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 평가결과 ‘몸살’
최민선/새사연 교육연구원
얼마전 가수 신해철 씨는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 전문학원 광고 모델로 등장해 논란을 빚었다. 우리 사회 교육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신해철 씨에게 호응을 보내던 사람들의 ‘한 입으로 두 말 한다’는 반발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은 ‘사교육=입시 교육을 더욱 지옥으로 만드는 절대악’이라는 논리에 한번도 동의한 바가 없다며 자신의 의견을 홈페이지에 올려 반박했다.
신해철 씨는 반박글을 통해 “사교육이란 자동차나 핸드폰 같아서 필요하면 쓰고 싫으면 안 쓰면 되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공교육은 음식 같은 것이라서 없으면 죽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고 밝혔다. 정당한 지적이다. 사교육은 시장의 논리로 이뤄지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 여부가 중요하며, 공교육은 사회 공공재의 성격이 강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교육현실은 과연 그의 말처럼 돌아가고 있을까. 최근 교육계는 정부가 공개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관한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7년까지 3~5%의 표집조사를 하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부터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로 바꿔 ‘일제고사’라고 불리는 학업성취도 평가는 시행 전부터 교육전문가나 단체들 뿐 아니라 학부모, 학생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지역․학교․학생 간 입시경쟁 심화와 서열화로 인한 학교 교육과정 파행운영, 그리고 교육양극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표집조사로는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학력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마련되는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성적 공개로 드러난 지역별 학교별 학력차는 이미 표집형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실태파악이 아니라 정부가 이러한 현실을 알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결국 교사 11명을 파면․해임시키는 등 강경한 자세로 일제고사를 치렀고 그 성적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초․중학교는 지역교육청 단위, 고등학교는 시․도교육청 단위까지 ‘보통이상, 기초, 기초학력미달’의 3단계로 나눠 결과를 발표했다. 당연히 각 언론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누가 좀 더 빨리 180개 학군의 서열을 보기 쉽게 보도하느냐의 경쟁이었다. 성적 공개는 예상대로 농촌지역의 성적이 도시에 비해 심각하게 낮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같은 도시 내의 학력격차도 크게 벌어졌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역시 도시 내에서 ‘사교육의 1번지’라 불리는 서울의 강남, 대구의 동부 지역 등의 성적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와 다른 지점에 주목했다.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 단계로 올라가면서 ‘보통학력 이상’ 학생들의 비중이 감소하고 ‘기초학력미달’은 증가했으므로 이는 그동안 지속된 하향평준화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2년간은 기초학력 미달학교를 지원하겠지만 이후에는 성적이 좋은 지역․학교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성적이 나쁜 지역․학교에는 지원을 축소시키겠다고 밝혔다. 지역 간, 학교 간 경쟁을 통해 학력 상승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학년이 될수록 성적이 부진한 학생이 많은 것은 하향평준화의 결과라고 딱 잘라 말했지만 그에 대한 어떠한 근거나 설명도 없다. 사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과정이 심화돼 공부가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학력의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어린 아이도 다 아는 상식이다. 게다가 공개된 성적 결과에서 초등학생은 2.4%, 중학생은 10.4%, 고등학생은 9.0%가 기초학력 미달학생으로 중학생의 학력미달학생 비중이 고등학생보다 더 크게 나타나 정부의 결과분석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하게 한다.
각 지역․학교에 성적순으로 인센티브와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부의 발상 역시 아이러니다. 성적이 좋은 지역․학교에 상을 줘 독려하는 것이야 바람직할 수 있지만 성적이 나쁜 지역․학교에 벌을 주겠다는 것은 마치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넌 공부할 필요 없으니 나가 있어!”라고 말하는 교사의 모습 같다. 오히려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을 위한 구체적인 학력상승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과 그에 대한 지원 등 장기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함에도 경쟁을 통해 학교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촉진시켜 낙후된 학교는 가차없이 폐교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일제고사 성적결과는 ‘하향평준화 정책’이 아닌 ‘교육양극화 정책’이 원인으로 분석돼야 한다. 사교육과의 접근성이 큰 지역,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켜줄 경제적 여유를 가진 부모가 모여 사는 지역 등이 높은 성적을 보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우리의 교육현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이 아이들의 성적을 좌우해 사회양극화의 정도가 교육양극화로 이어지는 양상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지난 27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8년 사교육비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 규모가 20조 9천억원으로 경기침체 속에서도 2007년에 비해 4.3% 증가하고, 소득수준별로는 월 700만원 이상 가정의 1인당 월 사교육비가 약 47만원인데 비해 월 100~200만원 가정은 약 11만원, 월 100만원 미만 계층은 약 5만원에 불과해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른 사교육비의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왜?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이 자녀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학원!” 신해철 씨가 광고한 특목고 전문학원의 광고 카피는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교육은 선택이고 공교육은 필수’라는 신해철 씨의 반박은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가에 대한 논의는 접더라도, 자녀에게 맞춤형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면 사교육을 시켜야 하며, 가능한 많은 돈을 들일수록 효과가 좋다는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의해 제한돼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생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 자녀의 능력과 적성에 맞은 다양한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을 교사, 학부모, 학생이 협력하며 만들어가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