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락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이른바 지라시 정국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지라시는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낱장 광고’나 ‘선전지’로 순화해서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커뮤케이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지라시는 ‘문서화된 유언비어나 루머’ 정도로 규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지라시와 관련된 현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유언비어’라는 측면과 ‘문서화’의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언비어, 혹은 루머는 사전적으로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에서 유언비어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선전이기도 하며, 종종 심리적 근거에 기인해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낭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뜨와네트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 발언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앙뜨와네트가 말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혁명군 입장에서는 당시의 지배계급이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유언비어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선전 수단이다.
하지만 유언비어는 종종 정치권력 등에 의해서 숨겨진 사실들이 유포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 유언비어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병리 현상으로 여겨지지만, 한편으로는 불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의 대안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10.26 사건이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유언비어에서 겪은 바가 있다. 10.26 사건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정부 발표가 없는 상황에서 ‘유비통신’이나 ‘카더라 방송’이 유행하였고,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권위주의 정권의 언론통제로 말미암아 오히려 유언비어가 더욱 신뢰성 있는 소식처럼 여겨졌다. 당시 대학생들이 부족한 정보를 아름아름 모아서 갱지에 인쇄해서 돌려본 것은 일종의 지라시라고 볼 수 있다. 즉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유언비어는 유일하게 진실이 유통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편 지라시를 규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또 다른 특성은 것은 바로 문서화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문서의 형태는 구전에 비해서 메시지의 수용자들에게 신뢰성을 준다.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사건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떠돌아다니는 연예인 관련 유언비어에는 의혹을 보냈지만, 출처를 달고 유통되는 문서에는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이것이 청와대처럼 공적인 기관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그 정보는 누구나 신뢰할 수밖에 없다. 즉 유언비어나 루머가 특정 목적에 의해서 문서로 재구성되면서 신빙성을 갖게 되는데, 이번 청와대 문건의 경우에는 이러한 선전을 의도한 측이 ‘문서화’를 통해서 신뢰성을 확보하려 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만 보면 청와대 비선들의 지라시 정치가 일방적이라고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와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지라시는 일종의 병리현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과는 달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인터넷에 억울한 사연만 올려도 모든 사실들이 공개되는 현실에서, 지라시는 허위사실만 늘어놓은 문서화된 인터넷 지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병리 현상은 한 개인의 자살이나 우울증 등 다양한 피해로 나타나기도 했고, 그에 대한 여러 대책들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를 제어하는 방식은 개인의 측면이나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문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정보의 유통이 자유롭고, 언제든지 집단 지성에 의해서 해당 내용의 사실 여부가 드러나는 현실 속에서 왜 정부 정책과 관련한 지라시가 쏟아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정부의 투명성이 부족이 원인이다. 이미 세월호 사건당시 전원 생존 보고는 정부가 만든 유언비어였고, 결국 실체로 드러났던 초기 대응의 부족과 관련한 유언비어 등은 결국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고, 이는 지금의 비선실세 개입 문건 사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라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선결되어야 할 것은 정부의 신뢰 회복과 투명성의 확보이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제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