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최진홍) 정부의 UHD 정책이 괴상한 흐름을 타고 있다. 실적내기에만 몰두하며 정작 중요한 실속은 모두 놓치고 있다. 무료 보편의 지상파 UHD는 완벽하게 무시하면서 기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시연 행사만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유료방송과 제조사의 잇속만 챙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전파진흥협회를 통해 올포원(All-4-One)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71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응답하라 1994’ 등 특정 콘텐츠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우선 올포원 글로벌 프로젝트에 모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30억 원(각각 15억 원)과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총 48억 4,000만 원을 6개 콘텐츠에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올포원 글로벌 프로젝트의 지원금이 온전한 UHD 콘텐츠 제작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6개 콘텐츠의 리마스터링을 통해 기존 HD 콘텐츠를 UHD로 변환하는 것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물론 UHD 콘텐츠 제작비용이 상당한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활용’을 통한 과도기를 가지는 것도 용인될 수 있으며 업스케일링(Up scaling) 기술보다 색감과 음향에 있어 더 뛰어난 리마스터링을 선호하는 것도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인 유료방송 UHD 콘텐츠 지원을 위한 올포원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기껏 실시한다는 것이 ‘리마스터링’이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UHD 콘텐츠 수급에 있어 직접 제작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 계약을 통한 수주에만 의지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HD 콘텐츠 지원을 약속한 올포원 글로벌 프로젝트마저 휘청이는 분위기다. 배경에는 정부가 UHD 콘텐츠 제작에 있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는 지상파를 배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있다. 미래부의 6개 콘텐츠 지원이 UHD 시청 인프라의 확장과는 상관없이, 단순한 제조사 특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콘텐츠들은 모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UHD 디스플레이로만 시청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6개 콘텐츠 지원이 완료되면 이를 각사의 UHD 디스플레이 프로모션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각출금에 국민의 세금을 모은 지원금이 제조사의 UHD 프로모션에 쓰이는 기막힌 일이 발생하는 셈이다.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총 30억 원의 금액을 투자한다고 했지만, 이는 올포원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온전히 ‘전체 UHD 생태계’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현재 대부분의 유료방송이 UHD를 천명하고 있지만 시청자는 쉽게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좌충우돌만 요란한 분위기다.
이 처럼 올포원 글로벌 프로젝트가 괴상한 행보를 보이는 사이, 정부의 실적내기에 급급한 궁색한 언론 플레이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ETRI와 CJ 헬로비전이 케이블 망을 활용해 6MHz 폭 하나에 27Mbps UHD 콘텐츠 채널 두 개를 최대 60Mbps 비트레이트로 전송한 사실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ETRI와 CJ 헬로비전이 마치 대단한 기술적 진보라도 이룬 것처럼 엄청난 홍보가 이뤄졌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실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일본 NHK는 UHF 46번 채널을 통해 무선으로 8K UHD 방송 전송에 성공했다. 이때 활용된 방식이 4096-QAM이다. 바로 ETRI와 CJ 헬로비전이 시연한 그 방식인데, 당시 일본은 무선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역에 91.8Mbps의 비트레이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ETRI와 CJ 헬로비전은 무선이 아닌 이미 광대역까지 구축한 케이블 망으로 60Mbps 비트레이트를 기록하면서 대대적 홍보를 했던 것이다. 4월 10일 UHD 상용화를 선언한 케이블의 입장에서 지금 당장 선행되어야 할 부분은 HDMI 2.0과 HEVC 지원을 통한 시청 인프라 확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기존 기술의 ‘짜집기’를 통한 홍보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정부는 UHD 정국에서 지상파를 배제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700MHz 대역 주파수 문제는 국가 재난망과 함께 혼돈으로 가라앉았고, 전송방식에 있어서는 정부 일각에서 ATSC 3.0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표준정합모델도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UHD 콘텐츠를 책임지는 지상파를 배제시킨 정부의 고집은 도처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당장 국산 UHD 인프라 시장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UHD 유료방송 정책만 추진하며 방송을 산업의 관점으로만 재단한 원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