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노조 정책실장 박준형
10월12일, 최근 취임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여러 쟁점 중에서도 특히 현행법대로라면 2010년부터 시행되는 사업장단위의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두드러졌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은 "전임자 문제에 관한 노동부의 방침은 한번 싸워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불과 며칠 전인 10월8일에는 여당과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조차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노동배제 정책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경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 쟁점은 하반기 노동정세의 뇌관으로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연기와 혼란을 거듭해온 과정
이 쟁점은 이미 1997년 노조법에 규정됐지만 1999년, 2003년, 2006년 세 번에 걸쳐 연기된 후 2010년부터 시행키로 한 바 있다. 그런데 어쩌면 전혀 별개라고 할 수 있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얽혀드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애초 1997년 법 도입과정에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노동계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조항을 불리하다고 생각되던 것과 연계시킨데 원인이 있다.
이후 2006년의 법적용 유예과정에서 부칙조항이 추가되면서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를 함께 도입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 원래 노동자들의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자했던 복수노조 허용의 애초 입법취지는 크게 훼손되고 노동자–사용자–정부 간의 이해갈등과 알력처럼 사태는 전개되었다.
복수노조 허용이 아니라 교섭창구단일화가 쟁점
2010년 예정된 개별 사업장단위의 복수노조 허용은 “교섭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즉 사업장(개별 기업) 안에서도 기존노조와는 다른 노조를 설립할 자유는 보장되지만, 과반수 노조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교섭권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교섭권이 없으면 “교섭이 결렬될 때”에야 돌입할 수 있는 파업 등 단체행동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단체행동권”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노조를 결성해보았자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모두가 의미없는 일이 되고 만다.
심지어 사업장을 넘어 결성된 산업별노조의 경우에도 교섭창구 단일화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규모있는 산업별노조라도 개별 사업장별로 교섭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따라서 각 노조들은 “기업별 교섭”을 하도록 내몰린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서 노동조건을 맞추어 가기 위한 “산업별 교섭”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적 정의에도 맞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 등 노동계 전체가 복수노조 허용의 전제로 “자율교섭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번 교섭을 해야하는 부담(“교섭비용”의 문제)를 들어 이를 반대한다. 정부는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자율교섭제가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이렇게 “교섭창구 단일화”를 시행하게 되는 과정에서 조합원 자격의 확인, 다수노조 결정을 위한 투표 등 모든 과정에서 정부기관인 노동위원회가 개입하게 되고, 따라서 노조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통제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신종노조탄압?
정부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추진하는 명분은 노조가 사용자로부터 원조를 받을 경우 “지배개입”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어쩌면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조가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노조전임자를 사용자로부터 확보해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당장 유급 노조 전임자를 폐지할 경우 노조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커지자, 노사정위원회(공익위원안)는 “유급근로면제(time-off)”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용자와 교섭하거나 조합원의 고충처리 상담을 하는 등, “사용자의 노무관리와 관련된 업무”에만 노조간부의 활동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오히려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애초 법안 도입에 대해 정부가 스스로 제시한 명분마저 허무는 방안이다.
노동기본권 확대가 원칙
이렇게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가 꼬이기만 하는 이유는, 정부가 이 쟁점을 “노조 길들이기”에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권의 한 부분인 “노동권”을 보다 폭넓게 보장하자는 원칙에서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막무가내 입장은 문제가 있다.
복수노조에 대한 내용이든, 전임자 임금에 대한 것이든,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