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디지털 전환 이후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가구 비율은 10명 중 1명꼴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 등의 조사 결과로 미뤄볼 때 직접수신율(이하 직수율)은 10% 안팎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수치는 디지털 전환 이전인 2007년 21.4%, 2011년 14.7%보다 줄어든 것으로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디지털 전환 이후 직수율 하락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 우리나라보다 앞서 디지털 전환을 주도한 대부분의 국가는 디지털 전환 이후 직접수신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만 직수율 하락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관련 업계를 비롯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환 과정과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방송 종료에 급급한 정부가 화면의 100%를 가리는 상시 가상 종료를 수시로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몇몇 지역은 순차 종료로 2012년 12월 31일보다 앞서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또한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Multi-Mode Service, MMS)를 도입해 시청자들의 지상파방송 시청 접근권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금이라도 시청자들이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동주택 공시청 시설(Master Antenna TV, MATV) 설비 점검 및 유지 보수, 관리에 대한 법제화 요구도 그 연장선이다. 8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 방송의 공공 서비스 플랫폼 복원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한석현 서울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공동주택 공시청 시설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 지원을 통해 시청자들이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하고 유료방송은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시청 시설에 대한 유지 보수 및 관리 등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는 수신 설비만 제대로 갖추면 선명한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다.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DTV KOREA)는 “도심 아파트의 경우 송‧중계소의 디지털 신호를 직접 수신하기도 하지만 건물에 부딪혀 굴절되는 반사파에 의해서도 수신이 가능하다”며 “과거 아날로그 전파의 경우 굴절파가 수신되면 TV 화면에 노이즈가 생겼지만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면서 선명하게 수신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방송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방송 자체가 우수한 수신 성능을 갖고 있으므로 공동주택 공시청 시설은 물론 단독이나 다세대 등에서도 안테나 같은 수신 설비만 있다면 고화질 방송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안테나를 달거나 공시청 시설을 이용해 지상파방송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들이 많다. 설사 안다고 해도 공시청 시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공시청 시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공시청 시설 유지 보수 및 관리 관련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다.
한 팀장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직접수신가구 확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전개되지 못했기 때문에 유료방송을 통한 TV 시청이 보편화됐고, 유료방송 가입 가구 비율이 90%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방송법 또는 주택법 상에 구체적인 관련 조항들을 신설하거나 관리 주체를 명기하는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법 개정이 여의치 않거나 시간이 걸릴 것에 대비해 지자체별 공동주택관리규약준칙에 별도 조항 신설 등으로 공시청 시설 복구와 관리, 지상파방송 직접 수신 및 주민 제공에 대한 근거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국장도 한 팀장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며 “예전에는 아날로그 TV가 잘 안 나오니깐 유료방송을 봤는데 이제는 돈을 내지 않고 TV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시청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면서 “좋은 시설을 구축해도 사람들이 정보를 모르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디지털 전환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이 디지털 전환의 효과를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홍보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지윤 미래창조과학부 방송진흥정책국 뉴미디어정책과장은 “현행법에서는 공동주택에 공시청 시설을 의무화하고 있고 유지 및 관리에 대한 책임도 건물주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답한 뒤 “유료방송의 공시청 설비 무단 점유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손 과장은 “단일 배선 또는 분리 배선돼 있는 경우에도 공시청 시설이 훼손된 곳이 있지만 대부분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서 진행했기 때문에 이것을 무단 점유로 봐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면서 “물론 (유료방송에서) 마케팅을 했겠지만 공시청 설비도 주민 재산 중 하나고 동의를 받았다는 점에서 과연 무단 점유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손 과장의 답변에 노 사무국장은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나서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가구도 있다”며 “공시청 시설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의무화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공시청 시설은 공공재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는 어떤 사람이 이것을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할 기회가 줄어들지만 공공재는 서로 경합할 필요가 없다. 공시청 설비도 이런 공공재의 속성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서는 ‘공시청 시설=공공재’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이후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은 “지상파방송은 누누이 말했듯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미디어 환경의 매체선택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당연히 누구나 무료로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있도록 공시청 시설과 같은 수신 환경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이번 논의를 시작으로 정부가 법‧제도적 뒷받침을 확실히 해나갔으면 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