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그 어느 활동보다도 다양한 전자전기장비가 활용되는 분야이다 보니 ‘정비팀’은 어느 방송사에서든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방송의 화려한 겉모습에 비한다면 그들의 역할은 늘 뒤편에 가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호 인터뷰의 기술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방송기기정비실의 이야기를 하나 전해드리고자 한다.
| 입사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2000년 10월에 입사했으니까 이제 10년이 넘었네요.
| 특이하게도 처음 입사하실 때부터 방송기기 정비 분야를 고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취미가 ‘정비’에요. 기기를 뜯어서 고치고 조립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 언제부터 그런 취미를 가지셨나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무수하게 만지고, 만들고, 부숴댔죠. 그래서 대학 전공도 전자공학으로 선택했고요. 집에 있는 각종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오토바이도 제 손으로 다 고쳐요.
메커트로닉스(Mechatronics)라고 하죠? 전자와 기계가 같이 있는 것. 요즘 대부분의 방송장비들이 그렇잖아요? 메커니즘과 전자회로가 함께 구성되죠. 모니터는 회로로만 구성돼있어서 회로만 잘 보면 되지만 VCR·카메라는 기기구조도 둘 다 잘해야죠.
| 방송사에 들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어렸을 때는 막연히 과학자가 꿈이었어요. 그렇지만 현실은 전자공학 나와서 잘 가봐야 대기업이나 공사 정도죠. 그런데 대학원 다닐 때 옆 친구가 SBS에 원서를 쓰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내봤죠. 생각해보니 방송국은 방송장비 없이는 운영될 수가 없으니 정비실 같은 곳이 분명히 있겠다 싶더라구요. 그 때부터 인터뷰 할 때도, 부서 배치할 때도 정비실에 관심이 있다고 줄곧 어필했죠.
| 방송사가 경쟁률이 높긴 하지만 정비 업무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지 않나요?
네, 보통은 기피하죠. 하지만 저는 운 좋게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아요. 기기가 고장 나서 제 앞에 놓이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기분이 들어요. 이 기기가 부활을 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폐기되느냐가 제 손에 달려있는 거잖아요. 이 장비를 고쳐서 제 구실을 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요. 예를 들어 비디오 장비를 고쳐서 칼라바를 화면에 쫙 띄울 때, 그럴 때 어려운 수학문제를 푼 것 같은 보람과 희열을 느끼죠.
| 입사하고 나니 주변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너한테 맞는 일 제대로 찾았다”, “너는 취미생활하면서 돈 버는구나” 이런 반응이었어요. (웃음)
*‘취미와 일을 일치시키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이 한번쯤은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이지만 이를 실천해 옮기는 행운을 지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사람… 분명히 행운아다.
| 업무량이 적지 않을 듯합니다.
저희는 정비실에 앉아서만 장비를 고치지는 않아요. 장비가 빌트인(built-in) 되어있든 휴대장비든 방송시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작업해야죠. 그래서 끊임없이 민원이 들어와요. 새로운 시설을 구축할 때도 장비업체 입장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세팅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보완이나 이전과 관련한 작업은 저희가 도맡아서 하구요. 또, 당장 써야하는 장비가 고장 났을 때 급하게 대체 장비를 찾아서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것도 저희 일이죠. 가끔은 장비 조작이 서툴러서 저희를 찾는 경우도 있어요. 방송사 내는 정규직 이외에도 계약직, 아르바이트들이 운영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분들이 저희를 필요로 하죠. 또, 작년에는 SBS가 유난히 해외 스포츠 이벤트를 많이 중계했는데 현지에서 제작·부조·송출시설을 구축하는 것도 저희 업무에요. 그래서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가는 경우도 흔하죠. 저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도하 아시안컵 축구대회 당시에 현지에서 부조·스튜디오·송출 시설을 구축했습니다.
말하자면 SBS 방송기기정비실은 … 다 해야 되요 (웃음)
▲ 2010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필자 |
| 모든 장비의 최적화 상태를 파악하고 계셔야겠군요.
