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유휴대역(White Space) 이용정책 도입에 대한 우려

[특별기고] TV유휴대역(White Space) 이용정책 도입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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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미래방송연구회 학술국장)

지난 4월 8일 한국정보화진흥원 대회의실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는 ‘TV유휴대역 이용정책 세미나와 토론회’가 있었다. 소위 ‘TV유휴대역’이란 TV주파수를 채널별·지역별로 분배하는 과정에서 간섭과 혼신을 피하기 위해 허가 권역별로 사용하지 않고 비워두는 대역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이번 세미나는 이 비워둔 채널에서 TV방송과 다른 방식의 통신서비스를 운영해보자는 논의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하지만 위에서 밝혔듯이 소위 ‘TV유휴대역’은 용도가 전혀 없는 구간이 아니다. 인접·동일 채널을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간섭과 혼신을 피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비워두는 대역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TV유휴대역’이라는 표현도 방송사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썩 듣기 좋은 명칭은 아니다. 온전히 방송 이외의 통신 분야에서 바라본 시각으로 붙여진 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명칭이 어찌되었건 간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엄연히 지상파 방송이 활용 중인 이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려 하면서 방송사 및 방송기술인과는 일언반구 제대로 된 사전협의나 공청회 한번 갖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야심차게 올해 6월까지 서비스 아이디어와 사업자를 모집하고, 11월까지 제반 실험을 끝내며, 올해 말까지는 서비스 계획을 마무리 짓고, 2012년 내년부터 시험서비스를 실시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방송사에서 바라보자면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Ch.2~51의 1차 사용자인 방송사는 이제야 1세대 디지털 전환 작업에 착수해서 2012년에야 완료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방송수신환경 개선이나 미래 차세대방송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제야 걸음마를 때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이 아닌 통신 용도로 지상파 방송대역의 주파수 사용권한을 주자는 논의가 발생하니 마치 집주인이 통보도 없이 한 방에 두 세입자를 들여놓는 격으로만 여겨진다.

우선 이 정책이 염려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하려고 하니까 우리도 빨리 해야 한다’는 미국 모방형 주파수 정책의 위험성 때문이다.
방통위는 앞서 미국이 추진한 700MHz 대역(Ch.52~69) 방송 주파수 회수 및 경매를 똑같은 방식으로 모방하는 중이며, 방송 주파수의 회수와 경매가 과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지 방송사와 방송기술인들의 우려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은 방통위가 우선 주파수 생태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방송 주파수 경매부터 찬찬히 검증해야할 시점이다. 그런데 이런 혼란의 시기에 또다시 ‘TV유휴대역 이용정책’이라니……. 하나의 폭풍이 체 가시기도 전에 연이은 폭풍을 대기시키는 꼴 아닌가? 방통위에게 지상파 방송사는 ‘화수분’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만 보이는 건가?

2012년부터 DTV방송은 기존보다 54MHz가 좁아진 470~698MHz(Ch.14~51), 228MHz대역폭 안에서만 송출할 수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료 보편적 방송을 하고 있는 지상파에게는 다채널 서비스 실험방송 한번 허가해주지 안으면서 대뜸 이 좁은 대역 안에 통신 서비스를 우겨 넣겠다는 발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실 통신 서비스는 지금도 700MHz이상 수십GHz에 이르는 엄청난 주파수대역을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주파수’다 ‘Blue Diamond 주파수’다 하면서 통신에 주파수를 조금이라도 더 떼어주려고 하는 정부의 ‘편애’를 이해할 수 없다.

간섭과 혼신이 없는 안정된 방송을 위해 방송사들이 하나하나 신경 써서 배치해놓은 빈 주파수 대역에 White Space 라는 이름을 붙이고 통신 서비스에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를 시작한 곳은 미국이었다. 처음에는 CR(Cognitive Radio)라는 이름의 간섭회피기술로 장비가 위치하는 지역에서 방송전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채널들을 장비 스스로가 찾아내어 저출력 통신을 할 수 있는 능동형 간섭회피 이론의 적용을 의무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수년 동안의 실험에서 현재의 기술로 실용화하기에는 역부족이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등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2008년 미국 FCC는 CR기술에 의한 간섭회피기술 적용 의무화 추진을 당분간 유예하고 DB방식을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DB방식이란 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TV방송 주파수 현황과 각 송신기의 전달영역을 세밀하게 측정하거나 시뮬레이션 하여 지역별 간섭이 없는 영역을 찾아서 미리 DB(Data Base)화시키고 빈 주파수 영역을 참고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DB방식이란 사용하려는 통신장비가 GPS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고 그 위치에서 방송에 간섭이 없는 주파수를 메모리 된 DB에서 찾거나 기지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방송에 피해를 주지 않고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수동형 간섭회피 방식이다.

