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안 없이 여전히 평행선
언론 7단체 “자율규제 기구로 자정 노력”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기사 열람차단청구권 등 주요 쟁점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여야 8인 협의체는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9월 26일까지 활동 기한으로 하는 8인 협의체를 구성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민주당 김종민·김용민 의원, 김필성 변호사,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국민의힘 최형두·전주혜 의원,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희석 연세대 법학박사 등으로 구성된 8인 협의체는 9월 8일 첫 회의를 갖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8인 협의체 논의는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8인 협의체는 정정보도 강화를 제외한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합의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대 쟁점은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틀은 유지하되 허위‧조작 보도 및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허위‧조작 보도’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라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또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기존 안에서 한발 물러나 ‘5,000만 원 또는 손해액의 3배 이내의 배상액 중 높은 금액’을 택하는 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전면 거부했다. 국민의힘은 허위‧조작 보도 문구 대신 포함된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라는 문구가 더 포괄적이어서 언론 보도 자유 침해 여지가 넓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민주당이 제시한 수정안이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것이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핵심은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신속히 구제할 것이냐다. 한해 4,000건에 가까운 언론 중재 조정 사건은 외면하고, 고위공직자 등이 주로 이용하는 언론 대상 손배소에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것은 교각살우”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 자체를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사 열람차단청구권 조항을 놓고서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기사 열람차단청구권을 ‘사생활의 핵심영역 침해’의 경우로만 제한하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언론 자유 침해 조항이라며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민주당은 9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현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9월 23일 당 정책조정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6일을 데드라인으로 잡고 있다”며 “27일 통과시켜야 겠다는 목표는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등 언론 7단체는 9월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 중단을 거듭 촉구했다.
언론 7단체는 이 자리에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설립을 골자로 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 강화 방안도 발표했다.
언론 7단체는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오보 등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피해자들에게 제때 충분하게 사과하고 신속하게 잘못을 바로잡는 데 소홀했고, 이런 잘못이 언론의 불신을 불러왔다는 데 동의했다. 언론이 스스로 자율규제 기능을 강화하지 못한 결과 언론에 대한 권력의 개입을 자초한 책임도 인정했다”고 반성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결코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 7단체는 “민주당은 언론 피해자 구제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피해 구제 강화 효과는 거의 없고 모호하고 무리한 개념을 법률에 적용해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을 훼손하고 언론 자유만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언론 7단체가 제시한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는 개별 언론사에 맡겼던 인터넷 기사에 대한 팩트 체크 등을 한 뒤 이용자에 제시하고, 허위 정보를 담고 있거나 언론 윤리를 위반한 인터넷 기사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언론사에 대해 문제가 된 인터넷 기사의 열람차단을 청구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또 인터넷 기사와 광고로 인한 피해자가 신속하게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시행하고, 자율 규제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학계·언론계·전문가 등으로 연구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들은 “가짜뉴스의 문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 나타나는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정부가 가짜뉴스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징벌적으로 처벌하겠다는 나라는 전 세계 민주국가 어디에도 없다”며 “언론 자유 침해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공통된 우려 때문”이라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