네, 처음에는 장비 매뉴얼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매뉴얼만큼 자세한 튜토리얼은 없거든요. 도면 하나하나까지 정말 잘 나와 있어요. 예를 들어 전력공급장치(Power-Supply)라고 하면 학교에서는 이론 수준으로만 개략적으로 배우는데, 실제 제품을 보면 각종 보호 회로들과 제어장치가 빼곡하게 들어차있거든요. 학교에서는 거기까지 안 가르쳐 주잖아요. 비슷한 제품들을 오래 손보다 보니 한 5년차 정도부터 그런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 다양한 장비들을 정비하다보면 오히려 제조사보다 더 정확하게 장비를 파악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매뉴얼에서 요구하는 것과 달리 SBS만의 고유한 Jig(테스트 장비)를 직접 개발하거나 회로를 수정하는 경우가 있고요. 예를 들어서 모 제품은 1년 정도만 사용하면 전력공급장치가 수명이 다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어요. 제조사는 무조건 전력공급장치를 교체해야한다고만 대응하더라고요. 그래서 도전정신이 또 불붙었죠. 부품을 다 덜어내고, 양면기판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회로도를 다시 복기하기까지 했죠. 그렇게 결국 콘덴서 하나가 용량이 잘못 설계됐다는 걸 발견하고 제조사에 피드백해준 적도 있어요.
| 방송장비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IT니까요. 방송장비의 추세도 스토리지·서버 네트워크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고요. 정비업무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고 있어요. 스토리지 구성을 바꾸는 일을 비롯해서, NLE 작업을 위해서 네트워크 구성을 하는 거라든지, NLE용 컴퓨터가 고장 나는 경우도 정비실에서 해결하구요. 사무용 컴퓨터의 경우에도 전산보조실에서 수리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가까운 저한테 봐달라고 부탁해요. 또 코덱이 맞지 않는 외부미디어를 급하게 컨버팅해야하는 경우에도 저희를 많이 찾아요. 특히 외부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십중팔구는 저희 몫이 되죠.
| 새로운 트랜드, 어떻게 따라잡고 계신가요?
다행히도 인터넷에 방송장비 관련한 문서들이 꽤 많은 편이에요. 틈날 때마다 찾아서 공부를 하기도 하구요. 요즘에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거기에 관련 정보들을 담아놓고 들고 다니면서 보고, 장비별 에러코드 같은 경우도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찾아서 참고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데이터는 흘러넘친다. 하지만 그것을 정보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 스마트폰에 빼곡히 담긴 매뉴얼들은 진신우 님의 몸에 베인 학구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현재 정비팀 내에서는 위치는 어떻게 되시나요?
입사했을 당시에는 정규직 사원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 인력구조가 변하면서 정사원은 4~5명으로 운영되고 나머지는 모두 파견사원으로 채워졌죠. 그러다보니 10년차인 제가 아직도 막내로 남아있어요. 가끔 기술직으로 새로 들어온 후배들도 모두 다른 부서로만 발령이 나고요.
제가 아무리 많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을 후배에게 전수시키고 후배가 그걸 더 좋은 기술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기술을 전수할 후배가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
| 어떤 후배가 들어오길 바라시나요?
어릴 때부터 끼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기계 뜯어보는 거 좋아하고, 잘 고치고, 하다못해 자기 집 자동차 문짝이라도 한번 뜯어서 들여다보는 친구들… 그런 끼가 있는 친구들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또, 세상의 사물을 바라볼 때 모든 것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동작하는 것을 보는 순간 공식이 떠오르는 것처럼요. 말하자면 옴의 법칙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친구랄까… (웃음) 제가 신입사원 선발할 때 몇 번 참여를 해봤는데 취미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책 읽기·영화보기 이런 것 보다 ‘드라이버질이 취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후배가 훨씬 매력적이에요.
| 요즘 관심 갖고 공부하는 분야가 있나요?
미디어를 다루는데 관심이 많아요. 쉽게 말하면 비디오 동영상이죠. 세상에는 다양한 코덱이 존재하는데 방송국은 모든 코덱들을 다 수용해야하거든요. 저희가 사용하는 NLE는 EDIUS와 Final Cut Pro 두 가지인데요. 어떻게 해서든 두 가지의 타임라인 위에 필요한 영상들을 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거든요. 가장 빠르고 화질열화가 적게 컨버팅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들을 공부하고 있어요. HD영상의 Bit Rate가 초당 17MB 정도인데 그걸 어떻게 원하는 수준으로 줄여서 아카이빙(압축·저장)하느냐가 제 관심사입니다.
| 정비 업무의 매력이 있다면?
보람이죠. 자기의 기술을 인정받는다는 보람. 그리고 방송사 내에서 아무도 해결 못하는 문제를 제가 해결하는데서 보람을 느끼는 거죠. 예를 들어 월드컵 같은 해외 대형 이벤트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측불허의 수많은 상황들을 해결하고 나서 동료들이 고마워할 때, 그때가 가장 짜릿하죠.
*장비에 대한 지식, 방송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함께 고도의 순발력이 요구되는 일이 방송정비 업무라고 말하는 그의 눈이 유난히 빛난다. 그가 정말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다. 그의 번뜩이는 눈빛과 노하우를 이어받을 끼 많은 후배는 과연 누가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