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방송통신위원회, 아니 ‘방송통신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합의제 위원회(commission)를 가장한 독임제 행정부(ministry)로서 산업 논리의 깃발, 아니 실제로는 집권세력에 유리한 언론환경 창출을 위해 ‘충격요법’이라는 나쁜 정치 논리를 앞세워 방송과 통신을 마구 난도질한 시간이 지난 1년이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원회는 위원회라는 허물을 벗고 ‘방통부’로 완벽히 탈바꿈 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거대한 다의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규정해도 과장이 아니다.
방통부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지난 과거의 노력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불법적인 해임은, 현 정권이 공영방송을 국가기관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괜히 오해받을 행위는 하지도 말라도 했건만, 대통령 직속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치적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씨를 수장으로 앉히는 오만이 자행됐다. 권력 행사의 최소한의 프로토콜도 없는, 권력을 횡재한 시정잡배의 그것이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방통부는 최시중 ‘장관’이 혼자 북 치고 장고 치는 1인 중심 체제였다. 회의 안건의 96%를 최 장관이 단독 제안해 처리했고, 약간의 반대가 있기라도 하면 표결을 통해 결정했다. 상임위원 5명 중 야당 추천 2명이 있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했다. 야당 추천 방통위원 2명은 시민사회와 스스로 격리되는 것이 직무의 독립적인 수행인 것처럼 착각에 빠진 듯이 보였다. 그들은 최 장관을 비롯해 여당 추천 방통위원들의 정치적 행보는 견제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를 밀실에 가둔 ‘바보’였다.
방통부는 정보기관처럼 은밀한 곳이었다. "위원회의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법 조항은 겉치레에 그쳤다. 무슨 말 못할 논의가 많은지, 2008년 9월5일 회의를 열어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서도 오만하게 선을 그었다. 회의 속기록을 공개하되, 열람만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국회 속기록도 열람을 하고 인쇄를 할 수 있건만, 방통위 회의록은 이조차 허용할 수 없는 ‘비밀보고서’인 듯이 말이다.
방통부에는 일관된 규제철학이 없다. 산업 논리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집권세력을 위한 정치 논리일 뿐이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앞세워 방송과 통신 전체에 대해 훨씬 더 강력한 내용 규제 정책을 취하고 있는 데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특히 지상파방송과 인터넷에 대한 내용 규제는 검열로 내달리고 있다. 그 압권은 헌법상 행정기구인 방통심의위가 내용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가한 제재를 지상파방송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6개월 동안이나 방송광고를 못하거나 주요 업무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요 포털은 물론 모든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에게 제3자의 표현물 내용을 감시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황당한 규제 추진도 기네스북에 오를 감이다.
방통부는 산업으로서의 미디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 이유는 통신산업의 특성과 방송산업의 특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데서 비롯한다. 여기에는 ‘융합’이라는 명분 아래 ‘방송을 통신에 흡수통일 시키기 위한’ 영혼 없는 관료들의 간계가 동원되고 있다. 나오는 발상이라는 게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의 돈이 미디어 산업에 투자되면, 자동적으로 미디어 산업의 크기가 확대되고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육성된다는 식이다. 기업이 광고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도 부족하고, 세계적인 글로벌 미디어 그룹에서 보도와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약하다는 사실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방송산업의 큰 방향을 잡는 데서도 가장 우선해야 할 수용자는 뒷전이다. 유료 지상파방송을 도입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방송시장은 크게 △무료 지상파방송 △유료 상업방송 △시민 미디어(공동체 미디어 등) 등으로 나눠 접근하는 게 타당함에도 지금까지 갈팡질팡이다. 오히려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통해 무료 지상파방송과 유료 상업방송의 경계를 허물려 하고 있다. 시민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제로에 가깝다.
통신 산업에 대해서도 규제의 일관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 못하다. 지난해 2월 SKT의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인수 때는 무선통신 시장만을 기준으로 하더니, 올해 3월 KT-KTF 합병 때에는 유무선통신 시장을 더한 시장을 기준으로 삼는 등 규제를 적용하는 시장 획정이 1년만에 널뛰기를 하고 있다.
2009년 5월 현재 방통위는 ‘방통부’이자 ‘방제부'(방송통신통제부)이며, 총체적 부실 덩어리다. 그런 방제부가 진흥 업무까지 꿰차려고 혈안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리바이어던처럼 영생하는 괴물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부실 덩어리는 구조조정 돼야 한다. 규제와 진흥은 명확히 구분돼야 하고, 방제부는 진흥에서 거의 모든 손을 떼야 한다. 독임제 행정부가 아닌 합의제 행정위로 자리매김 돼야 한다. 방송 자체를 통신에 흡수시키면서, 인터넷 상의 표현물에 대한 내용 통제를 강화하려는 ‘방송과 통신의 악조합’은 중단돼야 한다.
스스로 격리와 고립을 택한 채 시류에 영합하듯 이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 방조해온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의 자진 사퇴, 어차피 구조조정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준상 공공미디어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