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B야, 어디로 가느냐?

[이종화 컬럼] DMB야, 어디로 가느냐?

1110

위성 및 지상파 DMB가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지만 그런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울다가 웃어야 하나? 지상파 DMB(이하 T-DMB) 수신기 보급이 2천만대를 돌파하는 놀라운 실적으로 보였다. 보급이 늘어난 만큼 수익이 늘어야 하는 것은 경제 상식 중의 상식인데 상식을 희롱하는 일이 IT 강국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5년 TU미디어의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09년에 약 677만대 정도를 예상했었지만 목표치의 무려 3배나 되는 수신기가 그것도 2009년 상반기 중에 보급되었으니 지상파DMB사업자들의 장밋빛 전망은 무죄라 할 수 있다. 뉴미디어에 대해 대체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고 볼 때 DMB 사업의 당사자인 TU미디어가 내놓은 전망치를 문제삼고 싶지만, 삼성경제연구소나 ETRI가 내놓은 자료도 비슷했으니 어떤 배심원이 본다 해도 무죄가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수신기 보급 대수로는 설명할 길 없는 초라한 수익에다 정부 지원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모두 망연자실해 있는 가운데, 유럽으로부터 낭보 아닌 낭보가 날아든다. 지난 5월 14일 노르웨이의 국영 및 민영 방송사들이 만든 합작회사가 수도 오슬로에서 한국의 T-DMB 본방송을 개시키로 하면서 일부 채널을 유료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한국의 사례를 거울삼아 한국이 하지 못했던 두 가지를 하기로 한 것으로 여겨진다.

먼저 6개 사업자가 난립한 한국과 달리 공민영이 힘을 합해 ‘합작회사’를 만든다는데, 아마도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것이 맞다면 역으로 한국의 현 사업구조는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바로 ‘일부 채널의 유료화’이다. 이는 유료화 틀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일단 일부 채널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개시함으로써 소비자와 공급자가 새로운 서비스를 합리적으로 함께 영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부채널 유료화만으로 과연 DMB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데 충분한지 두고 볼 일이지만, 기술적으로 유료화 가능성을 마련하기도 전에 조급하게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단정시키며 갓 태어난 T-DMB를 사업전장으로 내 몰았던 한국의 전략과는 사뭇 다르다.

이 두 가지는 선발주자인 한국의 사례가 없었다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선발로서의 명예와 뿌듯함을 가져가는 대가로 후발주자에게 그런 선물을 안겨 준 것이다.

그리고 보름 후인 6월 초,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T-DMB를 채택하여 파리·니스·마르세이유 3개 도시에서 총 55개 방송사가 연말까지 본방송을 실시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랑스 역시 한국의 사례를 거울삼았는지, DMB 수신기능 탑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전략적인 산업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에서 강세를 보이던 모바일TV 방식인 DVB-H가 노키아의 사업 철수 이후 급속도로 한국의 T-DMB에 자리를 내놓는 형국이라 할 수 있으며, 지난 독일월드컵 이후 다시 한 번 유럽시장에서 T-DMB 보급 확대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특히 DVB-H가 새로운 주파수 할당을 필요로 하는데 반해 T-DMB는 많은 라디오사업자가 이미 할당받아 놓은 DAB 스펙트럼을 이용해 모바일TV로 사업영역을 쉽게 넓혀나갈 수 있기 때문에, DAB를 실시하고 있는 방송사에게 T-DMB 도입이 대세가 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으며, 한국의 T-DMB 산업에도 청신호가 켜졌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T-DMB의 최대 강점이 실현되는 날이 다가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강점을 토대로 1990년대 말부터 DAB를 DMB로 진화시켜야 통신사업자의 모바일TV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으며, 2000년 5월 EBU 기술총회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이동수신 TV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DAB의 멀티미디어형 서비스 개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보고서를 쓰면서 개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DAB를 라디오방송의 디지털화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필자는 그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2005년 3월 3일 KBS창립기념일에 ‘보이는 라디오’를 탄생시켜 라디오방송의 새로운 서비스 창출에 기여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져 차세대방송포럼 등에서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 기술규격을 마련하게 되었고, 2002년 말 공식적으로 DMB라는 개념도 확정되었다. 그리고 6년 전인 2003년 6월, KBS 방송기술연구소는 15억짜리 DMB 개발 프로젝트를 수립하여 방송사 자존심을 걸고 ETRI와 치열한 개발경쟁을 벌였다. 불철주야 개발에 매달린 결과, 필자가 프로젝트 결재를 받은 지 1년 만에 세계최초로 T-DMB 방송시스템 개발을 성공시키는 개가를 올렸고 한달 후 세계의 다른 모바일TV 방식과 당당히 겨루는 전시회도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오늘날, 한국의 DMB 기술이 세계 모바일TV 방송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그 꽃이 유럽에서도 본격 개화될 것 같아 감회가 남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착잡함이 더한다. 어린 딸을 시집보낸 어미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몇몇 사람들에게 ‘DMB는 내 딸이니 잘 좀 키워주세요’라는 인사까지 할 정도였다. 기술적으로 DMB 상용화 가능성은 보여주었지만 좀 더 튼튼한 수익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들을 개발하기까지 더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채 급하게 서비스 현장에 내몰린 T-DMB의 사정이 언제나 좋아질지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그나마 TPEG 서비스를 통해 어느 정도 수익을 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최근 비용 때문에 지하철 내의 DMB 중계시설이 가동을 멈추려다가 다행히 파국은 면했다는 뉴스를 들은 후부터 지하철 내에서 DMB폰을 더 자주 켜보게 된다.

 

희망컨대 유럽에서 한국의 T-DMB가 한국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성장 발전하여 방송역사에 어떤 모습으로든 훌륭하게 기록되기를 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한국이 또 다른 DMB의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며 계속 선발주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인류에게 보다 가치있는 방송시스템을 창출해 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