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방통위의 광폭행보 이해하기

심층분석-방통위의 광폭행보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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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과 6월동안 방송관련 단체를 두루 섭렵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최근 정치권이 국정원 국정조사 등 굵직굵직한 현안에 매달려 야당의 장외투쟁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등장한 판국에, 이경재 방통위원장도 광폭행보를 통한 공격적인 영역 넓히기에 돌입하고 있다. 동시에 본 지면에서는 이러한 이경재 위원장의 행보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숨어있는 의도를 찾아보겠다. 키워드는 700MHz 대역 주파수와 UHDTV, 그리고 미국이다.

 

1. 700MHz 주파수에 한결 유연해진 위원장?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7월 31일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가 화끈한 먹거리를 제시한다면 굳이 방송용 주파수 활용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말을 앞뒤 맥락을 살려 분석하면 뉘앙스가 묘해진다. 이 위원장은 ‘미래부의 활용방안’와 ‘주파수 공동 사용’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둔 상황에서 “방송용 주파수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해당 주파수의 방송용 할당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시청자 편익에 따르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정치인다운 처세다.

 

2. UHDTV 도입 시기상조설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에 있어 시청자 편익을 이유로 비교적 흐릿하게 그 기준을 제시한 것과 달리, UHDTV에 대한 이 위원장의 발언은 의도하는 바가 꽤 명쾌한 편이다. 한 마디로 콘텐츠가 부족하고 시청자 편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UHDTV를 무리하게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이 발언은 평면적인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 없는 다면적 요소의 충돌이 격렬하게 일어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큰 분류는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로 살필 것은 이 위원장 발언의 ‘정치적 유발요소’다. 이 위원장은 700MHz 대역 주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방송이슈에 대해 미래부와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는 미래부의 등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좁아진 방통위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진의가 어찌 되었든, 이 위원장은 미래부와의 대립을 통해 정책 엇박자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UHDTV 도입 시기상조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료방송 중심의 UHDTV 발전을 추구하는 미래부를 정조준하며. 즉 이러한 전략적 판단이 이 위원장으로 하여금 UHDTV를 통한 창조경제를 포기했다는 말도 서슴치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최근 불거진 아리랑 TV에 대한 소유권 주장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

두 번째는 UHDTV 도입 시기상조설로 확인 가능한 기술개발 주체에 대한 논란이다. 이 위원장은 UHDTV 시기상조를 언급하며 콘텐츠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판단에는 ‘콘텐츠를 담당해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역량이 아직은 미흡하다’는 전제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전제는 곧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 제작을 위한 준비가 끝날 때까지 해당 기술의 도입을 늦춰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당장 이 위원장이 ‘지상파 중심의 UHDTV 발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3. 미국 방문 이전과 이후

7월 24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경재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700MHz 대역 주파수 상하위 40MHz 폭을 통신에 할당하자는 의견이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듣기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구 방통위가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안을 정할 당시 등장한 ‘통신 주파수 알박기’를 하나의 의견으로 치부한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언급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이 위원장이 미국에 다녀온 직후 180도 달라졌다.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에 있어서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UHDTV 국내도입 시기상조설까지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이 위원장이 미국의 FCC를 방문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가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해버려 막상 UHDTV에 활용해야 할 주파수가 부족해지자 부랴부랴 자신들의 방식을 포기하고 유럽식 UHDTV 테스트에 돌입한 나라다. 그런데 UHDTV에 있어서 최소한 미국에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방통위 수장이 FCC 상임위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까? 당연히 그 상임위원은 자신들에게 약세인 UHDTV에 대한 불합리한 논의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위원장은 그러한 FCC 상임위원의 생각을 고스란히 자신의 머리에 담고 돌아온 격이다.

이런 부분을 두고 비록 가정이지만, 일각에서는 2004년의 디지털 전송 방식 선정의 폐혜를 떠올리곤 한다. 당시에도 주파수 효율이 좋은 유럽식 디지털 전송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지만, 당시 정부는 가전사들의 북미 시장 진출이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이유로 미국식 방식을 맹목적으로 택했다. 그리고 이어지기 시작한 주파수 잔혹사는 2004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UHDTV에 있어서 그다지 훌륭한 로드맵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그릇된 DNA가 2013년에도 재현되는 셈이다.

방송정책의 엇박자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정치적인 승부수를 던지는 한편, 맹목적인 고정관념에 빠진체 시청자 편익이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으로 사안을 정리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부처의 할 일이 아니다.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