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플랫폼 전쟁이 시작된다

[기고] 인공지능, 플랫폼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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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이승훈 LG경제연구소 산업부문 연구원] IBM Watson의 임원인 David Kenny는 인공지능이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AI as a Service’ 시대를 예견한다. 마치 소프트웨어나 서버 인프라 등을 기업이 직접 구현하거나 구축하지 않고 서비스 형태로 제공된 ‘SaaS(Software as a Service),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를 활용하는 것과 같이 인공지능도 전문 기업에 의해 구현되고 서비스로 활용되는 환경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동안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며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그 영향력이 IT 산업 내에 그치지 않고 제조, 금융, 의료,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에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파급력을 일찍이 인지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주요 IT 기업은 인공지능을 미래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정의하고 관련 역량을 빠르게 확보해 가고 있다. 이들 기업은 자신들의 기존 사업을 고도화하는 수단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을 일으킬 핵심 요소로 활용하기 위해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 구글과 애플은 모바일 OS를 통해 산업을 혁신시키고 이를 플랫폼화해 생태계를 만들며 산업을 주도해 왔다. 마찬가지로 주요 IT 기업은 인공지능을 플랫폼화해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을 리드하며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려고 한다. 각 산업 내 기업들은 IT 기업의 인공지능 플랫폼을 활용해 생태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반대로 주도권을 가졌던 기업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기업에 기존 영향력을 빼앗기며 도태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플랫폼화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가려는 거대 IT 기업을 비롯한 주요 기업의 준비는 이미 시작됐고 다양한 산업 영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Google : 기술력과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범용 인공지능 플랫폼

구글은 고도화된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인 알고리즘,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에 대해 모두 최고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개별 요소 기술들이 특정 산업에 목적성을 두고 개발된 것이 아닌 다양한 산업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데이터에 있어서 구글은 인터넷에서 생성되는 웹 기반의 정보뿐 아니라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바일 환경의 실시간 정보도 확보하고 있다. 단순히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다양성을 갖는 데이터가 인공지능의 기계 학습 과정에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면서도 높은 수준으로 인공지능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플랫폼화해 모바일 산업 생태계를 주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플랫폼화해 다양한 산업 생태계를 혁신시킬 것이며 그 영역은 전자/IT 산업을 넘어서 모든 산업으로 확대될 것이다.

가장 먼저 구글의 인공지능 플랫폼을 통해 기존 안드로이드 생태계 내의 앱/서비스를 시작으로 혁신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개발자들에게 소프트웨어 개발 툴과 앱 마켓을 통한 유통 채널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구글은 이제 개발자들에게 인공지능 플랫폼을 통해 고도화된 지능을 제공하려 한다. 실제 구글은 지난 3월 ‘Machine Learning P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음성 인식, 이미지 분석, 번역 기능을 수행하는 플랫폼을 공개했다. 음성 인식, 영상 처리, 번역 등과 같이 오랜 시간과 높은 개발 역량이 요구되는 부분을 구글의 인공지능 플랫폼이 대신 처리해 준다. 개발자들은 플랫폼을 활용해 처리된 영상의 결과를 가지고 가상현실(VR) 게임을 만들거나 번역된 정보를 가지고 다국어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과 같이 서비스 자체에만 역량을 집중해 고차원의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지능을 제공하는 영역이 점차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며 구글은 전 산업 영역을 포괄하는 범용 인공지능 플랫폼을 확산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구글의 CEO 선다 피차이는 지난 4월 21일 주주들에게 보낸 메시지(Founders Letter)에 “앞으로 모바일 중심의 시대가 지나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며 향후 다양한 산업 영역의 혁신을 인공지능을 통해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Facebook: 정교하고 고도화된 개인별 맞춤형 인공지능 플랫폼

페이스북의 CEO인 주커버그는 지난 4월 열린 페이스북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페이스북의 미래 10년 로드맵을 발표하며 인공지능을 미래 핵심 기술로 꼽았다. 일찍이 페이스북은 2013년 딥러닝 분야의 핵심 연구자인 얀 레쿤(Yann LeCun) 교수를 영입해 뉴욕, 파리 등에 인공지능 전용 연구소를 설립해 인공지능 핵심 기술 개발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고도화를 위한 데이터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사용자들의 사회 관계망 정보(Social Network) 확보에 집중해 왔던 페이스북은 이제 개별 사용자들의 성향, 특성을 유추할 수 있는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확보하려 한다. 실제 지난 2월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게시물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종류를 기존 ‘좋아요’에서 ‘기쁨’, ‘슬픔’ 등 6종류로 세분화했다. 이를 통해 페이스북은 특정 사물, 상황에 대해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을 보다 세분화해 축적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개개인의 성향, 특성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정보가 인공지능의 기계 학습 과정에 활용될 경우, 매우 정교한 수준으로 개인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페이스북이 공개한 대화형 인공지능 플랫폼인 ‘챗봇(Chatbot)’을 보면 사용자의 상황과 선호도를 정교하게 분석해 정보 검색, 쇼핑, 예약 등의 서비스에서 최적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은 비록 구글에 비해 공공 데이터(Public Data) 영역에서 상대적 경쟁력이 낮지만 개별 사용자의 특성과 성향을 누구보다 정확히 분석 가능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플랫폼을 통해 개인화, 맞춤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IBM: 의료 전문 인공지능 플랫폼

IBM은 Watson을 구현해 인간과 퀴즈 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보여 왔다. 방대한 정보를 조합해 지식을 만들어 내는 Watson의 핵심 기술을 활용해 IBM은 의료, 금융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IBM은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은 보유했지만 각 분야의 사업 경험과 데이터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IBM은 산업 내 관련 기업을 M&A 하거나 제휴해 분야별 데이터를 확보하고 전문성을 높여 가고 있다. 의학 분야의 경우 IBM은 2012년 캐더링 암 센터와의 제휴를 통해 약 200만 페이지 의료 전문 서적, 60만 건 진단서, 150만 건 환자 기록을 확보했다. 이후 약 4조 원이 넘는 규모의 집중적인 M&A를 통해 의료 분야의 역량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약 3조 원을 들여 인수한 ‘Truven Health Analytics’는 미 연방 정부 및 주정부 등 약 8,500개 고객사에 헬스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서 막대한 양의 의료 정보를 보유한 기업이다.

