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코바코 논쟁에서 참주선동부터 제거하자!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지난 9월 하순부터 문화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기획재정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체제를 해체하고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시한을 정해두고 코바코 체제 해체를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신중론이 제기됐으며,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하나라당 내부의 신중론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서비스 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하고 규제 완화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이정현 의원)는 말을 꼭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개방은 불가피하고 코바코는 해체돼야 하지만’이라는 단서가 붙는 것이다. 지난 9월25~26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방송학회 학술세미나 일정 가운데 콘텐츠 활성화 관련 꼭지에 발표된 발제문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광고시장 개방으로 코바코 독점체제에 대한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인식은 한나라당 미디발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병국 의원이 지난 9월29일 <평화방송>에 나와, “코바코 단일 독점체제는 이미 WTO 상에 문제가 되고 있고, 한미FTA 상에서 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발언에서 완결된다. 세계무역기구(WTO)나 한미FTA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체하고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을 뿐더러, 극히 비현실적인 주관적 욕망에 가까운 주장일 뿐이다. 애초 한미FTA 때문에 코바코 해체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의 진원지는 문화체육관광부(옛 문화관광부) 관료들이었다. 한미FTA가 공식 타결된 2007년 4월부터 문체부 관료들은 ‘한미FTA 타결에 따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도입되는데, 코바코의 독점이 지속되면 ISD에 따라 코바코 판매대행 수입액에 대해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ISD는 투자유치국의 예상하지 못한 행위, 이를테면 채무불이행 선언이나 주요 사업의 국유화 등으로 인해 투자자에게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 투자자(개인이나 기업)가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국민국가가 취하는 환경보호 정책 등 필수적인 공공정책에 대해 투자자가 손실을 봤다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 등에 소송을 제기할 위험성이 높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제도이다.
불행 중 다행하게도, 한미FTA 타결로 ISD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방송광고시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한국 정부가 미국 투자자의 방송광고판매시장에 대한 투자계약이나 투자인가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단순한 시장접근이나 기대이득, 이익획득의 기회가 막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투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한미FTA 협정문에서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결론이다.
WTO 때문에 코바코를 해체하고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떤가? WTO 규범은, 협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미국 투자자의 기대이익을 침해할 경우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세계무역기구 분쟁패널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른바 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laim)다. ISD와 달리, 국가 대 국가의 소송을 의미한다. 한미FTA 협정문에 따르면, 비위반 제소의 대상은 상품, 농산물, 섬유, 원산지, 서비스,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분야이다. 아울러, 협정문 코바코를 포함하는 5개 공기업을 ‘공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되 시장 왜곡 방지 의무를 추가로 부과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코바코가 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경우 비위반 제소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비위반 제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미국 정부는 14년 전부터 코바코에 대해 비위반 제소를 할 수 있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해마다 3월 발표하는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ational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에서 “한국의 광고시장은 세계 12위 안에 들지만, 광고시장은 매우 제약을 받는 상태에 있다. 광고판매가 국가가 후원하는 코바코를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는 구절을 반드시 포함시켰다. 그러나 비위반 제소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발표된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코바코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코바코 체제를 무역장벽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비춰볼 때, 코바코에 대한 비위반 제소 가능성은 해체론자들의 주관적 욕망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코바코 해체를 외인론(外(외)因(인)論(론))에 기대는 주장은 이제 기각돼야 한다. 더 이상 계속되면 그것은 참주선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