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
신자유주의 이론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5년 즈음이다.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자본의 지구화 경향에 대한 이론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김영삼 정부 당시 신경영전략을 노동 현장에 적용된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평가하였다. 이윽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김대중 정부가 사회 전 부문에 걸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나섰다.
데이빗 하비에 의하면 지구적 경향으로서 신자유주의 이론의 특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강력한 개인적 사유재산권, 법에 의한 통치, 그리고 자유롭게 기능하는 시장과 자유무역 제도를 선호한다. 둘째, 자산의 민영화를 추구하는 데 주도면밀하다. 이전에 국가가 운영했던 영역은 사적 영역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국가의 규제 부문은 탈규제 되어야 한다. 셋째, 시장에서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개인들은 각자의 행동과 복지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넷째, 자본의 부문 간, 지역 간, 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성은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상품과 자본의 이동에 관한 국가주권은 세계시장을 위해 기꺼이 포기되어야 한다. 다섯째,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고, 민주적이고 의회에 의한 의사결정보다도 행정적 지시 체계나 사법적 결정에 의한 정부를 강력히 선호한다.
그런데 이 이론들은 실제로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잘 이뤄지지 않는다. 현실 신자유주의 국가는 대개 과도적이거나 불안정한 정치형태를 보인다. 첫째, 신자유주의 국가는 시장 자유에 개입함으로써 경영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 적극적이며 세계 정치체에서 경쟁적 실체로 활동한다. 둘째, 시장 강화를 위한 권위주의가 개인적 자유의 이상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가령 기업의 권력이 시민의 개인적 자유를 빼앗는다면 신자유주의의 약속은 무위로 돌아간다. 이 점은 작업장 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에 있는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셋째, 금융시스템의 통합성 보전은 중요하지만, 그 속에 있는 운영자들의 무책임하고 자아도취적 개인주의는 투기적 변동, 금융스캔들, 그리고 만성적 불안정성을 만들어낸다. 국제적 자유무역은 세계적 게임 규칙을 요청하며, 이는 다시 WTO 같은 일종의 세계적 거버넌스를 필요로 한다. 넷째, 경쟁이라는 덕목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중앙 집중화된 소수의 다국적 기업 간 과점적, 독점적, 초국가적 권력의 공고화가 촉진된다. 에너지 산업은 5대 초국적 기업들의 경쟁으로 축소되었고. AOL타임러너, 디즈니, 베르텔스만, ! 봄봬泯紡뮌抉, 비아컴그룹 등 5개의 미디어 다국적기업이 세계의 수백 개의 TV방송, 라디오방송, 신문, 잡지, 영화 스튜디오, 음반제작사, 출판사, 웹 포털사이트를 좌지우지한다. 다섯째, 대중적 수준에서 시장 자유를 향한 추동과 모든 것의 상품화는 너무 쉽게 사회적 불화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지 십수 년이 지난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가령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은 위기 시의 성장 및 확장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금리인상과 환율하락을 억제하고 투자 유도와 수출 증대를 통해 성장과 고용 증대를 도모하는 정책이다. 경제사상적으로 볼 때 케인즈주의 같은 확장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보다 진보적인 정책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재정정책 전체를 케인스주의 정책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부자감세, 민영화 정책 등에서 볼 수 있듯이 MB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분명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교리와 달리 현실정책에서는 불가피하게 케인스주의 요소의 도입을 포괄한다. 긴축과 탈조절이라는 신자유주의 교리를 현실에서 교과서적으로 적용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의 경우 최소한의 규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령 2003년 외환은행 론스타 매각 관련 지난 3월10일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로 주가 조작 건은 일단락됐지만, 헐값 매각, 대주주 적격성, 베일에 가린 실제 투자자 문제 등 사태가 마무리될 기미가 안 보인다. 금감위와 금융감독 당국자들도 외국 자본이기 때문에 규제하지 못한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지면 또 언제든지 공적 자금 투입을 거론할 것이다. 최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강화 발언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국민연금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 메릴린치, AIG 등 투자로 600억원, 주택모기지 업체인 매니메이와 프레디맥 투자로 500억원을 날린 바 있다. 현재 자산의 17% 규모인 55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노후소득보장기금이라는 성격과 사회복지와 공공성을 감안한 안정성 대신 수익성을 쫓는 금융자본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는 추세다. 교육과 보건의료 부문 등도 영리법인 허용 등 시장화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종합편성채널과 조중동방송 도입으로 특징지어진 미디어 부문은 규제 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경쟁체제로의 재편으로 평가된다. 2008년 12월 신문법, 방송법 개정안 발의 취지는 △사양화 길을 걷고 있는 신문산업의 상장동력 확보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육성 △방송산업에서 지상파 독과점 해소 및 경쟁체제 도입 △신규 일자리 2만여 개 창출 등이었다. 법 개정 취지는 대체로 허구임이 입증되었지만 현실은 개정법안에 따라 작동되고 있다. 말하자면 법 개정 취지는 공공재로서의 방송에 대한 사유화의 도전이었고, 미디어에 있어 공유재의 종획, 즉 신자유주의적 국가가 주도하는 강탈에 의한 축적이었다. 더군다나 법 개정의 수혜 당사자인 조중동신문이 계급계층으로는 자본가집단과 특권을 누리는 과두지배층 및 중산층의 이해를, 정치분파로서는 수구보수정치세력의 이해에 충실해왔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조중동방송의 출현은 미디어 사유화 정책과 방송에 대한 정치선전 도구화 구상의 착종으로, 조중동에 대한 규제 당국의 굴욕을 의미한다. 해답의 실마리는 강력한 규제를 통한 제어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규제와 시장화! 정책을 민주적 국가 개입을 통한 규제와 공공성 정책으로 전환하면 된다.