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보편의 지상파 방송기술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있다. 다양한 방송기술의 등장과 더불어 세계를 호령하는 대한민국 방송기술 패러다임이 정부부처의 어이없는 상황판단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분위기다.
7월 24일 미래창조과학부는 하반기 주요사업 브리핑을 통해 “700MHz 대역 주파수 용도를 올해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미래부는 방송통신위원회와의 공동 연구반을 가동해 이르면 8월 초 공동 연구반 킥오프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양 부처는 막바지 실무협의를 마무리 했으며 관련 전문가의 섭외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이경재 방통위원장의 회동은 8월 20일 전후에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래부가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을 결정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논란이다. 지상파 디지털 전환 이후 확보 가능한 700MHz 대역 주파수는 공공의 이익을 담보로 하는 난시청 해소와 더불어 UHDTV 발전 등 뉴미디어 발전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에 무게중심이 쏠림에도 불구하고 미래부는 무조건적인 주파수 통신 할당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통신 발전을 위한 주파수 확보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지금까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남발하며 주파수를 낭비하고 현존하는 가용 주파수를 모조리 확보하려는 통신사의 이윤 추구에 정부까지 나서 부화뇌동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미국 방문에 올라 “국내 UHDTV 도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7월 31일 기자 간담회에서는 “700MHz 대역 주파수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았다. 물론 ‘미래부가 화끈한 먹거리를 가져온다면’이라는 사족이 붙은데다 ‘주파수를 나눠쓸 수 있지 않느냐’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해당 발언은 그 자체로 민감한 의견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31일 발언은 미래부-방통위의 주파수 공동 연구반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언론보도가 한창일 때 등장해 더욱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물론 이 위원장의 발언이 전체 방통위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일 전만해도 방통위 상임위원들 사이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공익적으로, 방송용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조되면서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을 강조하는 미래부와의 진통이 극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외부분석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위원장 스스로도 7월 23일 간담회에서 "과거 700MHz 108MHz폭 중 40MHz를 통신용으로 쓰도록 하자고 의견이 나왔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해당 주파수의 ‘알박기’를 일종의 ‘의견’으로 치부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기에 충분했다. 그랬던 이 위원장이 "주파수를 양보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미래부의 정책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UHDTV 국내 도입 시기상조설’은 지상파 외 기타 전체 유료방송 업계를 겨냥한 것인 만큼, 해당 방송기술 발전에 대해 이 위원장은 나름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700MHz 대역 주파수와 지상파 중심의 UHDTV 발전은 그 자체로 무료 보편의 지상파 방송이 추구해야할 절대적인 진리라는 측면에서, 이 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무리가 많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알박기를 원천 폐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던 판국에 등장한 이 위원장의 발언은 진정한 지상파 방송기술의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친통신 성향의 언론들은 이 위원장의 발언을 대서특필하며 8월에 나올 미래부-방통위 주파수 공동 연구반의 결과에 잔뜩 기대를 거는 눈치다.
한편, 이 위원장의 ‘사실상 지상파 방송기술 포기 발언’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은 2004년 디지털 전송방식을 정할 당시 주파수 효율을 고려하지 않은 미국식을 고집한 정부의 고집 때문에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미국을 방문한 이 위원장이 UHDTV 및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에 무게를 두는 현재의 모습이 2004년에 있었던 맹목적인 ‘미국방식 따라하기’의 데자뷰같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