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V 4인대표 합의를 반영한 정책 추진 실종
시청자의 고품질 DTV방송 요구에 이제는 부응해야
작년 이맘때는 DTV 전송방식 논쟁이 극적인‘4자합의’를 거쳐 4년간에 걸친 논쟁이 종지부를 찍은 때다. 하지만 DTV 논쟁의 시발점이었던 21세기의 방송환경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IT강국을 자처한 한국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더욱 거세다.
이미 1997년 이후부터 일부 국내외 방송전문가들이 걱정해오고 예견했던 일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위성DMB가 방송되면서 20만 가입자를 눈앞에 두고 있고, TV포털 서비스를 준비하는 사업자는 즐비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수백채널까지 제공 가능한 BCN 시범서비스가 실시되고 있고, 케이블TV는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 부처들마저 방송통신구조개편위원회의 설치를 두고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TPS 서비스라는 탈을 쓰고 통신사업자들이 방송시장에 뛰어들고 있고, 인터넷 서비스는 유선방송을 위협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복합단말기들의 출시가 봇물을 이루면서 방송콘텐츠의 복제, 전송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MP3 파일의 무분별한 공유와 복사가 음반시장을 고사시키듯이 방송 콘텐츠 또한 불법복제와 공유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다. 사용자들은 방송과 통신의 구분없이 미디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미디어의 출현이 디지털디바이드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OECD국가 중에서 가계비 중 통신비용 지출이 최상위에 속한다. 새로운 서비스들이 쏟아질수록 그 부담을 결국 소비자인 국민이 짊어지는 정보불평등 구조는 IT강국의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이다.
윈도우가 넓어지면 콘텐츠의 수요도 많아지고 당연히 콘텐츠 제작의 핵심 허브를 이루고 있는 지상파방송사의 기업가치와 수익은 증대될 것이라고 기대해왔던 낙관적 희망이 낙담으로 바뀐지 오래다. 지상파방송의 TV광고시장은 축소되고 있고, 시청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반면 경쟁매체의 약진은 눈부시다. 케이블TV에서 방송 콘텐츠는 A La Carte의 한 부분에 불과하고 인터넷,유선전화, 화상전화까지 제공할 태세이다. 인터넷 방송은 어떠한가? IPTV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거대 인터넷포털이 TV포털을 준비하고 있다. 미디어 전국시대이다.
미디어가 늘어날수록, 채널이 증가할수록 콘텐츠의 갈증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상파방송사의 독과점을 해소하고 영상산업 기반을 진흥하여 콘텐츠 제작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외주비율의무 정책은 오히려 지상파의 제작능력만 떨어뜨리고 일부 거대 외주사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 천정을 모르고 치솟는 출연료는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모두에게 커다란 부담이고 콘텐츠 품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 시점에서 디지털 방송을 도입하면서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화질, 고음질, 다채널, 데이터방송, 쌍방향 서비스, 난시청 해소 등이었던 것 같다. 이런 약속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을 해보기는 했을까? 우리나라 정책기관들의 행동양태가 대체로 정책을 입안하여 실적을 과시하고 후속조치는 대충 형식적인 과정을 거치는 실정이다. 시장에서 성공하면 정책입안자의 실적이고 시장에서 퇴출되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일반적인 모양새이다. TV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유행하고 있는“대충하다가 성공하면 내 탓, 실패하면 모르쇠”형국이다.
방송위원장, 정통부장관, 언론노조위원장 등이 참여한‘4인대표 합의’마저 이러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인대표 합의의 주요한 사항만 점검해도 이는 명백해진다. 진대제 장관이 국내외 세일즈 활동까지 하면서 옥동자라고까지 칭찬한‘지상파DMB’는 정통부의 몽니로 시범방송 일정마저 불투명하다. 지역 지상파DMB 서비스 실시는 더욱 더 미래가 불투명하다. “지상파디지털TV의 난시청을 해소하기 위한 수신환경 개선, 채널 간 혼신방지 등을 해결하기 위한 예산지원 등 정책적 방안”은 실종된 지 오래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디지털방송 관련 국가표준 등 중요정책을 결정할 때에는 이해 당사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면밀한 기술검토 등을 위해 관계단체와 방송사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 운영한다”라는 조항 역시 마찬가지이다. “DVB-H프로젝트를 조속한 시일 내에 추진하고 표준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라는 조항 역시 후속조치가 부실하다. 4인대표들이 합의 기초로 전제한“고품질의 디지털방송 서비스를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후속 조치가 얼마나 현실화 되었는지 4인대표들은 1년이 지난 지금 다시한번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HDTV 고화질 정책을 채택한 미국과 일본의 전환정책은 어떠한가. 미국이 지상파TV를 디지털화하면서 내세웠던 목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시장선점, 수출 우선, 독과점 배제등의 방송정책 논리의 의식부재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의 디지털 전환 목표는 분명하다. 첫째, 무료의 보편적인 방송서비스를 보호한다. 둘째, 국민들이 아날로그 방송보다 우수한 디지털방송 서비스를 신속하고 단계에 따라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셋째, 주파수 사용의 효율성을 높여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보도록 한다. 넷째, 주파수 사용에는 공익을 우선 한다 등이다. 이를 위해 FCC는 시청자들이 디지털방송의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규제를 완화하고 자율성을강조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튜너 의무장착 법안, 의무재전송법안, 저작권보호기술 도입, 저출력 송신소 설치, 보조 서비스의 활성화등 다양한 디지털 전환정책이 뒷받침되고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연구회를 통하여 디지털방송 활성화 정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디지털 전환이 늦은 나라들도 신기술을 이용하여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포르투칼, 프랑스, 스페인, 말레이시아등의 디지털TV 도입시기는 우리보다 늦었지만 활성화는 빨라질 전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디지털전환이 오히려 지상파방송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국민들에게는 고가의 디지털TV 구입과 유료방송에 가입해야 DTV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현실은 정책적 실패가 명맥하다.
4인대표합의가 1년이 지난 이 시점에 다시한번 합의정신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