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한중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해 11월 10일 협상 타결을 선언한 지 3개월여 만에 가서명에 성공했다. 본 서명에 이어 국회 비준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올해 말까지는 모든 절차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곧 13억이라는 중국 거대 시장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만큼 다양한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콘텐츠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중 FTA 체결 직후 “영화 및 TV 분야에서의 공동 제작, 방송시청각서비스의 협력 증진, 엔터테인먼트에서의 합작기업 설립 개방 등을 통해 양국의 문화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저작권을 강화해 중국 내 한류 콘텐츠도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콘텐츠 산업이 상당한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장밋빛 전망이 위험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 콘텐츠 규제가 여전히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중국의 자본이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지적이다. 또한 중국 자본으로 인해 제작 노하우 및 인력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어 국내 콘텐츠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선의 한국방송협회 정책전문위원을 만나 한중 FTA가 국내 콘텐츠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지상파 방송사를 포함한 국내 방송 업계가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은 이선의 한국방송협회 정책전문위원과 일문일답이다.
– 한중 FTA에서 콘텐츠 분야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중 FTA는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10여개 부처가 협력해 진행된 것으로 주로 자동차, 반도체, 에너지 등 공산품에 초점을 맞춘 협상이다. 이중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 서비스나 저작권 분야를 담당했는데 먼저 문화 서비스 분야의 골자는 △엔터테인먼트 분야–합작 또는 합자 형태의 공연장경영업 및 공연중개업 설립 허용 △스포츠 분야–스포츠 이벤트 프로모션, 이벤트 조직 및 스포츠설비 운영업 허용 △여행 분야–한국 여행사의 아웃바운드 업무 즉 중국인 대상 해외여행 업무 허용 등이고, 저작권 분야는 △방송 콘텐츠 보호기간 연장( 현행 20년→50년) △음반의 2차적 이용 관련 보상청구권 부여 △방송사업자의 배타적 권리(재방송이나 복제 및 고정 등) 부여 △일시적 복제권 부여 △이용통제(CD 복제 방지 장치) 및 접근통제(인터넷카페 ID 로그인 등) 우회 금지 △권리자 추정(민사, 형사, 행정 절차에서 성명이 표시된 사람을 권리자로 인정) △영화관 도찰 금지 △인터넷상 반복적 침해 방지 등이 주요 합의사항이다.
– 한중 FTA로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이 대폭 강화돼 한류 콘텐츠가 많은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한중 FTA 체결로 국내 콘텐츠 산업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실질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한중 FTA 협상에서 문화 서비스나 저작권 등 콘텐츠 관련 분야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콘텐츠 산업 자체에서 큰 혜택을 보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방송 콘텐츠 등 상대국의 문화 정책과 관련된 문제제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엄격한 법 적용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한중 FTA로 저작권 등에서 여러 가지 조항을 마련했다고 해서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지도나 행정조치가 갑자기 강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특히 중국은 불법 다운로드와 해적판이 판을 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 콘텐츠 보호기간을 50년으로 늘렸다고 해서 우리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방송 콘텐츠는 트렌드를 주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인데 중국 내 저작권 보호를 통한 양성화된 유통 시스템이 확보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대중국 콘텐츠 수출은 기대하기 곤란하다. 방송사업자 간 자율적인 계약이 오고가도록 놓아두는 게 오히려 콘텐츠 사업자에겐 이득이다. 즉 정부차원의 저작권 강화 실천요구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현실속 에서 중국 저작권 업무의 핵심부서인 판권중심(저작권중앙위원회)이 검열 등 사전규제 조치만 양산할 경우, 사업자간 협상으로 제대로 진행되던 계약이 어그러거나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사업기회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높이지게 된다.
– 중국은 지난 9월 중국 온라인을 통해 제공되는 외국 콘텐츠가 중국 콘텐츠 총량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올해 4월 발효 예정)를 만들었다. 한중 FTA 체결에도 불구하고 올해 4월부터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국 콘텐츠 시장의 벽은 높다. 수많은 규제들이 존재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가이익에 반해서까지 해외 저작물이나 저작권자에 대한 무한한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신문 관련 업체 △도시 및 신문‧잡지의 출판, 총 발행과 수입 업무 △음향 제품과 전자출판물의 출판, 제작과 수입 업무 △라디오 방송국, TV 방송국, 방송TV채널, 방송TV전송봉사네트워크 △방송TV프로그램 제작경영회사 △영화제작회사 및 발행회사, 영화상영회사연맹 △뉴스 인터넷 홈페이지, 네트워크 시청 프로그램 서비스, 인터넷접속서비스, 인터넷문화경영 △녹화제품방영회사 등의 사업진출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자국 문화를 철저히 보호하는 시스템이란 것이다. 중국은 절대 해외 콘텐츠에 개방적이지 않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0년 해외 드라마 수입 및 방영 관리가 강화되면서 채널당 편성이 25%로 제한되고, 프라임타임 때 방영이 금지됐다. 2013년에는 위성방송의 포맷수입 제한 조치로 콘텐츠뿐 아니라 포맷 수출길도 막혔다. 올해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선 심사 후 방영 및 방영 총량제가 도입됐다. 사전심의 통과까지 최소 6주에서 최대 6개월이 걸려 해적판 콘텐츠 유통을 더욱 부추기고, 그 결과 제대로 절차를 밞은 콘텐츠 수출 가격은 점점 떨어지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 플랫폼에 이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규제 더 나아가 해외 프로그램 수입 제한 조치 등으로 앞으로 한류 콘텐츠 수출은 점점 줄어들고, 수익도 하락할 것이다.
