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영 한국언론정보학회장 ...

[파워인터뷰] 유선영 한국언론정보학회장
공영방송 정상화, 첫 번째 숙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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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구현, 가장 시급한 과제

[방송기술저널] 2015년은 공영방송의 명운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오는 8월과 9월에 공영방송 KBSMBC, EBS 이사진이 대거 교체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이사는 사장 선임부터 깊숙이 관계돼 있기 때문에 이사 선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영방송 정상화 여부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 끼울 구멍이 없어지듯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은 공영방송 정상화에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벌써부터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임기를 남기고 사퇴한 이길영 전 KBS 이사장 후임으로 뉴라이트 역사학자인 이인호 이사장을 추천했다. 또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인 곽성문 전 새누리당 의원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으로 선임하는가 하면 5월에는 이석우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시청자미디어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비판했지만 방통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낙하산 인사들로 자리를 메꿨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현업 언론인 단체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20개 언론시민사회단체는 624공정방송 회복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이하 공추위)’ 발족을 선언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공추위 공동 대표인 유선영 한국언론정보학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정방송이란 무엇이고, 공추위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어떤 활동을 펼치고자 하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Q.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앞두고 공추위가 발족했다. 무너진 공영방송을 바로 잡기 위해 공추위가 나서겠다는 것인데 공영방송이 무너진 근본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최근 방송 관련 학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전국언론노조한국언론정보학회 주관)에서 응답자의 80%는 공영방송이 공정하지 않다고 평가했고, 70%는 공영방송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공정성 구현을 꼽았다. 그리고 공정성 저해 요인으로 70%가 정치권력을, 20%가 경영진을 꼽았다. 현재 지배구조 하에선 경영진과 정치권력을 분리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절대 다수가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진단한 셈이다. 공정성은 문화적 다원주의나 창의적 콘텐츠 생산 등 공영방송이 실현해야 하는 여러 가치 중 하나이지만, 가장 근간이 되는 기본적인 가치이자 운영원리임을 학자 등 방송 전문가들이 다시 확인해 준 것이다. 공정성이 공영방송의 전부는 아니지만 공정성이 없다면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 공정한 가 아닌 가의 판단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는, 방송법에도 규정되어 있듯이 방송사의 구성원들에게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하고 어떤 외적인 규제나 압력도 받지 않는 자유 상태에 두는 것이다. 그들에게 공적인 책무를 부여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면 그 결과물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그 사회에 최선일 것이라는 신념이 자유주의에 근간을 둔 민주주의체제에서 방송의 독립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인 것이다. 지난 1심과 고등법원에서 MBC, KBS 구성원들의 공정방송 실현을 위한 파업은 정당한 파업이라고 무죄 판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보면 공영방송이 무너진 근본 원인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와해시킨 정치권력 혹은 정치와 권력의 개입이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이 독립적으로 편성과 보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정치와 권력의 개입을 상설화한 지배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방송학자 조사에서 92%가 공정성 구현을 위해 우선적으로 공영방송지배구조를 개선해야한다고 한 것은 지배구조가 부조리하게도 정치에, 권력에 종속되어 있음을 문제시한 것이다. 정부기구인 방통위가 단독으로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후보자 추천권한을 가진 것, 3:3:3의 지분을 가진 대통령, 여당, 야당이 각기 지명한 이사들, 즉 정부여당 6, 야당 3의 비율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 그리하여 정부편향적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사장을 선임하고 편성과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구조가 공영방송이 권력에 휘둘리고 정치적으로 편향되게 만드는 근본 요인인 것이다. 이 구조 하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2/3의 이사를 선임하는 수권 정부여당의 속성과 양식에 따라 심한 편차를 드러내며 요동친다. 말하자면 정권이 달라지면 공영방송의 행태도 180도 달라지게 되어 있는 정치종속적 지배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공영방송 조직과 임직원들의 노동조건도 선거를 전후로 불안정성이 가중되며 외부의 영향에 민감해지는 가 하면 장기적 경영목표 추구는 물론 개별 방송주체들의 직업안정성도 저하되어 결국은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것이 학계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진단이다.

