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를 꾸리기 위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가 빨라지는 가운데, 현 정부가 구성한 방송통신위원회의 미래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정보통신부의 통신 영역과 방송위원회의 방송 영역을 합쳐 만든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조직 구성은 동일하더라도 그 기능면에 있어 5년 만에 다시 각각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방통위와 관련된 정부부처 개편 시나리오는 방통위,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로 나뉘어 있는 부처의 기능을 합쳐 통신 분야에 특화된 정보통신기술(ICT) 전담 부처를 만들고 방송사 평가 및 재허가, 공영방송 사장 선임 등의 방송 영역은 위원회의 성격으로 존속시키는 방안이다.
이는 ICT 대연합이 주장하는 ICT 콘트롤 타워를 기정사실화하고 여기에 현재 방통위가 채택하고 있는 정부의 방송 정책 담당 ‘합의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부작용도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첫째, 방통융합 시대의 포기다. 물론 현 정부의 방송통신융합 정책 부흥을 기치로 생겨난 방통위가 실질적으로 정부의 언론장악과 과도한 규제, 여기에 방송 기술을 통신에 종속시키는 산업적인 실책을 연달아 범했다고 하지만, ICT 전담 부서 설치 및 합의제 방송 위원회의 등장이 방통융합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뉘앙스를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뉴미디어 시대를 맞이해 방통융합을 포기하면 통신의 강력한 독임부처와 방송의 합의제 구성이 한정된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묻어있다. 이러한 반응은 주로 방송과 통신의 융합적 기능을 믿는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편이다.
둘째는 ICT 전담 부서의 등장으로 강력한 콘트롤 타워를 통한 관련 산업의 부흥이 실제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현재 ICT 분야를 지나치게 산업적인 측면으로 고려해 하드웨어적인 요소로만 관련 산업의 성장을 재단한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도 산업의 융합을 신봉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은 정부가 일자리 창출 및 국가 경쟁력의 상승을 위해 ICT 분야의 기형적인 발전을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 정부가 독임부처제의 환상을 쫒는 통신 포식자에게 속고 있다고 강조한다.
세 번째는 방송의 공적 기능을 통신에 종속시킬 부작용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믿는 전문가들은 정부가 ICT 전담 부서와 방송 관련 합의제 위원회의 존속을 주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의 본질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ICT 전담 부서 내부에 별도의 합의제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도 해당 위원회는 소속된 부처의 장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상대적으로 산업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통신 영역의 입김이 방송에 심각하게 작용할 것으로 우려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번째다. 바로 ICT 전담 부서 내부에 별도의 방송 담당 위원회가 구성되면 방송의 인문학적인 요소는 위원회에 속한다 해도 ‘방송 기술’에 대한 부분은 산업화의 논리에 매몰되어 종국에는 통신에게 상당부분 약탈당할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송 플랫폼의 축소라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방송의 공공성도 위협받을 것이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방송 합의 위원회를 구성하더라도 ICT 전담 부서와 완전히 분리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도 완전한 제도는 아니라는 평이다. 방송 기술 플랫폼의 통신 분야 종속이라는 오점이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지난 4일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새 정부 방송통신 정부조직 개편의 현안과 과제’에서 발제를 맡은 김성철 고려대 교수와 윤석민 서울대 교수가 ‘ICT 전담 부서 내 별도의 방송 담당 합의제 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소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방송 기술 플랫폼’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방송 기술을 ICT 전담 부서에서 관장하느냐 합의제 방송 위원회에서 관장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전문가들은 방송을 ‘지배구조 개선 및 언론의 공공성’이고 통신은 ‘방송 기술을 포함한 ICT 전반의 기술’이라고 판단하면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방송 합의제 위원회가 정치적인 이유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 위원회를 ICT 전담 부처 내부에 두느냐 외부에 두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미디어 공공성의 기본인 방송 기술에 대한 정책이 지나친 통신 및 산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정부부처 개편 방안도 절실해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ICT 전담 부처가 박근혜 정부 조직 개편의 핵심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일부로 편입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ICT 전담 부처의 기능이 ‘과학’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종속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력한 ICT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동시에 방송의 경우 합의적 위원회로 따로 구성될 확률이 높다. 사실상 옛 방송 위원회의 부활인셈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방송 기술 분야가 합의적 방송 위원회에 속할지, 아니면 ICT 부흥의 연료로 활용되어 희생을 강요당할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