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을 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론 대승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심해지면서 8VSB 허용이 종편특혜의 연장선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는 부분은 부담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긴 호흡으로 허용시기를 조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당장 파도는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현재 케이블 MSO는 전면적인 8VSB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시청자 복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의명분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케이블 MSO의 8VSB 허용은 ‘고화질’에만 매몰된 절름발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비판과 함께 홈쇼핑 송출료를 둘러싼 이윤게임의 확장판이고, 더 나아가 8VSB의 허용에 따른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종편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상존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런 상황에서 8VSB 허용과 비슷한 현안인 클리어쾀 TV의 추이를 살필 필요가 있다. 10월 17일 미래창조과학부가 클리어쾀 TV 제조사 모델을 선정하며 12월부터 실질적인 보급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는데, 클리어쾀 TV도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 논란과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절름발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악평과 더불어 특정 진영의 특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리어쾀 TV는 당초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의 일명 유료방송 지원 특별법에 포함되어 정책적 동력을 모으다가 각계의 반발에 직면하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한정적 보급으로 선회한 바 있다. 또 출시 시기도 당초 9월에서 10월, 이제는 12월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이는 정치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클리어쾀 TV 현안이 예상외로 심각해지며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창조경제를 둘러싼 논란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이는 8VSB 허용 논란에도 고스란히 재현될 조짐이다.
물론 국정감사가 종료되고 미래부가 8VSB 허용을 전격적으로 발표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만, 종편 특혜라는 비판이 8VSB 허용 논란과 교묘하게 겹치는 순간 해당 현안은 휘발성 있는, 명백한 정치적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물론 정부는 8VSB 허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클리어쾀 TV 보급 계획의 지연과 종편특혜 논란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해당 아이템에 대한 속도조절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OECD 국가 중 유료방송에 대한 8VSB 허용이 유례없는 일이라는 점과 더불어, 군소 PP 퇴출 가능성 및 절름발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 시키는 한편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CPS 문제와 더불어 전 유료방송의 8VSB 허용 가능성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 종편특혜까지 포함되었으니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미래부가 쥐고 있다.
참고로, 8VSB 허용 현안이 시청자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냐는 반론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에게 선명한 방송을 무료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냐는 뜻이다. 이는 필자가 취재를 하면서 만나는 방송사 타 직군 및 관련 기자들에게 자주 듣는 논리다. 즉, 케이블 MSO 및 종편특혜 등의 부작용이 있어도 시청자 복지 차원에서 긍정적인 방안이 아니냐는 의견인데, 단언하자면 ‘어불성설’이다. 모든 부작용을 차치한다고 해도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은 시청자 입장에서도 독이 든 성배다. 생각해보라. 10년 전만해도 일반 시청자 중 그 누가 3D와 HD, UHD 등 다양한 뉴미디어 시대를 예상했겠는가. 방송기술의 발전은 오로지 무료 보편의 가치에 입각해 일반 시청자의 복지로 귀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은 고화질에만 정점을 찍은 ‘유리벽’이다. 더 나은 미디어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시청자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양방향도 필요없고 다채로운 방송기술도 필요없으니 8VSB 허용도 인정하자고 말하는 이들은 시청자를 조삼모사의 격언속에 옭아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