Q. 공추위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기준 강화 등 기존 언론시민사회단체가 요구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이사 후보 적임자들을 직접 추천하겠다고 선언했다. 특정 인물을 선정하고 추천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어떻게 결정하게 됐는지.

A. 공추위의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이 정치종속적인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대통령, 정당이 과점하고 있는 이사 선임 권한의 일부를 시민사회가 양도받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현재 형식적으로는 방통위가 이사 후보 추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데 공추위의 문제의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방통위는 단독으로 후보추천을 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자가 포함된 독립적인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추천위원회에서 이사 추천을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즉 유럽 국가들의 경우처럼 정부와 시민사회,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독립적 추천위원회가 이사 추천 권한을 가짐으로써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공영방송이사회를 구성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공추위는 방통위, 정부, 정당이 배제한 시민사회의 추천권 한을 스스로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보면 된다. 지금으로선 공추위의 자격 기준에 부합하는 특정한 인사를 추천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민사회의 다양성이 반영된 독립적 추천위원회를 통해 공영방송의 이사를 선임하고 독립성을 구현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Q. 후보자 선정 기준을 보면 공영방송 독립에 대한 이해와 비전 공영방송 경영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판단 능력 공적 가치에 대한 신념과 공적 책무 실천 경력 등이 있다. 기준을 바탕으로 공추위가 생각하는 공영방송의 정상화란 무엇인가.

A. 2012KBS 이사추천후보위원회가 만든 5개의 기준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다소의 수정과 보완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시민사회 그리고 공추위 대표단과 추천위원들 모두가 이견없이 합의하고 있는 기준은 공영방송 독립에 대한 이해, 비전과 철학이다. 앞에서 역설했듯이 공영방송을 정치,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독립이 확보되면 공영방송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여론 대변, 문화적 다원성의 증진, 소수자의 시민권과 인권을 고양하고 문화생산물의 창의성과 수월성을 높이는 본래의 직무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역할이 정상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뉴밀레니엄에 이르러서도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시대착오적이다. 정상사회라면 공영방송의 지속가능한 경영, 기술도입과 방송 구조 개편, 신기술 활용, 재정과 금융, 지구화 변화에 대응하는 방송의 역할 등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사회 구성을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 정치의 결정력이 과부하된 사회의 비정상성을 공추위도 공추위의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겪고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공영방송의 공정성 구현이 시급하기 때문에 후보자격기준도 여기에 맞춰지고 있다. 그리고 후보자의 경력, 전문성, 혹은 공적 책무를 수행했거나 발언하고 주장했던 이력을 통해 적임자를 판별하려고 한다. 공추위는 이 판별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각자의 전문성, 경험, 식견과 입장을 공유하고 조율하기 위한 시민사회 기구이다.

Q. 공추위 발족이 의미가 있으려면 공추위에서 추천하는 인물이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추위 자체가 찻잔 속 태풍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공추위가 추천하는 인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 공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각의 우려가 공추위의 자격기준에 부합하는 유능한 적임자들로 하여금 공추위 추천을 주저하고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더욱 우려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공추위가 추구하는 목표와 노력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옳지도 않다. 공영방송이 필요한 사회적 제도인 것은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의 모습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시민사회와 공추위의 노력은 그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노력이므로 타당하고 필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실패의 확률이 높음에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많은 것 중에 공영방송이 있기에 찻잔 속에 태풍일지라도 시도하는 것이다. 공추위의 활동이 운동이 아닌 시민권의 당연한 행사로, 즉 공영방송제도의 민주적 절차로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믿음의 시선으로 봐주길 바란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공추위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 한계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공추위의 한계는 현실이다. 이 현실은 극복하거나 돌파하기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일각에선 언론의 이름으로 공추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음모론일부 시민단체가 야당지분을 독점하기 위한 이벤트라는 설을 제기하며 그 의미를 폄하하기도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공추위는 온전히 기능하지도 끝까지 달리지도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이 한국 사회에 필수적인 제도라는 철학을 가지고 공영방송 경영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가진 역량있는 분들이 많이 지원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