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클리어쾀 TV를 제조할 때 필요한 기술 표준안을 결국 부결시켰다. 이에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케이블 업계는 표면적으로 ‘예정된 결과’라는 담담한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대로 가다가는 클리어쾀 TV 상용화 자체가 좌초되는것 아니냐’는 위기의식도 상당부분 읽히고 있다. 콘텐츠 저가화 및 디지털 하향 평준화, 지나친 케이블 특화 플랫폼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상용화 전철을 밟아가던 클리어쾀 기술이 다시 한번 암초를 만난격이다.
21일, TTA는 표준총회를 열고 클리어쾀 기술에 대한 표준안을 정식으로 부결시켰다. 유효투표수 438개 중 70%에 해당되는 유효표가 클리어쾀 기술 표준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IPTV 및 위성방송을 보유한 통신업체가 TTA 총회에서 438개 유효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클리어쾀 기술 표준에 찬성표를 던질것이라는 순진한 예상은 하지 않았다"며 "지난 11월 26일 CJ헬로비전, 티브로드, 씨앤앰, 현대HCN, 씨앰비 등 5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이 삼성전자 및 기타 가전업체가 제작한 클리어쾀 TV의 기술 정합 시험을 완료했지만 당시만해도 통신사들의 반발은 강력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KT의 경우 11월과 12월 모두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클리어쾀 TV에 반대를 표명해왔다. 게다가 TTA 표준총회 유효표 중 절반에 가까운 207개를 통신사가 가지고 있다. 기술 표준안 부결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며 애써 표정관리를 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여기에는 TTA 표준 자체가 법적인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클리어쾀 TV의 최종 상용화에는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도 내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분석도 많다. 클리어쾀 TV에 대한 TTA의 기술 표준안 좌초가 안그래도 요원해진 클리어쾀 TV 상용화 가능성을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이유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방통위는 내부적으로 ‘클리어쾀 TV를 보급형 TV에만 한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클리어쾀 TV의 지나친 확장성을 경계하는 통신사 및 지상파 방송사들의 반대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클리어쾀 TV 자체가 다른 미디어 플랫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판국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을 감내해가며 억지로 클리어쾀 TV 상용화에 박차를 가한 케이블 업체에게 이번 TTA 기술 표준안 좌초는 커다란 타격이다.
이에 케이블 업체들은 TTA 기술 표준안 좌초를 두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한편,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이 추진하는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특별법’을 통한 클리어쾀 TV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는 우회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케이블 스마트 셋톱박스 기술 개발’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가까워진 제조사들과의 관계를 활용해 클리어쾀 TV를 반드시 현실화 시키겠다는 의지도 읽히고 있다. 여기에는 케이블 업체의 전국 네트워크 활용을 통한 ‘생태계 구축’을 원하는 제조사들과 ‘망중립성 논쟁’으로 멀어진 통신사의 공백을 제조사로부터 찾으려는 케이블 업체의 화합적 결합이 어느정도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또 케이블 업체가 아날로그 가입자 1,100만을 온전히 케이블로 끌어오기위한 장치로 클리어쾀 TV를 상용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통위에서 내부적으로 추진중인 ‘클리어쾀 기술 보급형 TV 한정론’을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어갈 것인지도 변수다. 물론 케이블 내부에서 SO-PP가 사실상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대의로 클리어쾀 TV에 찬성한다고 하지만, ‘콘텐츠 저가화 ‘를 우려하는 PP의 클리어쾀 반대 기조도 무시할 수 없다. 대의로는 ‘저소득층 지원’이라고 하지만, PP가 클리어쾀 TV에 한시적으로 찬성하는 이유는 PP를 포함하거나, 그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MS0, 즉 케이블 업체들이 지상파 방송과의 재송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장치로 클리어쾀 TV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클리어쾀 TV TTA 기술 표준안 부결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위성방송을 소유한 통신사들이 클리어쾀 TV를 반대한 정황이 그대로 묻어난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반대로 극적인 변화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케이블 내부의 PP가 콘텐츠 저가화를 우려하면서도 재송신료 협상을 위해 대승적으로 클리어쾀 TV에 찬성한 것처럼, IPTV 및 위성방송도 케이블과 같은 지상파 방송사 재송신료 문제를 이유로 클리어쾀 TV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통신사 입장에서는 위성방송의 DCS 문제가 클리어쾀 TV와 같은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는 한편, 클리어쾀 TV 확장성에 대한 강력한 규제만 정해진다면 극적으로 찬성으로 돌아설 확률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클리어쾀 TV의 확장성에 대한 강력한 규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방통위에서 내부적으로 해당 기술을 보급형 TV에만 한정한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또 한번 치열한 논쟁의 장이 펼쳐져야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