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UHD 방송 산업의 현실

[칼럼] 국내 UHD 방송 산업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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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8일 미국에서는 NAB SHOW가 개최됐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로 참관을 할 수 있었는데, 2013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2013년 첫 NAB SHOW에서 받았던 신선한 기억이 생생하다. 말로만 들었던, 실제로 처음 접한 4K, 8K 등의 UHD TV 영상은 3D TV와 같은 입체감마저 들게 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하고 수많은 방송 장비들은 당시 NAB SHOW 전체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장비를 출품했던 업체들은 한국 지상파방송의 UHD 개시일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올해도 UHD 방송은 NAB의 최대 화두였다. 국내 주요 방송사들은 공동으로 코리아-UHD 테마관을 운영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과 수행단도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2월 세계 최초로 진행될 UHD 지상파방송을 앞둔 한국의 긴박한 현실의 반영일 터이다. 또한 ‘NAB SHOW’는 예상대로 4K/8K UHD, ATSC 3.0, VR, 드론, HDR 관련 장비 등이 주를 이뤄 이슈가 됐다. 다만 미디어상에서 요란하게 이슈가 됐던 VR 관련 전시물은 그다지 볼 것이 많지 않아 다소 의외였다. 현재 텔레비전의 정형화된 디스플레이 한계 속에서 방송사가 VR로 가까운 미래에 먹거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코리아-UHD 테마관에서는 KBS, MBC, SBS, 삼성전자, LG전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국내 장비업체 등이 제각각 짝을 이뤄 ATSC 3.0으로 UHD 방송의 송출/수신 과정을 선보였다. 표준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UHD 방송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송출/수신 문제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정 해소된 모습이다.

4K(UHD) 방송은 기존의 HD 방송보다 해상도가 4배가 높아진다. 그만큼 선명함이 뛰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거 SD에서 HD로 전환되면서 시청자가 느낀 만큼 선명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시장에서 관련 업자는 ‘일반 시청자들이 70인치(177cm) 이상의 TV에서나 방송을 볼 때 HD와 UHD 방송의 현격한 차이를 느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다수 국내 시청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TV가 30~40인치대인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UHD 방송만으로는 체감 만족도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 대형 UHD TV의 가격이 저렴해진다 해도, 집이라는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대형 TV로 UHD 방송을 만끽할 수 있는 가구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공재인 주파수와 앞으로 수조 원의 투자가 이뤄져야 할 지상파 UHD 방송의 혜택이 보편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예측인 셈이다. 물론 UHD로 전환하면 양방향 서비스, 재난 알림 서비스, 고품질의 음성 제공 등 부가적인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지상파 디지털 전환 시에도 양방향 서비스를 홍보했지만 현재까지도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전무한 현실이다.

UHD 방송의 실질적인 혜택 중 하나가 지금보다 더 선명하고 생생한 화질을 누리는 것이라고 볼 때, 방송사들은 HDR(High Dynamic Range) 방송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HDR 기술은 화면의 명암을 분석해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밝은 곳은 더 밝게 표현하는 기술로 화질을 개선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기존의 UHD 화면보다 더욱 생생한 화면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4K UHD 영상에는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방식과 조금 더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현실에 좀 더 가까운 생생한 화면 구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멀지 않은 시기에 국내 가전사들도 HDR 기능을 기본 장착한 TV를 양산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직까지 HDR 방송을 포함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넉넉지 않은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방송사 사정이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700㎒ 주파수를 배정받기 전과 달리, 재정 상황을 핑계로 UHD 방송 제작 기반 조성 투자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편, UHD 전환은 정부, 방송사, 가전사가 기획하고 추진하는 국가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시청자들에게 향상된 시청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게 이상적인 목표라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후발 국가의 방송 시장에 UHD 콘텐츠와 제작 기술, 인프라 등의 수출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이 이 사업의 실리적인 목표라 할 수 있겠다. 앞으로 2027년 전면 전환까지 당장 이익이 ‘보장’된 주체는 글로벌 방송 장비 제조업체와 가전사 정도일 것이다.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순수 국내 방송 장비 제조사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요 핵심 장비를 제작할 기술과 기반이 부족하다. 일본의 소니, 캐논 미국의 블랙매직디자인, 그라스밸리 유럽의 샘 등 UHD 주요 방송 장비는 이 같은 유수의 글로벌 기업의 외산 장비로 교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UHD 전환을 명실상부하게 준비하고 또한 감시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UHD 전환 이후를 고민하고 세계 방송 시장에서 그다음 세대의 기술과 제품을 선도할 수 있는 국내업체를 키워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상환 가능성 높은 중소업체에 대출을 해주는 식의 투자로는 어렵다. 정부의 글로벌 방송 장비업체에 대한 깊은 고민과 분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