하지만, 만약 위에서 설명한 DB방식으로 White Space 저출력 통신이 활성화된다면 머지않아 방송사가 새로운 TVR을 세우거나 방송환경의 변화를 주고자 할 때마다 DB제공회사에 자세한 변경사항과 측정데이타를 알려야 하고 통신장비에 피해가 없는지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널리 확산된 저출력 통신장비들 탓에 더 이상 방송 중계기 설치가 어렵거나 그 마저도 도리어 역보상을 해주면서 난시청 해소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더구나 이미 DB방식을 활용하는 미국의 광활한 지형은 좁고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 지형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동일한 MFN 방식을 사용할지라도 주파수 권역이 넓은 원형으로 나타나는 미국과는 달리 불가사리 형태의 들쑥날쑥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런 지형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TV주파수 대역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혼신과 간섭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건 명약관화하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UDTV, 3DTV, Full-HD, Full-HD 3DTV, HD-MMS처럼 새로운 형태의 차세대 방송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확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TV유휴대역’이라는 공격적인 접근방식 속에서는 당장 Data 방송을 위한 리턴 채널이나 VOD·NRT 서비스 등이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어보인다.
가장 아쉬운 일은 난시청 해소를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야할 주파수 자원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방송기술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난시청 해소를 위한 극소출력 중계기의 효용성을 제안한 바 있다. 극소출력 중계기란 메인 송신기로부터 전파를 받아 아주 작은 비면 허 출력으로 재송신 해주는 소형의 장비다. 메인 송신기의 전파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별도의 주파수로 변환하여 재송신하는 ‘이종주파수 소출력 중계기’ 방식을 정부는 허락하지 않고 있다. MFN(이종 주파수 방송망)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된 우리나라 주파수 생태계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SFN(동일 주파수 방송망) 형태의 ‘동일채널 중계기’만 허락하는 모순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 ‘TV유휴대역’을 통신서비스에 할애하려는 계획은 급속도로 진행시키면서도 동일한 영역에서 방송의 수신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은 고집스레 거부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은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의 방통위 정책을 보자면, 통신 서비스는 어떻게든 확장해야 하고, 지상파 방송 서비스는 최소한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철학인 것 같아 보인다. 수신환경개선을 최우선의 과제로 여기는 방송기술인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TV유휴대역에 대한 DB를 활용해서 MFN 방식의 극소출력 중계기를 활용해서 수신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더 나아간다면 방송 주파수 대역의 운영권을 오롯이 방송사에 일임해서 MMS(Multi Mode Service) 서비스와 같은 무료 디지털 서비스로 활용하는 것이 궁극적인 형태일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아직도 다채널방송이나 MMS 서비스의 실험송출 조차 불허하고 있는 방통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주파수에 대한 편애와 편견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산업논리만을 앞세우고, 우리나라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식을 모방하기만 하는 주파수 정책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의 Side by Side 3DTV 방송을 서둘렀던 정부의 실책을 생각해보라. 방송 주파수의 특성과 전송방식, 제작구조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두르기만 했던 설익은 정책은,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아 3DTV 송출방식이 바뀌었고 결국 3DTV 수상기를 출시한 가전업계만 약간의 단맛을 봤을 뿐 1년여가 지난 지금 콘텐츠 부재, 제작 시스템 미흡이라는 전형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방통위는 이 뼈아픈 경험을 벌써 잊어버렸나? ‘TV유휴대역 이용’이라는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도 그 때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아서 또 다시 용두사미 정책의 반복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방송 주파수는 모든 국민에게 꾸준히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야 하는 가장 공익적인 주파수대역이다. 방송은 최고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며 누구나 쉽게 수신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방송 주파수 대역은 국민에게는 산소와도 같은 대역이며 전파의 그린벨트와 같은 소중한 대역이다. 그린벨트가 한번 수익을 목적으로 난개발되기 시작하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이킬 수 없게 되듯이,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로 방송 주파수 대역에 통신 서비스를 채워넣으려는 정책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주파수 생태계는 언제나 산업적 논리보다 공익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