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민주주의와 디지털 환경의 미래를 가늠하는 결정적 시기다
강혜란(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희망을 노래하고, 서로에게 미처 다하지 못한 격려와 덕담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09년의 시작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여유를 허용해주지 않았다. 따뜻한 집이 아닌 거리에서 연말연시를 맞이하여야만 했고,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이며 보신각 종소리조차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계속 이어졌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다가온 2009년의 의미이고 현주소일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2009년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언론악법을 막아내느냐 못 막아내느냐에 의해 민주주의와 디지털 환경의 미래가 가름되는 결정적인 한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연말 대치가 불가피한 우리의 당면 현실이며, 이를 돌파하는 것이 우리들의 유일한 책무라는 것이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이러한 휴식은 길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2월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 미디어 빅뱅과 산업 활성화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방송통신위원회, 파업의 불법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 노골적으로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보수 언론, 이에 질세라 이어진 경제5단체의 호소까지 이 사안을 둘러싼 저들의 면면이 정말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심할 것은 없다. 그 무엇 하나도 자신하기 어려웠지만 연말 강행을 기어이 막아낸 것을 보면 우리의 힘도 그리 만만치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크고 작은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고 일사불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위력이 있다.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경 투쟁, 노상 철야를 마다하지 않았던 언론노조 조합원들의 헌신적 결단과 이를 지지 성원하였던 학계, 시민단체, 누리꾼들의 소망이 존재한다. 한 발 뒤늦기는 하였으나 결연하게 대응했던 야당도 이제는 기대해볼 만하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목표는 민주주의와 여론다양성을 훼손하는 현재의 법안이 전면 폐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적어도 대결 양상을 보이는 두 개의 주장이 제대로 경합할 수 기회만이라도 얻어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구도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 아직은 장담하기 어렵다. 이유는 공론장으로 나올 때 너무나 취약한 내용의 법안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안의 내용에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민주주의적 원칙을 싸움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바로 20년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미디어 법안의 내용이다.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하는 사이버모욕죄를 비롯해 여론의 다양성과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조중동방송, 재벌언론의 허용만을 담고 있을 뿐 그와 관련한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방송법과 신문법의 개정 내용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유료방송 중심의 디지털 방송 환경 구축과도 절묘하게 맞닿아 있어 시청자의 매체 선택권이나 알권리를 전면적으로 위협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결국 이 법안의 통과는 산업 활성화나 고용의 창출이 아닌 기존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축소와 ‘대기업 중심’ ‘유료방송 중심’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 구축으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하는 문제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해당 사안들을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철저히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게을리 할 때 보편적 서비스의 안정화도 수신환경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는 다른 차원에서 실시간 방송을 포함한 본격적인 IPTV서비스가 개시되었다는 점이다. 또 그로 인한 유료방송 간의 경쟁은 점차 본격화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유료 방송 본격 경쟁에 앞서 정비되어야 할 보편적 방송서비스의 체계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계속 뒤처지고 있는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도 무료 방송의 안정적 수신 체계 존립에 대해 안심할 수 없는 모양새다. 이처럼 큰 틀에서 미디어 구조 재편이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 속에 휘말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의해 주도되는 변화는 성큼 우리 곁을 파고들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우려를 던져 주는 대목이다. 참으로 고단한 2009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