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제주

올레!!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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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제주

  아! 어디론가 혼자 훌쩍 떠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궁리하던중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제주올레길을 소개한 책인데,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 여기다 싶어 바로 등산용품점 가서 배낭이랑 여러 가지 캠핑준비물을 질러버리고, 아내와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나 홀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에 도착해서 나를 반겨주는 돌하르방을 뒤로하고 1코스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로 가기위해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니 나처럼 혼자 온 중년아저씨, 친구랑 같이 온 아가씨등 다양한 사람들이 제주올레를 걷기위해 제주도에 와 있었다. 처음 계획은 전 구간 야외캠핑을 할려고 텐트, 버너, 양식 등을 준비했는데 내 욕심이 너무 과했었는지 배낭 무게가 20키로를 훌쩍 넘겨 버렸다. 그렇게 이틀을 걷고 나니 온 몸에서 특히 발바닥과 어깨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여행 중 만난 젊은 친구가 여행 떠날 땐 눈썹도 떼고 가라고 한 말이 절실히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도 제주도의 맑은 공기는 포기 할 수 없어서, 먹을 도구와 양식 그리고 욕심부린 옷가지들을 온평포구 슈퍼에서 택배로 집으로 부쳤다. 그러고 나니 몸이 날아갈것 같았다. 첫 도보여행에서 너무 과욕을 부린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셋째 날 3코스부터는 몸이 한결 가벼워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다녀온 사람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3코스의 통오름과 바다 목장이 제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곳을 걸으며 바라 본 제주의 산과 바다는 지금껏 차로 가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작년에 자전거로 제주일주를 할 때도 좋았는데, 이동하는 속도가 느리면 느릴 수 록 제주도는 숨겨진 비경을 하나 둘씩 내어 놓는 것 같았다.

 넷째 날 길에서 처음 만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걷다 보니 하루에 2코스씩 걷게 되었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쉽게 친구가 되는 것 같다. 넷이서 걷다가 두 친구는 먼저 가고 다른 한 친구와 걷다가 날이 어두워져 파란 화살표와 노란 리본만 찾으며 걷다보니 9시가 되어서야 쇠소깍에 도착했다. 혹시나 길을 잃은건 아닌가 하며, 마중나은 친구들 얼굴이 너무 반가웠다. 모두 모여 소주한잔하며 저마다 올레에 온 사연을 이야기하는데 모두들 복잡한거 모두 잊어버리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하긴 나도 그랬으니. 걷다보면 정말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다섯째 날 아침 모두들 발바닥 대수술 후 힘찬 출발을 하였으나, 아파오는 발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집으로 갈까 심각하게 고민했을텐데 동행이 생기고 서로 의지가 되니 사라지려던 의지도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처음 계획했던 7코스까지의 여행을 마치게 되었다.

 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해보니 여행 중 만난 여러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거기엔 소주한잔 하며 사귄 인심 좋은 제주도 시골바닷가의 아저씨들, 작년에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올해엔 올레를 걷고 있다는 노년의 아주머니, 직장을 잃고 나서 심란한 마음 달래러 온 젊은 친구들, 같이 캠핑하며 밥 얻어먹은 여행 중인 젊은 부부 들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쉬운 건 아닌데 여행으로 서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집에 와서 몇일이지만 보지 못했던 아내와 아이들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나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나머지 올레길 여행 때는 가족 모두 함께하는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참고로 현재 제주올레는 14코스까지 만들어 졌다고 한다.  

TBC 대구방송 천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