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국회에서 재논의하라는 결정”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 이하 헌재)가 지난 25일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미디어법 2차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재판관 4(각하) 대 1(기각) 대 4(인용) 의견으로 기각했다. 권한쟁의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출석 재판관 과반수(5명)가 인용 의견을 내야 한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은 신문법‧방송법 등을 포함한 미디어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그러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 93명은 미디어법 가결 선포는 무효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했고, 같은 해 10월 헌재는 “표결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인정되지만, 법 자체를 무효로 해달라는 청구는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헌재가 위법성을 인정한만큼 국회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회의장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지난해 12월 두 번째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각하 의견을 낸 목영준‧민형기‧이공현‧이동흡 재판관은 첫 번째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 당시 권한침해만을 확인하고, 미디어법 자체를 무효라고 결정하지 않은 이상 더는 문제 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희옥‧송두환‧조대현 재판관은 “국회 입법절차가 위법하게 진행돼 일부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확인한 것은 이를 바로잡아 위법성을 제거하고 침해된 권한을 회복시키라는 의미”라고 밝히며 인용 의견을 냈다.
이강국 재판관 역시 인용 의견을 내며 “국회의장은 헌재가 별도로 취소 또는 무효 확인 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법적‧사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신이 야기한 위헌 및 위법 상태를 제거하고 합헌‧합법 상태를 회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의 미디어법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한나라당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나선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상식을 벗어난 정치적 결정”이라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헌재의 판결은 1차 권한쟁의 심판 때 헌재가 미디어법의 무효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처리 과정에 위법성이 있어도 국회가 이를 제거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라며 “결국 헌재의 부작위가 국회의장의 부작위를 정당화시켜준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 역시 논평을 내고 “헌재의 이번 기각 결정은 또 한 번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결정이며 그나마 있던 헌재의 권위를 깡그리 유실시킨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헌재 결정 직후 성명을 발표한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이하 미디어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은 거듭 국회에서 재논의하라는 것”이라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사업자 선정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도 논평을 내어 “재판관 5인의 견해는 종전 결정에 따라 미디어법 심의‧표결권 침해행위를 제거할 의무를 국회가 부담한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장과 여당이 미디어법의 위법‧위헌성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