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전파법 1조에는 ‘전파의 효율적인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전파이용과 전파에 관한 기술의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전파 관련 분야의 진흥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전파법 자체가 전파를 공익적 차원에서 다루기 위한 수단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전파법 3조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전파자원의 이용촉진에는 정부는 한정된 전파자원(電波資源)을 공공복리의 증진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전파자원의 이용촉진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전파법이 말하고 있는 것은 간단하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 즉 주파수는 공익적 차원에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주파수는 국민의 재산이기 때문에 이를 운용할 권리를 위임받은 정부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 해당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와도 결을 함께하는 셈이다.
최근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방송과 통신이 각자의 할당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관련학계의 의견도 둘로 나뉘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공동 연구반까지 꾸려 할당을 논의하고 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의 논리를 자세하게 비교하면, 아무래도 공익을 담보로 하는 방송에 할당 당위성이 쏠리는 분위기다. UHD 정국에 있어 지상파가 해당 주파수를 할당받아야 보편적 고품질 미디어 서비스를 추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일종의 공익성에 기반을 둔다. 그 외 지상파의 UHD 콘텐츠 제작 능력이나 유료방송의 제작 능력 미비, 모바일 트래픽 해소 주장의 오류와 전세계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설 거짓도 포함된다. 정부가 아무리 WRC(세계전파통신회의)-07과 WRC-12 결과를 왜곡해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밀어주려 노력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참사가 벌어진 진도 현장에서 모바일 트래픽 급증으로 인해 무더기 통신두절이 벌어지며 주파수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는 한편, 국가 재난망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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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가 재난망 구축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기술적 보완책을 마련하지 못한 국가 재난망은 유관부처의 무관심과 그에 따른 동력 상실로 철저히 외면받다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다시 논의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물론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최초 국가 재난망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으며 논의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씁쓸한 대목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국가 재난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탄력을 받는 것은 비록 늦었지만, 상당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국가 재난망 구축을 위해 700MHz 대역 주파수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무부처인 안전행전부가 중심이 되어 이러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은 국가 재난망을 빠르게 본궤도에 오르려면 방송과 통신의 할당경쟁이 벌어지는 700MHz 대역 주파수에서 10MHz 폭의 주파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코레일은 12MHz 폭을 원한다)
이건 변수다. 왜냐면, 현재 700MHz 대역 주파수는 최시중 방통위원장 시절 상하위 40MHz 폭이 통신에 분할 할당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700MHz 주파수는 총 108MHz 폭을 가진다. 여기서 상하위 40MHz 폭을 빼면 68MHz 폭이 남고 이 남는 68MHz 폭에서 안행부가 10MHz 폭을, 코레일이 12MHz 폭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시중 위원장 시절 방통위는 상하위 통신 40MHz 폭을 할당하며 교묘한 장치를 걸어두었다. 40MHz 폭을 둘로 나누어 배치함에 따라 주파수 간섭을 이유로 나머지 대역도 통신에 유리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68MHz 폭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합하자면 이렇다. 108MHz 폭 중 40MHz 폭은 최시중 위원장 시절 둘로 나뉘어 상하위 대역에 통신의 몫으로 배치됐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68MHz 폭이지만 주파수 간섭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파수는 54MHz 폭이 마지노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은 국민행복 700 플랜을 통해 공익적 주파수 활용 및 지상파 UHD를 위해 54MHz 폭을 요구하고 나섰다. 11개 방송채널을 9개로 줄여 한 채널 당 6MHz x 9(채널) = 54MHz 폭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나머지 두 개 채널에 필요한 주파수는 채널재배치 정국에서 방송이 ‘어떻게든 쥐어짜 보겠다’고 한다.
즉 700MHz 주파수 대역에서 방송은 최소한의 필요 주파수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외국과 달리 국내 방송은 다른 주파수 대역에서 여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54MHz 폭이라도 달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재난망이 700MHz 대역 주파수에서 구축되면 방송은 해당 대역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상하위 40MHz 폭이 통신에 할당된 상황에서 국가 재난망이 들어오고 코레일이 들어오면 주파수 간섭을 고려했을때 방송의 몫으로 떨어질 ‘구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통신업계는 국가 재난망을 700MHz 대역 주파수에 할당하자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여기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국가 재난망 구축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만큼 이를 방송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통신이 40MHz 폭을 받은 상황에서 유사한 서비스인 국가 재난망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방송은 해당 주파수 대역에서 퇴출당한다. 교묘한 노림수인 셈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본부터 보자. 통신의 700MHz 대역 주파수 상하위 40MHz 폭 분할할당이 과연 불변의 진리인가? 아니다. 5월 7일 열렸던 한국언론학회의 긴급 토론회에서도 언급됐지만 해당 결정은 방통위 전체회의 의결결과일 뿐, 방통위원장 고시가 아니기에 법적 효력이 없다. 물론 현재 정부 부처는 이런 부분을 문제삼으면 “언급하지도 말아라”고 일축하지만 진실은 진실이다. 방통위원장 고시가 아니기에 해당 주파수 통신 상하위 분할할당은 얼마든지 폐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방송과 통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위기에서 해당 주파수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은 하나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공공 주파수 대역’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전파법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받아들여 해당 주파수 대역을 ‘공공 주파수 대역’으로 선언해 오로지 공익적 용도로 활용되도록 전파의 그린벨트를 조성하는 것이다.
무제한 요금제 도입 및 모바일 IPTV 확장, 와이브로 주파수 비효율 등을 보면 통신이 해당 주파수 할당을 위해 주장하는 근거인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 폭증은 이미 설득력을 상실했다. 또 전세계 해당 주파수 통신 활용설도 당장 미국과 일본, 유럽의 사례를 봐도 ‘어불성설’이다. 여기에 지상파 UHD는 무료 보편의 고품질 미디어 서비스라는 공익을 추구한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해당 주파수를 공익적 요소로 채워 새롭게 구축하는 것은 훌륭한 대안일 수 있다.
자세히 들어가자면 이렇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공공 주파수 대역’으로 선포하고 방송과 국가 재난망, 코레일에 할당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방통위원장 고시가 아닌 40MHz 폭 통신 할당은 폐기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이러한 주파수 구축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700MHz 대역 주파수를 ‘공공 주파수 대역’으로 선포하려면 방송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방송이 해당 주파수로 어떤 공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상파 뉴스 보도 등의 공익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첫 번째는 지상파 UHD 하나로 커버하기에 부족한 경향이 있지만 직접수신율 제고 및 다양한 방안들이 추진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다.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봐도 지상파가 과연 제대로 된 재난방송을 실시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단, 이 대목은 수돗물로 비교할 수 있다. 수질이 좋지 않다고 수도관을 막아버리고 생수만 구입해 씻고 마시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수도관을 확실히 정비하고 수질의 근원인 수원지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