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톱박스 없이 TV만으로 디지털 케이블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클리어쾀(Clear QAM)’ 기술 도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언론학자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 대다수가 클리어쾀 기술 도입에 반대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8일 오후 2시 미디어미래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2차 2020미래방송포럼 ‘방송 복지 제고를 통한 국민 행복 구현’에 발제자로 참석한 정인숙 가천대 교수는 ‘본격 디지털 시대의 시청자 복지 정책’을 발표하면서 “유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정책 중 하나인 클리어쾀 도입을 놓고 찬반이 나뉘고 있는데 ‘클리어쾀 TV의 저가 상품은 결국 저가 경쟁을 낳을 것’이란 의견에 10명 중 7명이 동의하는 등 클리어쾀에 대한 관련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 앞으로도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클리어쾀은 TV 안에 칩을 내장하면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로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클리어쾀 TV 판매를 앞두고 있고, 케이블 업계도 이를 위한 기술적 준비를 3월 말까지 완료한다는 입장이며, 정부 역시 오는 6월까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계획하고 있어 상반기 중에 클리어쾀 TV 서비스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 달리 클리어쾀은 신기술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기술로 양방향 채널이나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제공하는 않는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즉 시대에 역행하는 기술로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 저가화 현상을 불러 일으켜 종국에는 미디어 패러다임의 질적 하락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학자 등 관련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클리어쾀 도입은 소득 수준 하위 30%를 위한 기술이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콘텐츠 저가 시장이 고착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클리어쾀을 도입했던 미국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는 1994년 클리어쾀 TV를 업계 자율화로 개방했다가 지난 2012년 10월 13일 모든 케이블 회사를 대상으로 결국 기본 채널의 암호화를 허용하는 ‘클리어쾀 폐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는 수백 개에 달하는 채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저가 클리어쾀 TV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모두가 우려했던 콘텐츠의 가격 하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의 혜택은커녕 콘텐츠의 질적 하락이라는 미디어 생태계 파괴만 일으킨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정인숙 가천대 교수는 “클리어쾀의 도입 시 과연 클리어쾀 기술의 사용연한이 언제까지냐를 두고 봐야 할 것”이라며 “유료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맞물리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언론학자를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의 본질로 돌아가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목적은 난시청 해소와 다양한 디지털 방송 서비스의 제공을 통한 시청자의 권익 향상에 있는데 과연 클리어쾀 기술이 이러한 목적에 맞는 기술이냐는 지적이다.
관련 전문가들 역시 “디지털 전환을 위해 클리어쾀 TV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셋톱박스를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지상파 DTV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듯 취약계층을 위한 클리어쾀 TV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을 내놓는 등 클리어쾀 기술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케이블 매체를 제외한 위성 방송 및 IPTV 업체에서도 “향후 발생하게 될 유료 방송 시장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클리어쾀 도입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특정 사업자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반발하고 있어 클리어쾀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