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재송신’ 갑론을박을 짚다

‘지상파 재송신’ 갑론을박을 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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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수신·광고수익 기여” vs “저작권 침해”
콘텐츠 좋아야 ‘지상파·유료방송’ 함께 살아
방통위 분쟁조정 개입…‘행정·사법 분리’ 역행

   
 

(방송기술저널=곽재옥) 올 연말 지상파 재송신료 계약 만료 시점이 되면서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사 간 지루한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동안의 양상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난해까지 유료방송사들이 재송신료 협상을 공동으로 하되 계약을 사별로 맺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공동협상과 공동계약을 내세우고 있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재송신료(현재 유료방송 가입자당 280원) 인상안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게다가 매년 반복되는 재송신료 갈등 문제가 ‘2014 국정감사’에서 거론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사업자 간 분쟁을 직권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11월 18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로써 추후 입법과정에서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논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지상파 재전송’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무엇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키는 어디에 있는지 짚어본다.

• ‘재송신료’ 논란의 핵심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 간 재송신 분쟁은 2007년 IPTV의 지상파 재송신 논란에서 시작돼 케이블TV·KT스카이라이프 등으로 옮겨갔다. 이후 케이블TV와의 재송신료(CPS) 협상이 결렬되면서 2009년 9월에 법정 소송이 제기됐고, 2011년에는 유래 없는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표 참조>.

   
 

재송신 분쟁에 있어 지상파방송업계의 주장은 “유료방송의 지상파 무단 재송신 행위가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유료방송업계가 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행 방송법이 KBS1 TV, EBS를 의무 재송신 채널로 지정해 이들 채널의 재송신에 대해 저작권법 적용의 예외를 명시하고 있지만, 의무 재송신 이외의 지상파방송 채널을 재송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는 점을 근거로 한다.

반면 이에 대응하는 유료방송업계의 주장은 “(케이블TV를 포함한) 유료방송이 난시청 해소와 지상파방송의 광고 수입 증진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재송신료 지급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지상파 재전송을 목적으로 유선방송이 보급된 이후 중계 유선을 흡수 통합한 케이블TV를 중심으로 난시청을 해소해 왔고, 현재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6.8%(방통위, 2013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보고서)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양자가 내세우고 있는 주장에 대한 사실 진위를 파악하는 데 있다. 지상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유료방송의 지상파 재송신이 정말 지상파의 저작권을 침해하며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인지, 또 유료방송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유료방송이 지상파 직접 수신율과 광고수익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가리는 일이 관건이 되는 셈이다.

• 유료방송이 지상파방송에 기여하는가?

일단 저작권 침해와 관련해서는 2009년 11월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 3사가 CJ헬로비전, 티브로드, 씨앤엠, CMB, HCN 등 국내 5대 케이블TV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침해 정지 및 예방청구’ 소송에 대해 2010년 9월 8일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판결이 답을 대신한다. 당시 재판부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지상파 재송신을 통해 이익을 얻는 점에 비춰 난시청 해소 같은 시청 보조 역할을 넘어선 독자적인 방송 행위로 보인다”며 “이는 지상파의 동시중계방송권을 침해한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지상파 재송신을 통한 부당이득은 여러 대목에서 목격된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지상파방송이 방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비용을 들여 개편을 단행하지만 유료방송은 앉아서 이런 프로그램을 자사 이익을 위해 유리한 채널에 편성하거나 탈락시킨다”면서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채널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가입자 수신료의 25%를 지불하면서 지상파 채널에 대해서만 의무 재송신 채널이 아님에도 일제히 공공채널로 우기며 불로소득을 취하려는 배짱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료방송은 수익을 위해 프로그램의 인기 정도에 따라 수시로 채널 배치를 변경하는가 하면 지상파 채널 사이사이 TV홈쇼핑 6개사 채널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연간 1조 원의 수익을 거둬들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지상파방송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하는 ‘디지털 방송’을 다시 ‘아날로그 방송’으로 컨버팅 전환해 저가의 상품구성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중 아날로그 방송의 저가상품 구성과 관련해서는 대개 지상파방송의 낮은 직접 수신율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료방송의 논리대로라면 전 국민이 누려야 할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유료방송사가 저가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유료방송 가입자 1,900만 명의 지상파 커버리지가 직접 수신율 6.8%에 머물고 있는 지상파방송사의 광고료 책정의 원천이 돼 지상파방송사의 광고수입 보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유료방송이 펼쳐온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실제로 지상파방송 광고료 책정에 적용되는 커버리지는 TV 시청률이나 시청자 수가 아닌 송신소 기지국에서 송출되는 전파가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 3사를 합친 커버리지는 가시청 가구 비율 90%를 웃돌고 있으며, 유료방송 가입자가 가입을 해지한다 해도 직접 수신이 가능한 상황이다.

• 모든 논의의 시작과 끝, ‘콘텐츠’

기본적으로 ‘지상파 재송신’ 논쟁에서 지상파방송이 ‘사업자 간 원칙’을 정면에 내세우는 반면 유료방송이 ‘시청자 입장 반박’에 그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방송계 관계자는 “시청자 입장을 대변하는 건 그만큼 시청자가 지상파방송을 원한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라며 “이는 유료방송이 주장하는 논리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지상파방송업계가 유료방송업계에 대응하는 가장 주된 논리는 다름 아닌 ‘자유시장 원리’다. 시청자로부터 프로그램을 제대로 평가 받고 그에 상응한 대가가 주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 그는 “시청자들이 스스로 유료 채널 몇 개 이외 지상파 채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280원의 재송신료마저도 깎는 것이 맞다”며 “그런데 지상파방송 의존율이 높은 지금의 상황에서 프로그램 자체의 가치는 언급도 하지 않고 무조건 시청자를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것은 이중성이고 모순된 태도”라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시청율 점유율을 보면 유료방송에 비해 지상파방송이 월등히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방송 채널에서 KBS, MBC, SBS, EBS 지상파가 차지하는 시청 점유율은 51%, 종합편성채널이 12.4%, 일반PP가 30.3%로 나타났다<그래프 참조>. 이는 IPTV, KT스카이라이프, 케이블TV업계가 차례로 지상파방송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는 이와 같은 재송신료 지급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05년 지상파가 가입자당 일정 부분의 현금 재송신료를 요구하면서 분쟁이 시작돼 한때 유료방송업계의 반발로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현재는 유료방송사의 현금 CPS 지급 관행이 정착됐다. 얼마 전에는 이에 대한 올바른 이행을 감시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기도 했다.

다수 매체가 국민의 무료 보편적 시청권을 제기하며 지상파 재송신료 문제를 원점에서 짚고 있는 것과 달리 2010년 서울중앙지법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 이후 사실상 우리나라 유료방송업계는 CPS 지불 불가 의사를 더 이상 고수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다만 기존의 논쟁은 CPS 액수에 대한 이견차로 옮겨와, 현재 유료방송업계는 지상파방송업계가 요구하는 CPS 인상에 반대하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적정한 CPS 액수를 과연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의 시청 점유율이나 시청률이 매년 동일하지 않고, 지상파방송이 유료방송사 가입자 수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녹록치 않다.

이와 관련해 방송 관련 한 전문가는 “CPS 책정은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방송제작환경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지상파방송은 물론 유료방송이 상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서 “따라서 지상파 재송신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바로 ‘콘텐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2008년 책정된 CPS 280원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없는 건 사실”이라면서 “그렇다고 그 세부적 협상과 분쟁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입한다는 것은 행정권과 사법권의 분리를 역행하는 일인 만큼 시장경제의 원리대로 사업자 당사자 간 협의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