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전파진흥기본계획’에서 전파의 ‘창의적 활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신규 주파수 자원 확보 및 전파관리 체계의 효율화를 검토·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중앙통제가 필요한 국가적 자원으로서 철저하게 사전규제의 대상으로 파악했던 전파를 이제는 하나의 산업군을 일으킬 수 있는 자원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생겨난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지난 6월 12일 자정을 기점으로 60여년 이상 지속했던 아날로그 TV 방송을 종료하고 디지털 TV 방송으로 전환하면서, 전환 이후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 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존 아날로그 방송에서 사용하였던 700MHz~800MHz와 재배치될 900MHz 대역은 건물 등 장애물들로 인한 전파 손실이 적어 망 구축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우량 주파수 대역이라 이동통신사업자들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방송사업자들 입장에서도 계속 방송용으로 사용하길 원하기 때문에 주파수 재배치에 대한 각 사업자들의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주파수 처리 방안을 내 놓은 영국과 미국은 주파수 경매를 선택했다. 미국의 경우, 예상대로 거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Verizon), AT&T 등이 주요 대역을 사들였다. 인터넷 업체인 구글도 모바일 환경에서 인터넷 확산을 위해 주파수를 원했으나 사들이진 못했다. 구글의 다른 방안은 “화이트 스페이스”의 개방이었다.
화이트 스페이스는 라디오 밴드나 채널 간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 주파수로 미국은현재 54~698MHz 대역(채널 2~51)에 TV 화이트 스페이스가 존재하며, 미국의 방송통신위원회인 FCC에 따르면 70%의 주파수가 이용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구글은 화이트 스페이스 개발을 통해서 기존의 무선랜보다 훨씬 넓은 권역을 커버할 수 있는 무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저가의 인터넷 액세스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방송사들은 전파의 간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고, 구글은 전파 간섭을 피할 수 있음 증명하였다. 결국 2008년 11월, FCC는 화이트 스페이스의 개방에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는 전파의 상업적 활용이 증가되면서 한정된 자원인 전파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이 2005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의 주파수 이용으로 인한 경제적 가치를 측정한 결과, 주파수의 경제적 이용가치는 2002년에 비해 50% 증가해 420억 파운드(약 76조 7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전파의 상업적 활용 증가 : 전파의 창의적 활용이 중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가지 유비쿼터스 기술과 무선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무선인터넷, 소출력, 휴대전화 등을 통한 전파서비스가 대중화 되었고, 이에 따라 전파이용의 보편화·다양화·광대역화 등으로 주파수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전파를 활용한 산업군도 2008년 99조원 수준에서 2013년에는 118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제한된 자원인 전파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관련 산업의 성장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전파 관련 제도 및 지원정책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전파관리소에서 전파자원에 대하여 일괄 운영∙관리하고 있어서 주파수 사용을 원하면 전파법에 근거하여 무선국 신청을 하고, 1개월 정도의 심사 기간을 거치면 사용이 가능하지만, 현행법상 무선국은 시스템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주파수를 한 가지의 용도로만 사용하여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파는 시스템의 개념으로 해당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주파수를 사용하는 것이므로 주파수 이용에 대해 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무선국 설립에 대해 허가 받는 것이다. 따라서 무선국 신청시에 설립할 무선국에서 사용할 주파수가 얼마이고, 그 용도는 어떠한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것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어서 신청한 용도 이외에는 전파를 활용할 수가 없다.
다른 용도로 사용을 하고 싶다면 다른 용도의 무선국 신청을 다시 하고 1개월 정도 허가를 기다려야 한다. 기존의 전파에 대한 수요가 적을 때는 이 시스템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요즘과 같이 전파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 상태에서 해외진출을 위한 단말기나 서비스를 개발중인 업체의 경우는 테스트를 위해서 1개월을 기다려야 하므로, 업체 입장에서는 개발 기간 연장으로 인해 개발 비용이 상승하게 된다.
