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지상파의 선택권은 없나

아파트에서 지상파의 선택권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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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지상파의 선택권은 없나

/ 한 영 식 MBC기술관리부 차장

아는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 아는 사람이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얼마 전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단독주택에서 살려면 이것저것 신경써야 할 일이 많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보다는 손이 가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단독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맛이 있었다. 작지만 마당이 있고 거기에 있는 나무와 꽃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아파트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십개의 케이블TV채널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맛이 있었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면 나오는 채널은 딱 다섯 개. 그 이상은 안 나왔다. 한국방송에 내는 TV수신료 이외에는 따로 내는 돈도 없었다. 물론 아이들은 보고 싶은 채널이 안나온다고 투덜댔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다섯 개의 채널로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고 TV를 연결하니 전에 없던 채널 몇 개가 더 나오는데 그 전처럼 다섯 개 채널만 보고 싶어도 그러기가 어렵더라는 얘기다.
아파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공동주택에서 다섯 개 채널만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대개 몇 개의 케이블 채널이 이미 추가되어 있고 그 비용은 관리비에 은근슬쩍(주로 입주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했다는 근거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케이블TV가 ‘동시재송신’하는 지상파를 돈을 내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유료방송을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엔가 아파트의 TV수신환경이 지상파를 직접 수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옥상에 있는 안테나가 케이블TV 사업자에 의해서 선이 잘린 채 아무 하릴없이 우두커니 매달려 있는 꼴이 되어 있고 지상파를 시청하기 위해 공들여 시설한 아파트의 공시청시설은 케이블TV 사업자의 옥내 전송망으로 둔갑되고 만 것이다.
현재 지상파를 직접 수신하는 가구 비율이 20%에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의 공동주택의 비율이 50%를 넘고 있고 앞으로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수도권의 주택건설실적을 보면 전체 2,580,168 가구 중 아파트가 72%인 1,854,289 가구,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이 23%인 594,594가구로 공동주택 비율이 95%를 차지하고 있다(같은 기간 전국적으로는 아파트 비율 75%를 포함 공동주택비율 92%). 집지을 땅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주택공급을 위해 단독주택지역이 공동주택지역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단독주택의 급격한 감소로 그렇지 않아도 낮은 지상파 직접수신 가구비율이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공동주택의 공시청시설에 대한 법규정(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42조)에는 분명히 지상파의 공시청시설과 케이블TV의 전송설비를 따로 갖추게 되어 있고 단자도 각각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사업자에 의해 지상파직접수신이 불법적으로 원천봉쇄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이를 원래대로 복원시키는 일을 시작해야 될 시점에 있다고 본다. 지상 어디서나 지상파는 무료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게 틀린 말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비바람 맞으며 하릴 없이 녹슬어 가고 있는 안테나가 제 자리를 찾을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