의료 전문 인공지능 플랫폼인 ‘Watson Health’를 운영 중인 IBM은 다수의 헬스 케어 서비스 기업을 참여시키며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IBM 플랫폼 생태계에 현재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은 헬스 케어 디바이스 제조 기업에서부터 전문 의료 기관에 이르기까지 의료 산업 내 다양한 기업으로 이뤄져 있으며 빠르게 확장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서 IBM의 Watson이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GE: Industry 4.0 선도할 산업 인공지능 플랫폼

항공, 에너지, 헬스 케어, 제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오랜 사업 경험을 갖고 있는 GE는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고 있다. 2015년 CEO인 Jeff Immelt는 “GE는 지금까지는 제조 기반의 회사였지만 앞으로 글로벌 Top 10 소프트웨어 회사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약 1,200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확보하고 실리콘 밸리에 소프트웨어 연구소(GE Digital)를 설립한 GE는 산업용 클라우드 플랫폼인 ‘Predix Platform’을 발표하며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 플랫폼 적용을 확산시키며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주도하려 한다.

GE의 정보통신 책임자(CIO)인 Jim Fowler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Predix가 기본적으로는 센서, 기계 간 통신, 데이터 분석과 같은 IoT 기술을 지원하는 클라우드 플랫폼이지만 결국 이를 넘어 인공지능이 접목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 Predix는 이제 단순한 기계 간 연결, 정보 수집의 단계를 넘어서 기계들이 정보를 분석하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GE는 Predix를 인공지능 기반의 ‘Intelligence Platform’화하기 위해 인공지능, 특히 머신러닝/딥러닝 분야의 인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고, 지난 3월에는 딥러닝 분야의 신생 벤처인 Arterys에 15억 원을 투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역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GE는 Predix를 자사의 500개 공장에 2년 동안 시범적으로 적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를 약 6조 원으로 추정한다. 검증된 내부 사례를 활용해 Intel, Accenture, Softbank, TATA 등 현재 약 30여 개에 이르는 파트너사를 확보하며 Predix 기반의 산업용 인공지능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실제 P&G와 볼보 등에서는 GE의 Predix 플랫폼을 활용한 ‘Brilliant Factory(생각하는 공장)’를 각 사의 제조 현장에 도입했고 연간 20% 이상의 비용 효율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형 파트너사 확보와 동시에 GE는 3rd Party 개발자 참여를 통한 Predix 플랫폼 생태계 확대를 위한 노력도 병행하며 약 4,000명 수준인 개발자 수를 2016년 말까지 2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하며 산업용 인공지능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플랫폼으로 활용해 산업을 혁신해 나가려는 주요 기업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인공지능의 성능을 결정짓는 3대 핵심 기술 요소인 알고리즘, 데이터, 컴퓨팅 파워를 둘러싼 기업 간 경쟁이 예상된다. 이중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컴퓨팅 파워의 경쟁에서는 주요 IT 기업이 모두 상당한 수준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승부가 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반면 각 기업이 차별적으로 확보한 알고리즘 역량과 데이터가 주요 기업이 구현해 내는 인공지능 플랫폼의 성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구글의 경우 인터넷 및 모바일 환경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의 정보가 공공 데이터(Public Data)이다. 반면 페이스북, 아마존은 수년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집한 정보를 개별 사용자의 성향을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개인 데이터(Private Data)가 중심이 된다.

이들 기업은 개인별 사회 관계망 정보, 선호도, 콘텐츠 소비 패턴, 온라인 쇼핑 이력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분된 개별 사용자의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기계 학습 과정에서 주어지는 데이터에 의해 상당 부문 결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개인별 특화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인공지능 플랫폼으로는 페이스북, 아마존이 구글 대비 우세에 있을 수 있다. 반면 구글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알파고를 통해 증명된 기술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진행 중인 딥러닝 관련 선행 연구는 이러한 구글의 데이터에 의해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구글이 구현할 인공지능 플랫폼은 다양한 분야에서 범용적으로 활용 가능한 동시에 높은 수준의 완성도로 구현되며 페이스북, 아마존의 플랫폼과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인공지능 플랫폼의 경쟁에서는 선점 효과가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에 먼저 진출해 생태계를 먼저 만들어 나가는 기업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 딥러닝과 같은 기계 학습 방법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플랫폼은 방대한 데이터에 대한 학습을 통해 성능이 발전되고 정교화되기 때문에 초기에 많은 참여자를 생태계로 끌어모으는 인공지능 플랫폼과 후발 주자로 시장에 들어와 새롭게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기업 간 성능 차이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기업은 이미 인공지능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빠르게 진행 중이다.

기업들은 특히 2013년 이후 인공지능, 딥러닝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 및 응용 기술을 확보한 기업을 경쟁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VC(Venture Capital) 등을 활용해 신생 벤처에 대한 투자 또한 빠르게 확대하며 발전 유망 기술을 선점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기업 간 경쟁으로 초기에는 다수의 플랫폼이 공존하며 경쟁할 가능성이 있지만 초기 성능 격차와 그것으로 인한 쏠림 현상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소수의 플랫폼이 시장을 독과점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