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전숙희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 사업자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직권조정,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 재정 제도 등이 오히려 사업자 간 협상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7월 2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미디어 콘텐츠 가치 정상화 방안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국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재송신 관련 개정안의 핵심은 시청자의 이익 침해가 우려되는 경우 직권조정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방송 중단이 임박하는 경우 방송을 한시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유지, 재개 명령 제도 등을 신설하는 것인데 (이러한 제도들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협상을 거부하기 위한 절차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며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 단순 시장 조정보다는 시장 협상을 저해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이익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앞서 방통위는 4월 21일 △직권조정 △재정 제도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방송 사업자 간 재송신 분쟁이 지상파 블랙아웃(송출 중단)으로 번지는 사태를 차단해 국민의 시청권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직권조정은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재송신 협상 과정에서 방송 중단 등의 문제가 예상될 경우, 방통위가 직권으로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당사자 신청 없이도 개시 가능하다. 재정 제도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보편적 시청권 관련 분쟁의 경우 방통위가 직접 협상에 관여하는 것으로 준사법적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은 사업자 간 협상이 불발돼 방송이 중단될 경우 방통위가 30일 내 방송 재개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다.
당시 한국방송협회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은 “방통위가 추진하려는 방송법 개정안은 민주주의의 질서를 훼손하고 사업자의 사업권 및 영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더 어렵고 꼬이게 하는 방안일 뿐”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하고,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재송신 협상은 사업자 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방통위는 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홍 교수는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분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는 대표적으로 방송 중단인데 지난 2011년과 2012년 총 3회의 방송 중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해당 기간 동안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과 SD 채널의 송출은 유지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사업자의 사적이익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국민의 시청권이 위협받은 적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재송신 갈등이) 방통위가 직접 개입할 정도로 시급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방송 사업자 간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방송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분쟁이 증가하면서 매년 10회 이상의 블랙아웃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방송 사업자의 재전송 동의 권한을 유지하며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홍 교수는 “사업자 간 갈등에 대한 개입이 자칫 시장의 원칙을 위배해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일정한 원칙 내에서 감내하고 있다”며 “재전송 협상에 불만을 갖는 유료매체들이 방송 유지 명령, 강제 중재와 같은 직접적인 개입을 요청하고 있지만 FCC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의 개입이 효율적인 조정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이 완벽한가 △규제가 완벽한가라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두 가지 전제가 완벽하지 않을 때는 직접 개입이 효율적인지 알 수 없고, 중재기관이 완벽한 중립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성환 아주대 교수는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 즉 콘텐츠와 플랫폼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두 개의 큰 사업자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게 효율적인지 개입하지 않는 게 효율적인지 알 수 없다”며 “사회적 비용을 봤을 때 정부가 개입을 해서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분쟁 조정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해 방통위의 재송신 갈등 개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방통위 주도의 재송신 협의체는 당초 7월 30일로 예정됐던 첫 회의가 8월로 연기되면서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