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이은영 YTN 차장대우]
IP 시스템으로 간다는 것의 의미
SDI망으로 구성된 기존 방송망은 보통 한 케이블 라인에 표준화된 한 가지 신호만 단방향으로 전송한다. 따라서 시스템 구성에 맞게 모든 라인을 물리적으로 연결해야 하고 변경 사항이나 추가가 있으면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바닥을 열어 동축 케이블을 끌어왔다. 그러나 방송 시스템을 IP로 구성하게 되면 모든 신호는 패킷 단위로 쪼개져서 통신망을 통해 멀티캐스트로 전송된다. 따라서 표준에 맞춰 패킷화해주기만 하면 영상, 음성 혹은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구성할 수 있고 분리된 신호도 자유롭게 조합해서 연결된 어느 곳으로든 전송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적 유연성 외에도 IP 시스템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단방향 영상·음성 신호만 보낼 수 있었던 기존 시스템에 비해 양방향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같은 회선을 통해 HD 신호를 전송하든 SD 신호를 전송하든 4K/8K 신호를 전송하든 Bandwidth 안에서만 전송하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 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할까? 기존 방송 시스템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IP 방송 시스템의 특성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입해서 생각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인터넷으로 동영상, 문서 작업, 웹 서핑 등 별의별 작업을 다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방송 시스템도 이와 같은 테두리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 이제 일반 이더넷으로 방송 신호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올 것이다. 영상 신호가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Bandwidth의 로드 문제를 신경 써서 시스템을 구성해야 하고 모든 신호를 패킷 단위로 쪼개 전송하면 방송에서는 크리티컬한 영상·음성 신호의 싱크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걱정될 것이다. 또한 설정으로 소스를 막 바꿀 수 있다는데, 전환할 때 기존 장비처럼 과연 깔끔하게 그리고 빠르게 전환될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이 바로 IP 방송 시스템을 공부할 때 기본적으로 체크해야 할 사항일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IP 방송 시스템을 배우러 장장 13시간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Evertz사로 날아간 8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방송 IP 시스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시스템 구성
하나, 컨트롤
IP 방송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IP 멀티캐스트 통신을 이용해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이다. 각각 다른 회사의 다양한 장비가 IP망으로 연결돼 있으며 이러한 장비는 모두 제각각의 컨트롤 프로토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비를 실시간 설정에 따라 적절하게 컨트롤해서 시스템을 운용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컨트롤 시스템이다. Evertz사에서는 Magnum이라고 명명하고 Lawo사에서는 VSM이라고 부르는 컨트롤 시스템은 IP 방송 시스템의 가장 핵심 부분이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해준다. 컨트롤 시스템의 주요 기능은 라우팅 기능뿐만이 아니다. 장비가 플러그인되면 자동으로 발견하고 등록하거나 각 장비의 연결을 관리하고 네트워크를 모니터링하며, 정책이나 스케줄링 역할도 한다.
둘, 스위치
모든 통신 시설에서는 라우팅을 담당하는 스위치가 네트워크 중심을 차지한다. IP 방송 시스템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컨트롤 시스템이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스위치는 모든 시스템의 중심에 연결돼 데이터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게 심장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인터넷을 할 때 습관적으로 무언가 클릭을 하고 응답을 기다린다. 물론 응답이 빨리 오면 좋겠지만 응답이 조금 늦어진다고 버튼을 마구 클릭할지언정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신에서 자연스러운 이런 현상을 IP 방송 시스템에 도입해보면 천인공노할 일이 돼버린다. 심지어 방송 시스템은 일반 인터넷에 비해 전송하는 용량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생방송 도중에 카메라를 1에서 2로 바꿨는데, 바꾸는 데 5초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부조정실은 난장판이 되고 시스템 디자이너와 운영자는 큰일 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물론 충분한 Bandwidth를 가지고 운영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통신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지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Evertz에서는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방송 시스템 전용 스위치를 내놓았으며 큰 시스템에서는 EXE, 작은 시스템에서는 IPX라는 두 종류가 있다. 또한 스튜디오 시스템과 같이 실시간성이 중요하지 않은 시스템에서는 기존 Cisco 스위치도 사용할 수 있다. 단,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EXE를 사용하는 것이 빨라지기 때문에 시스템의 규모를 고려해서 스위치를 선택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Cisco 스위치가 수립돼 있는 기존 연결에서 새 연결로 바꿀 때 먼저 이전 연결을 끊고 다음 연결을 수립하는 반면 EXE는 다음 연결을 먼저 수립하고 스위칭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Seamless하게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EXE와 IPX, Cisco 스위치의 하이브리드 방식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셋, PTP
IP 시스템에서의 동기화는 PTP 클록을 이용하는데, PTP 자체는 GPS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표준 프로토콜일 뿐 사실상 GPS에서 변환할 수 있는 하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방송의 PTP 표준은 SMPTE-2059에 정의돼 있으며 동기화 단계는 두 단계로 나뉜다.
1) 초기화 단계(Initialization)
모든 마스터와 슬레이브 클록에 브로드캐스트 메시지로 PTP priority와 시계 품질 정보를 알리고 BCMA(Best Master Clock Algorithm)에 의해 가장 적합한 마스터 클록 세팅을 한다. 여기에는 메인 그랜드마스터 클록이 설정돼 있는데 만약 알림 메시지가 그랜드마스터 클록에 일정 횟수 이상 전달되지 못한다면 BCMA가 다시 실행된다.
