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전숙희 기자] 세계 최초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 도입은 그동안 음지에서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감수해야만 했던 국내 방송 장비 업체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등 방송 장비의 주요 수요처에서는 국내 제품이 아닌 외산 제품을 주로 사용해왔다. 국내 장비 업체가 소규모다 보니 촬영에서부터 편집, 후반 작업, 저장, 송출까지 토털 시스템 구축이 안 돼 있고, 국내 제품을 사용하는 곳이 별로 없다 보니 기능 자체도 어느 정도 선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국내 업체 대부분이 규모가 크지 않아 도산 가능성이 해외 유명 업체들보다 높다는 점도 한 몫을 차지한다”며 “방송 장비라는 것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한 번 구매하면 최소 10년 이상을 사용하는데 그 사이 업체가 없어지면 AS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지상파 UHD 방송은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고, 아직 미국에서도 ATSC 3.0 표준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글로벌 업체에서도 관련 장비를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관계자는 “이 같은 환경이 국내 장비 업체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국내 방송사에서 이번 기회에 국산 제품을 사용해 기능을 입증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면 국내 방송 장비 업체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의 몇몇 방송 장비 업체들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 브랜드 인지도 상승으로 해외 수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에 유승희 국회의원과 추혜선 국회의원,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전파진흥협회(RAPA)가 5월 17일 오후 3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센터 308호에서 ‘국산 방송 장비 산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RAPA 관계자는 “방송사와 장비 업체 등 이해당사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국내 방송 장비 활성화에 대한 각각의 입장을 들어보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성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국내 장비 산업 생태계의 취약성으로 자생적 성장 및 글로벌 진출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 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글로벌 시장에 대한 체계적이고 입체적인 분석에 기반한 지원 정책이 필요한데 정보 부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강동욱 국민대 교수는 “핵심 원천 기술 경쟁력이 약하고, 그렇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부분적으로 우수한 응용 능력이 있고, 국내 IT 인프라와 유무선 네트워크, 단말기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강점을 활용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다자 협력에 의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기초 연구 자원을 통한 핵심 요소 기술 개발에 들어간다면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창수 루먼텍 연구소장은 “지상파 UHD 방송은 국내 방송 장비 제조사들에게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제조사가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방송 장비 수요처라고 할 수 있는 방송사들이 국내 방송 장비를 많이 구매하고, 이를 토대로 제조사들은 연구를 진행하는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수근 TV로직 이사는 “한국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방송 장비 업체들은 무조건 수출을 모색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며 TV로직이 진행했던 제휴 협력의 사례를 언급했다. 신 이사는 “앞서 3개 국내 제조업체의 제품을 TV로직 브랜드로 NAB 2017에 소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제조업체들의 제휴 협력이 가능하도록 정부나 연합회, 협회 측의 협력이나 지원이 있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태 RAPA 산업전략본부 본부장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현저히 낮은 브랜드 인지도, 자체적인 마케팅 역량 부족으로 국내 업체들이 시장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품 경쟁력을 갖춘 강소 기업을 육성하고, 국내외 시장 특성에 맞춘 차별화된 시장 진출 전략일 필요하다”고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