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원 (미디어 활동가)
공공재인 전파에 대해 ‘황금’주파수니 경매제니 하는 말들이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있다. 전파의 회절성은 전파가 파장을 그리며 진행하면서 산이나 고층건물 등의 장애물을 넘어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특성으로서 그 진동횟수(주파수)가 낮을수록 강한데, ‘황금주파수’는 곧 회절성이 강한 저주파 대역인 700, 800, 900MHz에 붙여진 말이다. 그 중 700MHz는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 TV 방송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데, 2012년 12월 31일 디지털 전환을 완료하면서 비워 이동통신 등에 쓰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와 있다. 이와 같은 재배치의 방식이 곧 주파수 경매제인데, 경매제 도입의 근거를 담은 전파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동통신 기업들이 챙기는, 모든 비용을 빼고 남는 순수한 이윤이 연간 무려 1조 8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황금’주파수라는 말은 특정 주파수 대역이 이동통신에 유리하다는 단지 기술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 이동통신 사업을 통한 무지막지한 경제적 이윤 창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파가 시장 원리에 내몰리며 그 공공재로서의 성격과 공익 규제의 명분이 사문화될수록 전파를 통한 정보의 전송과 교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대한 접근과 참여에 필수적인 공공 자원은 더 이상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전파는 이제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전자적인 정보에 대한 접근이 현대 사회의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파를 이용한 방송과 통신 등의 제반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환경에 보편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단적으로 안테나를 다는 것만으로는 지상파 방송이 나오지 않아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9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상파’ 방송을 위한 기존의 주파수 대역조차 디지털 전환하면서 경매로 넘긴다는 것이다. 공공 전파를 사용한 방송이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라고 한다면, 우리가 ‘지상파’로 방송을 보는 것(을 요구하는 일)은 새삼스럽지만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 삶의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각자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일인데, 전파 자원은 이러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위해서도 십분 활용되어야 한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국내에서도 공동체 방송에 대한 오랜 요구와 운동을 통해 2005년부터 시범사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공적 기금 지원과 전파 확보의 문제들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정책 당국이 계속해서 주파수 할당(과 출력 증강)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문제가 크다.
이 때 인권으로서 전파 자원에 대한 접근과 활용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를 향유하는 주체의 선택에 따라 행사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거부되거나 축소되면 그 권리 주체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으며 인간적 존엄성과 인간성을 부정당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시장의 자유와 인간의 권리가 경합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자유는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전파에 대한 시장논리가 인간의 권리를 뒷전으로 밀쳐내고 있는 것이다. 공공재로서의 전파 자원의 활용이 시장논리에 내몰리고 사유화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접근과 참여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전파의 개방과 공유가 필요하다.
물론 전파의 개방과 공유만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공공적 전파 정책의 강화와 전파의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방송과 통신이 충분히 가능하다.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생생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가능하다. 수익이 낮다는 이유로 인터넷망이 깔려있지 않은 방방곡곡에 광대역 인터넷이 가능해진다. 또, 이미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이통사에 계속 고가의 통신비를 내가며 쓰는 휴대전화를 대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지금까지 일부 사업자들의 전파 전유와 독과점 미디어 통신 구조 자체를 바꿔내는 수없이 다양한 방송·통신의 모델이 가능하다. 덧붙여 전쟁 무기와 군산복합체를 위한 불투명한 전파 낭비가 아닌, 재난 예방과 구조를 비롯해 평화와 안녕을 위한 전파 활용 역시 인권을 위한 필수적인 일이다. 결국, 전파가 노다지가 되고(황금주파수) 전파 정책까지 돈놓고 돈먹는 장사 속으로 넘어가고(경매제) 있는 동안 전파가 공공재이고 공공자원이라는 대원칙만 확인해온 것이 한계라면 한계였다. 변화하는 기술·문화 환경에서 이 공공 자원을 공공적으로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필요성의 확인과 개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