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지상파 초고화질(UHD) 방송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상파 UHDTV 방송 송수신 정합(이하 지상파 UHD 표준)’이 또다시 부결됐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앞세운 결정으로 지상파 UHD 발목잡기가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12월 17일 열린 표준총회에서 잠정표준 3건을 포함한 300여 건의 안건을 표준으로 제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안건으로 올라간 잠정표준 4건 가운데 지상파 UHD 표준만 또다시 부결됐다는 점이다.
지상파 UHD 표준은 지난 7월 2일 표준 채택이 한 차례 부결된 데 이어 10월 13에는 잠정표준으로 채택된 바 있다. 잠정표준은 표준을 조속히 제정할 필요가 있으나 기술 발전 추세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 일시적으로 적용되는 표준으로 제정 후 1년 이내에 정식 표준으로 채택할 것인지 재심의 받아야 하는 표준이다. 사실상 부결과 다름없다.
KBS 관계자는 “잠정표준은 1년의 시한부를 갖는 표준으로 이 표준만으로는 지상파 UHD 방송이 가능한 TV 생산이 어렵다”며 정식 표준 연기로 우리나라 UHD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TTA 총회는 아직까지 지상파 UHD 방송이 도입된 국가가 없고, 지상파 방송사가 제시한 유럽식 표준 DVB-T2 외에도 ATSC 3.0이라는 차세대 표준이 개발되고 있기에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해 지상파 UHD 표준을 부결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산업 표준의 경우 기술적 결함이 없을 때 통과되는 게 관례로 지상파 UHD 표준처럼 기술적 문제가 없음에도 부결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700MHz 주파수 확보를 위한 통신사들의 꼼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서 방송인총연합회도 성명서를 통해 “인터넷TV나 위성 등의 플랫폼으로 이미 UHD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한 통신사들이 절반에 가까운 자신들의 표를 이용해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UHD 방송 진입을 철저히 짓밟고, 700MHz 주파수를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잠정표준이라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늘어놓지 말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현재 TTA 총회 투표권 총 516표 중 절반에 가까운 207표를 통신사(KT 100표‧SK텔레콤 77표‧LG유플러스 30표)가 가지고 있고 여기에 계열사의 표까지 합한다면 TTA 총회의 결정권을 통신사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지상파 UHD 표준 부결 이면에 700MHz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한 통신사들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학계 한 관계자는 “통신사들의 자본 논리가 무료 보편적 서비스 확대를 저지하고 있는 만큼 TTA 총회 결정 방식 더 나아가 TTA 구성 자체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현재 방식으로는 지상파 UHD 표준이 결정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현재 지상파 방송을 제외한 모든 유료 방송의 UHD 표준이 마련됐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사가 주도하고 있는 TTA 총회에서 지상파 UHD 표준이 세 번이나 부결됐다는 것은 700MHz 주파수 할당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가 700MHz 주파수 확보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무료 보편적 서비스 확대 측면에서 700MHz 주파수를 지상파 UHD 방송에 배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회를 중심으로 제기되자 통신사들이 지상파 UHD 표준 부결로 시간 끌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UHD 표준이 세 번씩이나 부결된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이 같은 분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편 일각에서는 통신사는 물론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한 700MHz 주파수 분배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어 지상파 UHD 표준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