2) 동기화 단계(Synchronization)
(가) Master → Slave Sync Message
(나) Master → Slave Sync Follow Up Message
(다) Slave → Master Delay Request Message
(라) Master → Slave Delay Response Message
(가)에서 마스터에서 슬레이브까지의 시차를 계산할 수 있고(T2-T1) (다)에서는 슬레이브에서 마스터까지의 시차를 계산할 수 있다.(T4-T3) 두 시간을 더해서 2로 나눈 값이 PTP를 단방향으로 전송할 때의 딜레이 값이므로, 이를 알게 된 마스터가 (라)에서 딜레이 값을 슬레이브로 전송해 딜레이 시간을 보정할 수 있다.
Rogers를 방문하다.
교육 마지막 날에는 캐나다 최대의 방송·통신사라는 Rogers(로저스)에 방문했다. 로저스 미디어 센터는 첫 번째 캐나다 IP 시스템으로 2017년도에 완성돼 이제 겨우 2년이 된 따끈따끈한 시설이다. 로저스는 통신, 스포츠, TV, 라디오를 다 갖고 있었는데, 방송도 홈쇼핑에서 뉴스까지 다양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였다면 진작에 독과점 논란이 불거져 이슈가 됐을 수도 있겠다.
로저스가 2017년에 IP 방송 시스템을 시작한 계기는 한 소스를 여러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구조로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4개의 타임존에서 수십에서 수백 개의 채널을 서비스하고 있는 만큼 효율적 소스 사용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리라. 미디어센터 외부는 SMPTE-2022-7 표준으로 돼 있고 내부는 SMPTE-2110 표준으로 구성돼 있다. 2017년에 SMPTE-2110이 나왔으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로저스 엔지니어가 말하는 IP 시스템의 좋은 점은 규모가 작은 지사에서도 리소스를 본사와 똑같이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엔지니어가 없는 지사에서도 본사와 동일한 인제스트와 편집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지사에서는 감동적일 것이다.
스위치 구성은 메인 센터만 EXE이고 나머지는 IPX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인상적인 건 시스템 구성을 스케줄링에 따라 자동 체인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가령 아침 뉴스에 대한 구성이 있다 치면 이 아침 뉴스 구성이 다른 타임존을 따라 흘러가며 세팅되는 것이다. 가장 시간대가 빠른 곳에서 먼저 구성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다음 시간대가 빠른 곳으로 뉴스 구성이 옮겨가서 그대로 사용되고, 이곳 역시 뉴스가 끝나면 시스템 세팅이 풀리고 다음 타임존으로 뉴스 구성이 옮겨가는 식이다. 선거나 속보 상황인 경우에는 매뉴얼로 조정해서 평소 스케줄과 다르게 운영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로저스 같은 경우에는 통신을 같이 운영하기 때문에 IP 시스템으로의 전환도 쉽게 결정하고 시스템 구축이나 비용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 먼 거리를 외부 유료 회사에 상시로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과연 이와 같은 시스템이 가능했을까.
마지막에 슬쩍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가 몇 명인지 물어봤는데, 전체 시스템을 디자인한 것은 3명이고 관리를 하고 있는 엔지니어는 15명이라고 했다. 이전에 분명히 있었을 수많은 엔지니어는 어디로 갔는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우리 시스템, 현명하게 IP로 이동하려면?
IP 방송 시스템이 레거시 시스템에 비해 굉장히 효율적이고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번 교육을 통해 충분히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것은 4K/8K 이후 단으로 넘어가면 점점 더 장점이 도드라져 어느 순간이 되면 IP 시스템이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가 IP 시스템으로 열심히 전환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마도 대한민국 방송사 대부분은 근본적 효율보다는 현재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장비를 가급적이면 고장 안 내고 오래 쓰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또한 필요하면 시스템에 적응해서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익숙한 북미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자기 일에 보수적인 경우가 많고 실제로 보수적인 업무만으로도 벅차다.
시스템을 구성하는 면에서도 생각해볼 게 많다. 그냥 일부 장비만 떼서 IP 장비를 붙이고 게이트웨이를 붙여 사용한다고 해서 IP 시스템을 사용하는 건 아닐 것이다. IP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적어도 현재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분석하고 이것을 어떻게 IP 시스템에 반영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 수많은 고민을 하고 앞으로의 확장성까지 따져서 시스템을 구성해야만 북미 지역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설프게 레거시 장비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해서 처음 세팅한 그대로 사용한다면 사실 4K까지는 레거시 구성이나 IP 시스템이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생소한 IP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오히려 안정성만 떨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진짜 IP 시스템 도입이 현재 단계에서 본인들의 회사에 적합할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계속 생각해나가야 할 것 같다.
그간 방송 시스템에 있어서 IP 방송 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큰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방송기술 관련 전시회 토픽이나 부스를 둘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방송사에서 실무를 하다 보면 IP 방송 시스템에 대한 이론이나 표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교육을 통해 그간 궁금했던 IP 방송 시스템을 이루는 기반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실제로 어떤 장비가 필요하며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방송사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같이 수업을 들으며 그들의 경험과 시행착오, 그리고 현재 어떤 점을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