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통제를 둘러싼 조약 제정을 놓고 회원국 간 갈등을 빚었던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가 국제전기통신규칙(ITRs) 개정안을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인터넷 통제 조항 신설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대표 국제기구인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주최로 지난 3일부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WCIT에선 전통적으로 담당해왔던 전기통신 분야 외에 인터넷을 둘러싼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면서 미국과 캐나다를 주축으로 하는 서방 국가들과 중국‧러시아 등이 의견 충돌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아랍‧아프리카 다수 국가들은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ITU가 그동안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등 민간기구가 행사한 인터넷 관리 권한을 이양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ITU에 인터넷을 관장하는 권한을 주고, 각국 정부에도 인터넷에 대한 강력한 검열과 감시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을 국제 조약의 범위에서 제외하자는 미국‧캐나다 등 서방 국가들과는 상반된 의견으로 개정안을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은 점점 깊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0여 개 국가는 인터넷 통제 관련 이슈 자체가 ITU에서 다룰 사항이 아님을 주장하면서 최종서명에 불참했고, 개정안에는 인터넷 통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정보보호나 스팸 등에 있어 회원국이 공조할 수 있다는 선언적 의미만 들어가게 됐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논란이 됐던 인터넷과 관련된 의제는 회원국 간 의견차이로 각자 의견을 반영하는 선에서 논의가 진행됐다며 개정안에는 인터넷 통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인터넷 통제를 골자로 한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 아랍 등 국가 검열을 일삼는 국가들과 의견을 같이 했다는 것은 인터넷 검열을 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방통위 측은 ‘확대 해석’이라고 일축한 뒤 단지 인터넷 관련 논의에 국제기구가 참여한다는 것에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SNS를 비롯한 여론은 “인터넷 규제에 공산권 국가들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현재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보여준다”며 “IT강국이라고 말 하는 것도 이제는 부끄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편 이번 WCIT는 본문 개정 이외에도 ‘개도국 및 도서국들의 국제 광대역망 접속지원’, ‘국제 긴급서비스 번호 통일 노력’, ‘인터넷 성장 가능 환경조성 노력’, ‘국제전기통신 트래픽 착신 및 교환의 정산 노력’ 등 5개의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오는 2014년 부산 전권회의에서 논의키로 했다. 방통위는 “이번 개정안이 국내법이나 국익에 배치되는 내용이 없으며, 인터넷 관련 이슈에 대해 2013년 서울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2014년 부산 전권회의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