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방송의 미래, 제도와 재원에 있다

[기고] 지역 방송의 미래, 제도와 재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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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숙 생활미디어연구위원회 위원

흔히 지금을 지역 미디어의 위기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현재 다양한 방송기술의 발전으로 미디어의 경계는 계속 흐려지고 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미디어 패러다임 자체가 중앙으로의 원심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쉬운 예로 N-스크린을 예로 들어보자. N-스크린 서비스의 발전으로 중앙 미디어의 영향력은 모바일 환경을 완전히 제패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지역 미디어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주민들까지 지역 미디어를 중앙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품질’로 재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역 미디어의 약화가 결국 제작 방식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고, 이러한 현상이 다시 지역민의 외면을 유도하자 결국 지역 미디어의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재원적인 부분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지역 미디어 중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 민영방송사의 재원 구조를 살펴보자. 그 중에서도 민영 미디어렙인 ‘미디어 크리에이트’를 보면 모든 상황은 확실해진다. 지역민방노조협의회가 지난해 민방 네트워크 광고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SBS는 이전 5년 평균치에 비해 74억원 늘어난 반면, 9개 지역민방은 최소 6억에서 최대 16억까지 모두 85억원이 줄었다. 이같은 현상은 올해 1분기에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지역민방에 대한 광고매출 배분을 줄여 그만큼을 SBS의 몫으로 돌렸다는 것이 지역민방노조협의회가 주장하는 바다.

만약 이러한 통계가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안그래도 중앙 미디어로의 원심력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광고 재원마저 중앙 방송, 지상파 방송인 SBS로 흘러들어 간다면 지역 방송의 근간은 치명적인 내상을 겪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민방노조협의회는 미디어 크리에이트가 9개 지역민방과 체결한 ‘네트워크 광고합의서’에는 직전 5년 평균 점유율의 97%를 최소 보장하겠다는 조항이 들어있지만, (기존 점유율의 100% 보장은 기술적으로 힘들다고 통보) 지금까지 미디어 크리에이트는 ‘100%’가 아닌 ‘97%’에 근접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올해 1분기도 마찬가지다. 당초 합의서 조항은 지역민방에 대한 광고배분을 줄여 SBS로 돌리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돼 버렸다”고 성토했다.

더 자세히 들어보자. 협의회는 “코바코 체제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편향적인 광고배분이다. 지역민방과는 달리 코바코가 광고판매를 대행하는 지역 MBC들은 ‘기존수준’을 확실히 보장받고 있다”며 “‘기존 수준으로 광고판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방통위의 허가 조건(제3호 1항)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사정이 이렇지만 방통위는 설립허가만 덜컥 내주고 ‘나몰라라’로 일관하고 있다. 민영 미디어렙 허가조건에 ‘광고판매가 기존 수준에 미달할 경우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제3호 1항)고 버젓이 나와 있는데 말이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미디어의 위기가 이러한 ‘광고 재원’에만 국한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 미디어는 국가적인 정책적으로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으며 이러한 기조는 고스란히 방송사의 통폐합 위기로 고조되고 있다. 실제 민영 방송사가 아닌 지역 MBC의 경우 김재철 사장에 의해 지역 방송사들이 통폐합 초읽기에 들어간 적도 있다. 이는 광고 재원과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동시에 역으로 지역 미디어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지역 미디어는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충분한 플랫폼이자 콘텐츠이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기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다소 불편한 모든 것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지역 미디어는 지역 미디어로서의 역할과 존재의 의의가 충분히 있다. 아무리 통합 생활권으로 세상이 좁아진다고 하지만 지역에서 알아야 하는 소식과 목소리는 그 전파성과 파급력을 십분 활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뤄지는 지역 미디어 정책은 온전히 그 목적이 ‘지역 미디어의 말살’에 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주고 있다. 게다가 N- 스크린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기술적 진보가 역으로 콘텐츠적 속성을 가진 지역 미디어를 압살하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역으로 이를 운용하는 시스템의 문제고 사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지역 미디어는 그 태생 자체가 풀뿌리다. 그러나 아무리 풀뿌리가 거친 황야에서도 자랄 수 있는 야생성을 가졌다고 해도 육성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지역 미디어를 통해 더욱 광역화된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방송기술의 발전이 지역 미디어의 말살을 유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역 미디어의 발전과 방송기술의 발전을 제대로 융합시키는 것에 실패한 나머지, 남아 있는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장치도 모조리 포기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주장한다. 방송기술의 발전을 지역 미디어의 올바른 생태계 구축에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지역 미디어의 미래가 지역에 있음을 간과하지 말 것을.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하나. 재원 및 제도적 장치를 확실히 구비하여 다시는 지역 미디어 말살 정책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