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칼럼]
소송 자초하는 외국자본의 종합편성채널 소유 허용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정부는 지상파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금지하는 방송법 규정을 지켜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지상파방송에 대한 외국자본 직접투자는 지금처럼 금지하되,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에 대한 외국자본 직접투자는 20%까지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날치기 통과되면, 거대 재벌은 종합편성채널의 지분을 30%까지, 보도전문채널은 100% 가질 수 있게 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종합편성채널은 규제가 거의 없는 전국적인 지상파방송이나 마찬가지다.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사업자가 의무편성을 통해 반드시 송신하도록 강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상파방송의 경우에도, 의무송신이 되는 곳은 KBS1과 EBS 2개뿐인 것과 견줘보면, 종합편성채널의 ‘의무편성/의무송신’은 대단한 특혜다. 종합편성채널을 매력 덩어리로 만드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도입에 앞서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편성/광고 등의 내용규제를 지상파방송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정비하고 사업권역 등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한나라당은 도입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을 뿐 관련 제도의 정비는 뒷전이다. 종합편성채널을 매력 덩어리로 만드는 ‘의무편성/의무송신’은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폐지하겠다’는 식의 대응이 전부였다. 원칙적으로 특혜를 폐지하면 종합편성채널 편성과 송신 여부는 사업자들끼리 문제라는 논리를 설파했던 것이다.
방송통신위의 꼼수는 간단하다. ‘조중동’의 일부와 거대 재벌, 외국자본으로 이뤄진 컨소시엄에게 2개 정도를 할당하는 승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절대로 폐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편성/의무송신’이 없는 종합편성채널은 ‘속빈 강정’이나 마찬가지이고, 매력이 반감된 종합편성채널에 조중동이나 거대 재벌, 외국자본이 뛰어들 동기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자본의 종합편성채널 소유를 허용으로 인해 방송통신위는 이런 특혜를 영원히 폐지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없앨 경우, 한미FTA 협정에 따라 미국계 외국자본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협정에는 투자유치국 정부가 투자협정상의 의무, 투자계약 또는 투자인가를 위배하며 투자자에게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라는 게 있다. ISD의 제소 대상이 되는 협정상의 의무 중에 이른바 ‘간접수용(indirect expropriation)’이 있다. 투자유치국 정부가 취한 특정한 조처로 인하여 투자자가 상당한 손실을 보는 경우를 말한다.
정부가 종합편성채널의 ‘전국을 대상으로 한 의무편성/의무송신’을 폐지할 경우, 이는 종합편성채널에 투자한 외국자본에게 일종의 ‘간접수용’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종합편성채널에 투자한 건 한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의무편성/의무송신 제도 때문이 컸는데, 이걸 폐지하면 심각한 손실이 발생해 사실상의 간접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외국자본 참여를 유도한 조중동의 일부와 국내 거대 재벌도 외국자본의 이런 논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ISD의 대상이 되는 간접수용에 해당되지 않으려면, ‘종합편성채널의 의무편성/의무송신 폐지’가 공공복리 목적에 부합할 뿐 아니라, “공익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범위를 초과하는 ‘특별한 희생’”이 외국자본에게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소송이 붙으면 패배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종합편성채널 도입 이전에 의무편성/의무송신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통신위가 그렇게 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외국자본 소유를 불허하는 한편, 종합편성채널의 사업권역 설정, 편성 및 광고 등에 대한 내용 규제 마련 등이 선행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향후 있을 소송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 아울러, ‘한미FTA 선제적 비준을 통한 미국의 재협상 봉쇄’라는 유치한 논리를 접고, 한미FTA 비준을 늦추는 것도 필요하다.
끝으로, 지상파방송/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외국자본의 간접투자의 허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현행법과 제도의 외국자본 간접투자 허점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도, ISD에 따른 한국 정부 제소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행 방송법은 외국인의 지분이나 주식이 50% 이상이거나 외국인이 최대주주인 국내법인에 대해서만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외국인 의제조항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국내법인을 통해 외국자본은 얼마든지 종합편성채널을 간접소유 할 수 있으며, ‘전국을 대상으로 한 의무편성/의무송신’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지금, 방송통신위와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청와대가 주문하는 ‘속도전’이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