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땅끝까지 여행기

자전거로 땅끝까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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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마지막 주, 서서히 개이고 있는 아침공기를 가슴으로 들이키며 한강을 질주해 나갔다. 전날까지 계속되던 비도 그쳤고 흐렸던 하늘도 아침햇살에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땅끝마을까지 자전거로 달리기엔 최적의 날씨인 것 같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느낌이 가볍다. 일단 반포대교 아래에서 오래된 친구(KBS위성중계실 김상욱 차장)를 만나 동행하기로 하였다. 지난해 서울서 설악산까지 자전거로 함께 질주했던 20년 지기 친구이다. 친구는 2년 전 이미 땅끝마을을 혼자 다녀 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바퀴 작은 자전거로 도전하겠다며 미니벨로를 타고 나왔다. 이번 자전거 여행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천안서 공주를 지나 계룡산 자락을 오르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완만하지만 긴 언덕이다. 굽이를 몇 굽이 돌았건만 아직도 더 올라야 한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는 고속버스로 내려와 논산방향 23번 국도를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 100Km씩 달리기로 하였으니까 첫날은 논산까지 달려야 한다. 한강을 질주한 20Km와 천안 논산간 거리 80Km를 합쳐 100Km를 달려야 한다. 다행히 어둡기 전에 도착하여 첫날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둘째 날, 조금 무리하여 130Km이상 떨어진 영광까지 달릴 욕심에 아침부터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도 23번 국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큰 산악지형은 없고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를 가로지르는 비교적 달리기 쉬운 구간이다. 그러나 이 구간부터 23번 국도는 휴게소나 매점 하나 찾을 수 없는 아주 메마른 도로이다. 혹시 뜨거운 여름날 23번 국도를 달릴 예정인 분은 꼭 물을 충분히 챙겨야 할 것이다. 시간을 계산하지 말고 작은 구멍가게라도 보이면 무조건 들려서 이온음료나 아이스크림으로 체내의 수분을 채워야 한다. 탈진하기 쉬운 도로이다. 문제는 익산과 김제를 지나면서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 부안을 지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은 목표까지 가지 못하고 고창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셋째 날, 무리하지 않게 목포까지만 가면 된다. 그래도 100Km거리이다. 영광을 지나고 함평부터는 1번 국도로 갈아타고 목포로 들어간다. 목포에 가까워질수록 언덕과 내리막길의 연속이 계속된다. 언덕을 오르면서 버릇이 생겼다. 멀리 보면 높은 언덕에 미리 질리니까 챙 깊은 모자 눌러쓰고 바로 몇 미터 앞만 보고 페달을 밟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 바로 앞은 수평으로 보인다. 학창시절 배운 미분법을 이용하여 구간을 아주 짧게 보면 그 구간은 직선이고 기울기 변화가 작다. 그러면 언덕인줄 모르고 쉽게 오르게 된다. 이렇듯 머리 속으로 미분과 적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언덕을 오르게 되고 내리막길에서 질주의 보상을 받는다. 이 맛에 언덕이 싫은 것만은 아니다. 어느새 언덕길을 즐기고 있었다. 이쯤 되면 엉덩이 아픈 것도 견딜 만 해진다. 목포는 역시 큰 항구였다. 잘 정리된 바닷가 산책 길과 은은한 항구의 불빛이 목포의 인상을 깊게 만들고 있었다.

넷째 날, 드디어 땅끝을 밟는 날이다. 목포에서 출발하여 하구언 뚝방길을 통과하여 대불공단을 지나 해남가는 팻말을 따라서 806번 지방도 산이마을길로 접어들면 차가 많이 다니지 않고 목가적이면서 높은 산이 없어 자전거 길로는 아주 훌륭한 도로를 달릴 수 있다. 해남부터는 완도방향 이정표를 따라 13번 국도를 달리다가 터널을 하나 지나면서 우측으로 땅끝마을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서서히 해안가 마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낮은 언덕을 몇 개 지나 송호마을 해수욕장에 이르게 되면 해송에 둘러싸인 모래사장과 맑은 바닷물의 아름다운 조화에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이 저절로 멈추게 된다. 여기서 남쪽을 쳐다보면 높은 산마루 끝에 땅끝 전망대가 보이며 가파른 언덕길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마지막 힘과 인내를 모아 한참을 그 언덕을 오르다 보면 시원한 내리막길을 만나게 되고 내리막길 중턱에 희망의 땅끝이란 커다란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언덕 아래에 보길도로 떠나는 배가 보이며 작은 항구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에 땅끝을 알리는 또 다른 비석이 있고 정월이면 작은 두개의 섬 사이로 해가 뜨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땅끝마을이 있다. 땅끝항구에서 또다시 해안가 절벽을 따라 한참을 목책 길을 걷다 보면 또 다른 토말비가 나타난다. 이곳이 진정한 국토의 땅끝이다. 마침 이곳에서 남해에 내려 앉는 석양을 맞이하게 되어 이번 여행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이날 110Km를 달려온 피로와 땅끝까지 자전거로 달려왔다는 성취감에 곧 깊은 잠에 빠졌다.

다섯째 날, 이번에는 땅끝에서 출발하여 오른쪽 해안을 따라 달마산 밑을 지나서 대둔산과 두륜산 방향으로 향하다가 13번 국도를 만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완도에 이르게 된다. 완도읍은 완도의 남쪽 끝 부분에 있으니 해안을 따라 남해의 절경을 구경하며 내려가다 보면 과거 한..일 해양무역을 장악하던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던 장좌리 마을을 지나게 되고 장보고기념관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완도읍에서 땅끝마을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고속버스에 자전거와 몸을 실었다. 자전거 속도계에는 5일간의 자전거 여행길 총 515Km의 기록이 찍혀있었다. 그 동안 지나면서 들렸던 지평선 전망대 마을의 추어탕집과 고창의 풍천장어 그리고 함평 시장터의 쇠고기 육회비빔밥과 목포의 홍탁 삼합과 인동주 막걸리하며 해남의 유명한 떡갈비와 땅끝마을 쫌팽이 회가 생각난다. 다음에는 완도에서 시작하여 자전거와 배를 이용하여 신지도와 고금도 그리고 마량과 금일도를 거쳐 고흥반도 녹동에 이르는 섬 여행 자전거 길을 달릴 생각을 하며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편집주간/SBS기술팀 부장 박 성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