라인 콘텐츠 사이트와 경쟁하고 있고, 홍콩에 본사를 둔 ICT 기업인 PCCW(Pacific Century CyberWorks:電訊盈科有限公司)가 국제적 콘텐츠 유통 사업에 진출해 아시아 지역의 콘텐츠 유통에 나서면서 한국 온라인 콘텐츠와 경쟁하게 됐다. 이들과의 경쟁이냐 협력이냐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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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동남아 현지에서 OTT 서비스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대안적 전송 수단을 활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현재 동남아 지역에서는 모바일을 통한 소셜 미디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동남아 지역 이용자들이 정보 공유를 위해 가장 선호하는 채널은 소셜 네트워크이며, 이메일과 무료 메시징 앱도 활발하게 이용된다. 소셜 미디어는 메시지 교환 수단으로써 뿐만 아니라 향후 콘텐츠 유통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인도네시아나 태국 등지에서 인기가 있는 네이버 라인 등 모바일 메신저가 한국 방송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플랫폼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나 태국은 라인 이용자가 많은 나라들인데, 라인은 메신저 서비스를 필두로 게임이나 카툰 현지화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바일 콘텐츠 비즈니스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이들 지역이 한류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은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라인 TV의 활용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지 진출 사업자와의 제휴 시 고려할 점은 콘텐츠 판매 수익 배분 방식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의 경우 수익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므로 일단 콘텐츠를 제공한 후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배분하는 거래 구조가 현실적이다. 이를 위해 사전에 수익 및 비용에 대한 배분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최근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 미디어 확산과 전 세계적인 온라인 동영상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우리 방송 사업자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세계 방송 시장은 과거의 지상파방송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우리 방송 콘텐츠의 해외 유통 전략도 변화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방송 콘텐츠 생산, 유통, 소비환경 변화가 한류 콘텐츠 유통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해외 현지 사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방송 환경 변화에 대한 우리 방송 사업자의 진지한 고민이 꼭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