또한 해당 기술에 대한 무선국을 신청하여 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1년마다 재신청을 하여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존재한다. 그리고 혼신이 발생하지 않아야 신청할 수 있는 조건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건물과 사용 전파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랩테스트만이 가능할 뿐, 필드테스트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급변하는 방송통신 기술환경에 대응하여 매번 무선국을 신청해가며 국내에서 테스트를 시행하기에는 거쳐야 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것이다.
제주의 비전 : 전파자유이용지대(Free Radio Zone)
제주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파자유이용지대는 기존의 전파를 이용하여 제공하고 있는 모든 서비스에 위해(危害)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전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대를 말한다. 전파자유이용지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기존의 서비스에 영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남에게 구속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전에 전제 조건이 사회의 가치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파자유이용도 마찬가지로 국방을 위해 사용되는 통신 주파수나 해양에서 조업중인 선박들을 위해서 사용되는 중요한 주파수도 허가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서비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화이트 스페이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 대역을 테스트용으로 다양한 산업적 요구에 맞도록 이용 가능하도록 허가해 달라는 의미이다.
전파자유이용지대의 선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전파 산업의 요구 충족을 통한 기술 발전 및 산업의 활성화다. 노무현 정권 시절 모바일 산업 분야의 진흥을 위해서 M1(Mobile Number One)이라는 프로젝트가 추진되었었다. 대기업 CEO 출신의 진대제 전 장관이 ‘2010년 차세대이동통신 분야의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모바일 일등국가 건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일부 지역을 ‘Free Frequency Zone’으로 지정하여 기술이나 표준 등을 제한 없이 자유롭게 테스트 할 수 있도록 하여 모바일 산업을 촉진하려 했었다. 특정 대역의 주파수를 과학이나 기술발전을 위한 목적의 테스트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시켜준다면 모바일 관련 중소기업들이 해외의 기술발전 동향에 발맞추어 자유롭게 그 기능을 테스트하고 아이디어를 현실화 할 수 있어 관련 산업의 육성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잉여 자원을 통한 경제적 추가 이익의 실현이다.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수행해야 하는 개발기간 및 개발비용이 절감되어 관련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및 산업 육성에 기여할 수 있다.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해외에서 테스트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특구 내에서 누릴 수 있다면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 단말기 평균 개발기간이 9개월인데 해외 필드테스트를 위해 소요하는 기간이 3개월이다. 전파이용자유지대를 통해서 국내에서 필드테스트를 할 경우 해외 테스트 기간을 80%정도 단축시킬 수 있다.
셋째, 제주를 자유이용지대로 선정할 경우 모바일 통신방송 컨버전스 센터와 함께 여러가지 지원정책들을 연계·추진함으로써 관련 산업의 시너지 효과와 함께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제주는 랩테스트 뿐만 아니라 필드테스트가 가능한 환경적 요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주지역의 센터에서 추진하는 통방관련 테스트 사업과 연계될 경우 중소기업체의 어플리케이션 및 솔루션에 대한 교육과 인력양성, 기술개발지원 및 인증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연계된 지원사업의 추진이 가능해짐으로써 명실상부한 방통산업의 메카가 될 것이다.
창의적인 전파강국을 위하여
전파 산업의 다양화로 인해 모바일 방송 부분만 해도 T-DMB, DVB-H, ATSC-M/H, DRM, DRM+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되고 있고, 그 서비스를 위한 단말기들도 급속히 개발되어지고 있다. 전파 산업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내 기업의 실험실내 연구 활동이 실외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제주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파 자유이용지대는 유연한 전파 활용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인프라 중 하나이다.이다.
제주에서 바라는 바는 전파자유지대 지정을 통해서 모바일 통신∙방송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테스트베드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테스트베드 구축은 전파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 인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컨버전스 시장에서의 서비스 상용화를 위한 실증과 시범기지 마련하여 글로벌 통신∙방송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전파산업의 밑거름이다. 이러한 사항들이 모두 이루어져야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전파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인환 제주지식산업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