– 결국 한중 FTA 체결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수출이 급격히 증가한다던가, 저작권 보호로 혜택을 받는다던가 하는 이득은 없다는 것인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중국 자본이 국내 콘텐츠 산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한중 FTA가 발효되면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이미 국내 콘텐츠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외주제작사를 중심으로 중국 큰손의 거액 투자 제안에만 관심을 갖는 상황이다. 중국 돈으로 드라마를 제작해서 큰 돈을 벌겠다는 한탕주의 사례가 늘고 있다. 또한 고액 스카우트를 제안을 받아 개별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PD나 작가, 연기자들이 국내와 중국을 번갈아 오가면서 제작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들이 끌어올린 비용 즉 연출비나 원고료, 출연료를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제작비 인플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방송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스토리를 단순화하여 등장인물 수를 축소하는 등 다른 제작요소에 대한 제작비용을 줄이게 된다. 그 결과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정리하자면 ‘중국 자본 유입→원고료, 출연료 등 인건비 상승→다양한 제작요소 투자의 감소→콘텐츠 경쟁력 저하→국내 콘텐츠 수익 감소→(또 다시) 중국 자본 유입’의 악순환을 낳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개별적으로 진출한 제작자들의 활동으로 제작 노하우가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프로그램 포맷을 중국에 수출하면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아 중국 이외에 다른 국가에도 수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자가 개별적으로 중국에 진출할 경우 콘텐츠에 대한 모든 권리는 중국 투자자가 갖기 때문에 결국은 중국의 노하우로 축적될 수밖에 없어 콘텐츠 제작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 그렇다면 중국 자본의 유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정책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국내 콘텐츠 산업이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만과 홍콩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대만은 1999년 케이블방송법을 개정하면서 유료방송에 국내 프로그램의 의무편성(25%)을 없애고, 통신회사의 케이블 교차소유를 허용하는 등 유료방송의 규제를 완화했다. 이때 우후죽순 탄생한 유료방송사들은 자체제작보다 해외 프로그램 수입에 몰두했고, 흥미 위주로 편성되는 유료방송으로 광고가 집중됐다. 결국 재원 마련이 어려워진 지상파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는 시사나 보도 프로그램 제작에만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대만의 콘텐츠 산업 기반이 붕괴됐다. 또한 반환 이후 홍콩의 영화시장은 제작인력의 중국 진출로 시장 자체가 축소됐다. 2009년에는 홍콩 제작업자들의 중국 진출이 더 늘어났지만 중국 연기자의 비율을 1/3 이상으로 강제하고, 홍보와 배급 등을 중국 내 합자회사에서 담당하면서 성과의 대부분을 중국 본토 기업이 가져가게 됐다.
이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 콘텐츠의 80%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진흥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현재 전체 광고시장은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SBS 기준 지난 2002년 6,500억 원 이상이었던 광고 매출이 2014년 말에는 4,000억 원 대로 뚝 떨어졌다. 반면 2004년 편당 5,000만 원 선이었던 미니시리즈 제작비는 2014년 4~5억 원 이상으로 상승했다. 제작비 조달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광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지상파 중간광고 확대 등을 통한 광고시장의 규모 확대로 매체 간 상생의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상생과 협력이 가능토록 특수관계자 비율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 즉 다양한 협력 제작 모델로 중국 자본과 경쟁할 수 있도록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자본은 외주제작사 투자가 자유로운 반면 국내 방송사는 특수관계자 규제로 외주제작사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국가 차원의 역차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스타PD나 작가 등 우수한 제작인력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면 특수관계자 조항의 폐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국내 방송 업계는 한중 FTA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는 문화서비스를 해야 할 존립명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콘텐츠 제작의 핵심기반 구축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비록 광고매출 감소로 지상파 방송사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인력과 시설, 장비에 대한 투자는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매년 우수한 인력을 PD로 선발해 10~15년 동안 투자하면서 스타PD로 키우는 것도 이러한 일의 연장선이다. 이렇게 육성된 PD들이 <런닝맨>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포맷을 수출하고, 공동제작을 통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해 한류를 부흥시키고, 추가적인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한중 FAT에 제대로 대응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