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논란, 지출 공방 넘어 세입에서 풀어야
오 건 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근래 우리나라에서 국가재정이 주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균형재정이 유지된 편이어서 국가재정이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얼마 전 이명박정부가 내년 정부총지출 요구안을 공개했다. 작년 감세 조치로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4대강사업 지출을 대폭 늘리고 대신 교육, 복지 중소기업 등 민생예산을 줄이는 안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는 정부안이다.
필자가 국가재정에 관심을 가지는 보다 큰 이유는 ‘재정건전성’ 논란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국가개정의 건전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아왔다. IMF 금융위기 직후 예외적인 상황을 빼고는 GDP ±1% 대에서 재정이 관리되어 왔다. 그런데 올해 재정수지 적자가 51조원에 달한다. 이에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KDI가 주축이 된 ‘2009-2013년 중기재정운용계획’ 총량분야 작업반은 향후 3년간 재정지출을 동결하라고 제안한 상태다.
국가재정은 ‘누구에게 거두고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해관계집단이 분명히 갈린다. 앞으로 국가재정을 둘러싼 논란이 더 커지면 이 의제가 한국정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점점 다가오는 재정건전성 논란이 우려스럽다.
재정건전성은 모든 정치세력에게 부담스러운 주제이다. 국가재정 관리 책임을 맡은 정부여당은 국정운영능력을 의심받을 것이고, 복지확대를 주창하는 진보세력은 재정 부족이라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재정건전성을 둘러싸고 양 세력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것이다.
지금은 정부여당이 공세를 펴고 있다. 재정적자를 빌미로 재정긴축론이 확산되고 있다. 내년 정부총지출 요구안도 올해 정부총지출 301.8조원에 비해 3.3조원 줄은 298.5조원이다. 자연증가분이나 물가상승율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이 요구안은 4대강사업을 확대하면서 복지지출을 삭감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재정건전성 논란을 ‘재정지출’ 공방 프레임으로 귀결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논의틀에선 복지지출이 줄어드는 것을 일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취약한 복지 상태를 획기적으로 개혁하기는 힘들다. 참고로, 2006년 기준 우리나라 복지지출은 GDP의 7.5%로 OECD 평균 21.2%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원래 재정건전성은 세입과 세출 양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재정건전성 논란이 불거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다 지출’ 보다는 ‘작은 세입’에 있다. 올해 우리나라 재정지출은 GDP 34%로 OECD 회원국 평균 45%에 비해 11% 포인트가 작다. 우리나라 GDP가 약 1조원이므로, 지금보다 110조원을 더 지출해야 OECD 회원국 값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 세입이다. 소득세만 보더라도, OECD 국가들의 평균 소득세 세입이 GDP 9.2%인데 반해 한국은 4.1%로 절반에도 못미친다. 우리나라가 소득세로 51조원을 덜 걷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한국호를 거꾸로 이끌고 간다. 소득세를 비롯한 직접세를 상향시켜야 할 때에 오히려 감세를 감행했다. 이명박정부 임기 5년 동안 총 96조원의 세입이 줄어들 예정이다.
이에 감세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책연구기관과 정부여당 내부에서도 종종 비슷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감세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거세지면 내년부터 새로 적용되는 감세분이 보류될 개연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혹 내년 감세가 보류되더라도 우리나라에 던져진 재정건전성 과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년에도 국가재정의 수입과 지출이 올해와 비슷해 재정적자가 약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바람대로 내년에 경제성장률이 4%에 이르러 세수가 약 10조원 늘어나더라도 여전히 40조원의 재정적자가 남는다. 결국 이를 빌미로 재정긴축 요구는 커질 것이고, 복지지출은 이명박정부의 내년 요구안처럼 삭감되거나 정체되는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재정건전성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선 획기적인 세입 증대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라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감세를 보류하는 것을 넘어 상위계층의 조세부담을 강화하는 ‘증세’를 국민들이 이야기해야 한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그리스, 헝가리 등 외국에서도 상위계층 증세가 추진되고 있다.
여기서도 장벽은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감세를 비판하지만 증세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소득세가 인상되면 중간계층도 일부 세금을 더 내야하고, 취약한 조세인프라에 따른 과세형평성, 정부 재정지출에 대한 불신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해 논의할 수 있는 대안이 사회복지세이다. 이 세금은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직접세와 개별소비세(구 특별소비세)에 누진율을 부가하는 목적세다. 우리나라처럼 조세 불신이 크고 복지체험이 취약한 곳에선 ‘복지와 조세’를 연계한 세목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가칭)‘복지확충특별회계’도 필요하다. 한국의 복지지출이 일정수준 (예: OECD 평균)에 이를 때까지 특별회계를 통해 복지지출을 늘려가며 국민들이 복지를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재정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까지 ‘엉성하게 걷고 허튼 데 사용했던’ 국가재정을 정상화하라는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동시에 점차 부상하는 제정건전성 정세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제 세입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긴 호흡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증세 운동’을 이야기해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