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오바마,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조준상칼럼]승리한 오바마,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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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오바마,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러자 국내 수구보수 세력 안에서 ‘오바마 불똥’이 튀는 모양이다. 조갑제씨가 ‘오바마를 좌파로 불러선 안 된다’고 국내 수구보수 세력에 호소(?)하는 코미디 같은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실은 것도 여기에 속한다.

수구보수 세력의 움직임에 둔감한 필자로서는 조씨 글에서 한 가지 유용한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 수구보수 세력 안에서 오바마에 대해 “북한 정권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고 북핵 해결 방안이 애매하다”며 좌파로 평가하는 이들이 꽤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시에 조씨의 글에서 일종의 절망감을 느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북미 관계 개선과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당사자는 조지 부시가 이끄는 미국 공화당이고, 매케인 공화당 후보 역시 이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물음 자체가 수구보수 세력 안에는 거의 없는 듯해서다. 오바마의 북미 관계 개선은 좌파고, 부시의 북미 관계 개선은 좌파가 아니라는 식의 야릇한 구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필자의 두뇌구조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결정적인 계기였음을 인정한다면, 대공황에 필적하는 경제위기에 휩싸인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모든 나라에서 경제위기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이 바로 ‘서민’이라는 진실에서 미국도 예외가 아니라면, 미국 서민이 경제위기의 주범인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선택하리라는 것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격차가 벌어진 계기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을 대통령선거 이후로 연기하려는 공화당의 주관적 욕망이 현실에 의해 거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흑인’과 ‘여성’이라는 소수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이번 미국 대선은 오래 전에 압도적인 격차로 민주당에 유리한 게임이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상식이 승리하고 경제위기에 따른 미국 서민의 고통이 덜하기를 바라지만, 오바마의 경제 및 외교 정책이 한국의 서민들에게도 유리할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진보 성향의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는 응답자 47.0%, 보수 성향의 매케인 후보가 유리하다고 본 응답자 28.9%라는 여론조사 결과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바마의 외교 정책에 대해 낙관은 금물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북미 관계 개선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는 게 가장 바람직스럽다. 이 경우, 국내 서민을 불행하게 만들고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변수는 ‘남북 긴장이 고조돼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버리라’며 대북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한국 정부의 헛발질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오바마의 외교안보팀이 ‘북미 관계 개선의 속도가 지나치게 급속하다’는 식의 신중론을 갖는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사태가 될 위험성이 높다.

대외 경제정책의 경우, 오바마는 십중팔구 ‘공세적 신중상주의’ 노선을 펼 것으로 예측된다. ‘자유무역’이라는 구호보다는 ‘공정무역’이라는 구호가 오바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속에서 미국 노동자와 가정의 실질임금을 유지시키는 정책을 펼 것으로 예측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양보를 원한다는 얘기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한나라당 안에서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연내 비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여기엔 최소한의 논리적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연내 비준해도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진정성은 빠져 있다. 게다가, 애초 한-미 FTA를 추진한 가장 큰 요인은 미국 수출시장 확대였다. 하지만 이미 미국 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미국 시장 자체가 축소하고 있다.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쪽으로 환경 자체가 바뀐 것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 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떨어졌을까 올랐을까? 모두가 떨어졌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니었다. 대공황 동안 미국에서 산업 노동은 실질임금을 유지했다. 그래서 국민총생산 대비 노동의 몫이 1930년대 70%까지 상승했다. 오바마는 이런 효과를 낳은 경제․무역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방향은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코드를 한국 정부가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느냐 하는 것이다. 한-미 FTA 신속 비준 정도를 생각하는 발상으론 버거워 보인다. 게다가, 그런 심층적인 취재를 해야 하는 방송의 시사프로그램들을 하나둘씩 폐지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올 겨울은 진짜 추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