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활 문화를 만들어 가며

[칼럼] 새로운 생활 문화를 만들어 가며

2726

[방송기술저널=호요성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최근 김영란법이 발효되면서 우리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예전에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식사와 선물을 포함한 접대와 청탁이 모두 제재 대상이 됨에 따라 기존 접대 문화에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일부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제 때문에 소비가 위축돼 장기적으로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부정 청탁이나 직무 관련성에 대한 구체적 판례가 확립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더더욱 해당 법안의 적용 범위가 불분명하게 정의돼 있어서 적용 대상자의 차별로 인한 형평성 논란도 있는 것 같다.

2~3년 전부터 우리 정부에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과거로부터 지속돼 온 우리 사회 전반의 비정상적인 관행을 혁신해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와 불법 등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바로 잡아서 법과 원칙이 바로 선 투명하고 효율적인 국가와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우리 국민 모두의 기본 의식이 올바르게 정착돼 있을 때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속의 내용보다는 겉의 형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여타의 다른 선진국보다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이 오밀조밀 부딪치며 살아가다 보니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는 기술을 배우면서 성장한다. 때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빠르게 앞서가려는 치열한 경쟁의식 때문에 우리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내며 삶을 즐길 여유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삶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여럿이 식사를 할 때 각자 내기를 하지 않고 상사나 초청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각자 내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모임에서는 안건에 대한 회의를 마친 뒤에 식사를 같이하고 나온 음식값을 균등하게 나누어 지불한다. 이런 경우에 각자 분담하는 음식값은 혼자 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어차피 총액의 1/N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 많이 먹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얄팍한 계산에서 각자 먹고 싶은 것은 모두 주문해 실컷 포식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 사람들은 함께 회식을 하고 나서 자기가 먹은 음식값을 각자 계산하는, 소위 ‘더치페이’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음식값이 비싼 경우에는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스스로 조절해 주문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너무 쪼잔하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기 능력껏 시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마음이 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비슷하기 때문인지, 행사 등록비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일본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 못지않게 많이 먹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용 계약에 대한 개념이 다소 약한 것 같다. 미국인들은 고용 계약을 맺으면 이에 따라 정해진 시간을 엄격히 지키면서 개인적인 전화는 물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삼가면서 철저하게 자기가 맡은 일에 매진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급할 때는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지만, 평소에는 다소 풀어져서 약간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제가 외국 회사에서 일할 때, 부서 회의를 소집하기 위해서 상사가 부하 직원들의 시간을 확인해 모임 일정과 시간을 잡고,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또한 주어진 시간에 회의를 짜임새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 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이를 꼼꼼히 점검해 회의를 성실히 준비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상사가 자기에게 편한 시간을 임의로 잡아 부하 직원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시작하는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끝나는 시간은 아예 알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회의와 관련이 적은 잡담으로 허비하는 시간이 많으며, 본업에 투입할 시간을 빼앗겨 결국 야간 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지금까지 몸에 밴 구태의연한 관습을 버리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생활 문화를 만들어 이를 올바르게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