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2009년 10월 23일 영국의 BBC 앞에서는 시청자들이 BBC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당시 BBC 최고의 토크 프로그램이었던 <퀘스천 타임(Question Time)> 출연자로 극우정당인 국민당(BNP, British National Party)의 대표인 ‘닉 그리핀(Nick Griffin)’이 예고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청자들이 시위를 주도한 것이었다. ‘닉 그리핀’은 인종차별이나 동성애 혐오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이에 영국 시청자들은 ‘우리가 낸 수신료를 인종차별을 서슴지 않는 정당의 목소리를 듣는 데 사용할 수 없다’며 시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지난 이야기지만, 이 시위 장면은 BBC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언론에 비친 장면에서는 한 시위 참가자가 들고 있는 피켓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NO! RACISM AND HOMOPHOBIA ON OUR TV’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즉, ‘우리의 TV에서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증이 등장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OUR TV’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영국 시민들이 갖고 있는 BBC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은 BBC를 ‘OUR TV’ 즉, ‘우리의 TV’로 표현한 것이다.
특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국내의 공영방송사 앞에서도 집회나 시위가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KBS, 우리의 MBC, 우리의 EBS’라는 피켓이나 구호 등의 표현을 본 적이 없다. 집회, 시위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이 특정 공영방송에 대해 ‘우리의 TV’ 혹은 ‘우리의 방송’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우리의 수신료가 사용되는 공영방송에 대해 ‘우리의 TV’, ‘우리의 방송’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시청자들은 이들 방송을 우리의 방송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KBS는 조직 개편을 통해 수신료 추진단과 다채널 추진단을 폐지했다고 한다. 아무리 수신료 인상안이 몇 차례 좌절됐다고 하더라도 공영방송은 수신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낸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독립과 자율을 보장할 수 있는 최적의 재원이자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최소한의 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공영방송은 끊임없이 수신료 현실화에 대해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가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공영방송으로서의 가치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다채널 추진의 축소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송이라면,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의지가 없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KBS는 유일한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 인사이드>의 폐지 이후, 최근 역시 폐지를 결정했다. 언론의 옴부즈맨 제도는 독자나 시청자 또는 소비자의 불만을 수렴해 이를 시정하는 제도다. 즉, 시청자와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KBS 뉴스의 공정성 등을 점검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이마저도 폐지를 결정했다는 것은 시청자의 목소리, 참여를 축소하는 행위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결정에 시청자가 고려됐을지 회의적이다.
시청자들이 특정 방송사를 ‘우리의 방송’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방송사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다. 방송사에 대한 믿음은 그 방송사가 진정으로 시청자를 위하고 시청자에 봉사하며 시청자를 응원할 때 생겨나며, 이는 시청자가 방송사를 지켜주며 지지하는 태도로 나타날 것이다.
영국 국민들이 정부보다 BBC를 더 신뢰한다는 공공연한 말이 있다. 실제 2003년 BBC는 이라크 전쟁에 관해 사실과는 다른 영국 정부의 정보 조작 의혹을 보도하는 심각한 오보를 냈지만, 당시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은 영국 정부 보다 BBC를 3배가량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BBC는 ‘공영방송 BBC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공정하고 옳다고 믿는 편에 서는 것이며, 공정하고 옳은 원칙 중 하나는 시청자’임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BBC는 ‘시청자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만큼 BBC는 영국 국민에게 신뢰를 받고 있으며, 또한 영국 국민은 BBC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과연 언제쯤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방송’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송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